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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1 에세이

편한 미소를 지어줄게요

2023.01.29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두 감독님 인터뷰를 위해 영화를 보다가 오랫동안 잊지 못할 것 같은 장면을 만났다. 이 영화는 비인가 초등 돌봄 기관인 ‘도토리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을 찍은 다큐멘터리다.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서는 초등학교 입학 100일 차가 된 아이들을 축하하기 위해 기념 파티를 연다. 그리고 그 파티에서 뮤지션 우효의 ‘민들레’라는 노래를 다 함께 부른다.

우리 손 잡을까요
지난날은 다 잊어버리고
나를 사랑한다고 말해주세요
우리 동네에 가요
편한 미소를 지어 주세요
노란 꽃잎처럼 내 맘에
사뿐히 내려앉도록

초등학생들이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꾸밈없이 노래 부르는 장면을 보는데 문득 울컥한 마음이 들었다. 정작 아이들은 별생각 없이, 불러야 하니까 부르는 것처럼 보였지만 말이다.

사랑이 뭐고 애달픈 건 뭐고 그리운 건 뭐고 하는 것들, 그러니까 우리가 쉽게 생산하고 소비했던 의미들, 오그라든다, 흔하다 여기며 내동댕이쳤던 의미들이 있었다. 사랑한다는 누군가의 말에 토하는 이모티콘을 보내며 서로 깔깔 웃은 적이 있었다. 내 안에서는 이미 죽은 상태였던 그 의미들이 아이들의 목소리를 타고 되살아나는 것 같았다. 사랑한다고 말해달라는 가사가 촌스럽고 ‘킹받는’ 것이 아닌, 계산 없이 진실된 마음만을 담은 고백처럼 들렸다. 어른들이 하는 말은 항상 어딘가 꿍꿍이가 있고 아이들이 하는 말은 무조건 순수하다는 것은 아니다. 그저 가끔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서 나의 감정과 편협함이 180도 전복될 때가 있다.

새해엔 모든 것이 허락되니까, 새해 기념으로 작게 다짐했다. 사랑을 주는 게 손해 같고 사랑을 받는 게 부끄러웠던 지난날은 이제 다 잊어버리겠다고. 민들레 같은 편한 미소를 지어 보이고 손을 꼬옥 잡아주겠다고. 아직은 부끄럽고 민망한 다짐들을 용기 내어 마음에 품어보았다. 이 다짐이 언제까지 갈지는 모르지만, 최선을 다해 사랑하는 이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이겠다고.


글. 원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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