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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1 인터뷰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박홍열, 황다은 감독 ― 곁을 나누며, 함께 자라며 (1)

2023.01.21


'‘도토리 마을 방과후’는 서울시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공동육아협동조합 초등 돌봄 공동체다. 이곳에서 아이들은 더불어 사는 법, 아이답게 노는 법, 자연을 누리는 법, 한마디로 ‘일상을 살아가는 법’을 배운다. 그 곁에는 한 그루 나무 같은 아이들에게 기꺼이 옥토가 되기를 바라는 선생님들이 있다. 사회적 경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보장되지 않은 미래 탓에 불안이 덮쳐 와도 자신의 최선을 쏟아내는 돌봄 노동자들을 카메라에 담았다. '


ⓒ 스튜디오 그레인풀

영화 제작은 어떻게 출발했나요?
홍열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 아이들을 8년 동안 보냈는데 선생님들이 사회적으로 어떠한 경력도 인정받지 못한다는 사실을 몰랐어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지는 일, 특히 돌봄의 가치가 지나치게 저평가되어 있었고, 이분들을 호명하는 작업을 해야겠다 싶었어요.
다은 돌봄이나 육아는 우리 삶 바탕에 깔려 있는데 그것을 조명할 기회가 없었던 것 같아요. 미혼인 선생님이 “이 일로는 미래가 보이지 않고, 장가 못 갈 것 같아요.”라고 하시더라고요. 사회 시스템 안에 속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어떤 지원도 복지 혜택도 받지 못하는 돌봄 노동자가 많은 거죠.

영화를 만들겠다고 했을 선생님들은 어떤 반응이었어요?
홍열 카메라에 찍히는 건 사실 부담스러워하셨어요. 그래도 조합원으로 오래 함께해왔기에 서로 신뢰가 쌓인 상태고, 선생님들을 세상에 알려야겠다, 그래야 선생님들이 여기서 더 오래 일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말씀드렸어요. 선생님들도 본인을 챙기려는 속내보다는 전국의 마을 방과후 선생님들을 위해서라도 출연해야겠다고 마음먹으신 것 같아요.
다은 회의 때마다 카메라를 켜놓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해 쉽지 않으셨을 거예요. 초반에는 ‘이런 이야기까지 해도 되나 싶다.’고 망설이다가 언젠가부터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시더라고요. 회의 끝나면 알아서 카메라도 꺼주시고요.(웃음)

아이들은요?
홍열 아이들은 카메라가 다가가면 일단 좋아해요. 저희가 이걸 왜 찍는지도 어느 정도 알고 있고요. 촬영이 길어지면서 아이들이 오히려 저희를 배려하고 챙겨줬어요. 다큐멘터리에도 그런 장면이 나와요. 카메라를 보면 반갑게 맞아주고, 제가 뒷걸음치고 있으면 조심하라고 말해주고. 찍는 사람과 찍히는 사람이 서로 많이 배려하는 것이 고스란히 느껴져요. 저희뿐 아니라 카메라도 돌봄을 받은 거죠.

ⓒ 스튜디오 그레인풀

선생님들과 아이들이 노는 장면이 많아요. 이러한 장면이 영화를 유쾌하게 만들어줍니다.
다은 선생님들이 애들하고 같이 노는 생기발랄한 장면이 나오다가도 선생님들의 현실 이야기가 뒤이어 나와요. 선생님들의 현실을 알면 밝은 모습 이면에 깔린 아픔도 알게 되죠. 영화를 보면 선생님들이 심각하게 긴 회의를 할 때가 있어요. 그런데 다음 날 아이들을 만날 때는 아이들과 보통의 날을 보내요. 심각했다가 즐거워지는 대비가 편집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 삶이 그런 거예요. 이 다큐멘터리에서 노는 장면은 짧고, 회의 장면은 길어요. 아이들의 짧은 웃음을 위해 선생님들은 훨씬 더 긴 회의를 하니까요. 우리의 안녕한 하루가 누군가의 치열하고 고된 노력 끝에 유지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었어요.

분도 도토리 마을 방과후 조합원이시죠. 공동육아에 참여하게 계기가 있나요?
다은 아이를 낳을 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닥쳐보니 일할 시간이 전혀 없더라고요. 박(홍열) 감독은 촬영 때문에 생활이 불규칙하고요. 그러다 공동육아 시스템을 알게 되어 이 마을로 이사 왔어요. 공동육아를 한다는 건 어디서나 함께한다는 거예요. 아이, 교사, 부모, 이 세 주체가 하나가 되어 아이들을 함께 키우며 더불어 사는 게 공동육아의 가치거든요. 그 안에서 저희도 함께 자라고 있어요.
홍열 저는 하숙생처럼 잠만 자고 나가는 전형적으로 나쁜 아빠였어요. 공동육아를 하면서 한국 남성이 가부장제 안에서 얼마나 큰 혜택을 받고 있는지 알게 됐죠. 돌봄을 거의 여성의 일로 치부하잖아요. 이곳에서는 회의도 많고 청소도 해야 하고 반찬도 만들어야 하지만, 우리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들을 이해하게 되었고, 사회에서 여성과 남성의 역할로 나뉜 일들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되었어요. 아이를 맡기러 왔다가 어른이 성장하는 곳이에요.
다은 (박홍열 감독이) 아주 잘 컸어요.(웃음)

ⓒ 스튜디오 그레인풀

도토리 마을 방과후가 이루어지는 공간을 터전이라고 불러요. 이곳에서 아이들은 아이답게 놀고, 친구들과 관계를 맺으며 성장합니다.
다은 터전은 삶의 본거지이자 어떤 존재가 뿌리내리고 살 수 있는 공간으로서 의미를 가져요. ‘분홍’ 선생님은 도토리 하나에 이미 참나무 한 그루가 다 들어 있다고 생각하신대요. 참나무가 될 작은 씨앗이 아니라 그 안에 이미 완성된 존재를 품고 있다는 거죠. 도토리 같은 아이들이 튼튼히 뿌리내리고 잘 자랄 수 있게, 이미 가진 그 모양대로 그 속도대로 참나무가 될 수 있게 기다리고 지지해주면서 사는 곳이 터전이에요.
홍열 원래 살던 동네는 젊은 부부가 많은 곳이었는데, 부모랑 손잡고 가는 아이들은 있어도 저희끼리 노는 애들은 없었어요. 그러다 집을 알아보려고 여기를 왔는데 골목에서 애들이 뛰어놀고 있더라고요. ‘어떻게 낮에 애들이 동네에서 뛰어놀고 있지? 학원에 가지 않고?’ 하는 생각이 들면서 참 신기했어요.
터전은 학습만 이루어지는 곳도 아니고 놀이만 이루어지는 곳도 아니에요. 싸우기도 하고 화해하기도 해요. 어른과 아이, 아스팔트와 자연, 모든 것이 끊임없이 교감하면서 우리가 혼자가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하죠. 사회가 규정하는 시선으로 아이를 바라보지 않고 아이들이 가진 무한한 에너지를 함께 나누는 공간이에요.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느끼면서요.

이 글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박홍열, 황다은 감독 ― 곁을 나누며, 함께 자라며 (2)'로 이어집니다.


글. 원혜윤
사진제공. 스튜디오 그레인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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