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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1호 에세이

즉각적인 분노 대신 우아하게 요구하기 (1)

2023.01.18

ⓒ 그림. 최산호

사회 초년생 시절, 잘 몰라서 실수한 것들이 참 많지만 그중 유독 강렬하게 남아 있는 기억이 하나 있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헛웃음이 나올 정도로 무례했던 적이 있어요. 잡지사에서 일한 지 얼마 안 되었을 때인데, 당시 제가 담당하고 있던 칼럼에 두 작가가 번갈아서 원고를 싣고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대중에게 인지도가 높았던 사람이었죠.

어느 날, 종료 시점을 정해두지 않은 상태로 6개월가량 연재 중이던 그들의 칼럼이 회사 내부 사정으로 급히 중단되었습니다. 이유를 구체적으로 쓸 순 없지만 A라는 작가가 쓰고 있던 칼럼의 내용이 회사 윗분들이 보기에 불편한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었어요. A의 칼럼이 문제시되면서 그와 교대로 연재하던 B 작가의 칼럼도 함께 정리를 하라는 지시가 떨어졌습니다. 풋내기 시절 처음 경험하는 대형 사고였기 때문에 상황 판단이 제대로 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지금이라면 제일 먼저 전화를 걸어 상황을 간곡하게 설명했을 텐데, 패닉에 빠진 저는 두 작가에게 그런 내용으로 통화를 하는 게 너무나 무서웠습니다. 그래서 사과를 드리고 양해를 구한다는 내용의 메일만 한 통 보내버리고 말았죠. 다시 생각해도 어이가 없네요.

메일을 보내고 나서 얼마 있지 않아 A 작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전화로 듣는 목소리였지만 그가 분노를 제어하지 못하고 몸마저 떨고 있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저는 ‘죄송합니다. 저도 너무나 갑작스럽게 받은 지시였기에 어쩔 수 없었습니다. 정말 죄송합니다.’ 따위의 말만 반복했습니다. 이렇게 갑작스럽게 연재를 종료하는 법이 어디 있냐고, 작가에 대한 존중이 없다고, 너 따위와는 말도 섞고 싶지 않으니 당장 대표 연락처를 내놓으라고 그는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듯 외쳤죠. 그렇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의 트위터에 방금 갑작스럽게 연재 중단 통보를 받았다며 회사가 특정될 수 있는 표현을 써가며 비난을 쏟아내기 시작했습니다.

같은 날, B 작가에게는 짧은 회신이 왔습니다. 상세히는 기억나지 않지만 대략 이런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안녕하세요. 보내주신 내용 확인하였습니다. 당황스럽고 불편한 마음이 드는 건 사실이지만 기자님도 어쩔 수 없는 상황이겠죠. 다시는 이처럼 갑작스럽게 통보하는 일이 생기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 더, 모르시는 것 같아 알려 드리는데 이 경우에는 기자님이 제게 메일을 보내기 전에 전화를 걸어 상황이 이렇게 되었음을 구두로 설명해주시는 게 좋습니다.” 저는 이 둘의 비교를 통해 A 작가가 비상식적인 언행을 했다거나, 과도했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이 아닙니다. 백번을 따져봐도 저는 잘못한 게 맞고 A 작가의 분노는 정당했습니다. 다만 두 사람의 대처법을 보면서 절절하게 배운 것에 대해 말하고 싶습니다.

A 작가가 소리를 지르며 화를 냈을 때는 이후 제가 해야 하는 행동에 대해서 배우기 어려웠습니다.(물론 그가 저에게 알려줄 의무는 없습니다) 초식동물처럼 얼어붙은 채 허둥지둥 사과하기에만 바빴죠. 일단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만 강렬했던 것 같습니다. 반면 B 작가가 침착하게 요구 사항을 이야기하고 잘못을 정확하게 지적해주자 저는 지난 행동을 짚어보며 앞으로 절대 하지 않아야 할 것을 뚜렷이 배웠습니다. 불편한 것을 정확히 말하고 원하는 걸 우아하게 알리는 것이 얼마나 어른스러운 행동인지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죠.

이 글은 '즉각적인 분노 대신 우아하게 요구하기 (2)'로 이어집니다.


글. 정문정
그림. 최산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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