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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1 인터뷰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박홍열, 황다은 감독 ― 곁을 나누며, 함께 자라며 (2)

2023.01.21


이 글은 '<나는 마을 방과후 교사입니다> 박홍열, 황다은 감독 ― 곁을 나누며, 함께 자라며 (1)'에서 이어집니다.

ⓒ 스튜디오 그레인풀

교사와 학부모는 이름이나 직함 대신 별명으로 불리고 아이들과 친구처럼 반말로 대화해요. 나이에 따른 위계는 사라지고, 평등한 언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다은 제일 낯선 경험 중 하나가 반말과 별명 문화예요. 별명을 만들라는데 동네에 이미 웬만한 동식물 별명은 다 있는 거예요.(웃음) 그래서 겹치면 안 되니까 저희는 약용식물로 정했어요. 박 감독은 가시오가피에서 오가피, 저는 백하수오에서 하수오.
어른이 아이한테 반말하는 건 자연스러운데 아이가 나한테 반말을 할까, 별명을 불러줄까, 걱정했어요. 그런데 지극히 편하게 “하수오 안녕!”, “하수오 어디가?” 이렇게 먼저 말을 걸면서 친구처럼 대해주니까 기쁘고 고맙더라고요. 이런 문화가 왜 생겼을까 했더니, 아이와 어른이 나이로 위계를 정하지 않고, 선생과 아이가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가 되지 않고, 서로 배우는 동등한 관계로 시작하는 것이 이곳이 지향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홍열 한국 사회에서는 만나면 나이부터 물어보잖아요. 그다음에는 직업을. 남자는 나보다 나이가 많으면 형,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질서 안에서 움직여요. 근데 여기서는 나이도, 직업도 물어보지 않으니까 서로 나이가 많든 적든 굉장히 편해지고, 별명이 불리는 순간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위계질서가 사라지는 것을 경험해요.

영화에서 10 방과후 교사 분홍이 우리는 아무것도 하고 있지 않은 같아.”라고 말해요. 일상 가르치기에 국어 교사, 수학 교사처럼 가시적인 결과물을 없는 것이죠.
다은 분홍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여기서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티가 나지 않고 무엇을 하는지 설명하기도 어렵다. 하지만 지하수와 같이 여기서 함께한 시간이 흐르고 흘러, 나중에 아이들이 꼭 필요한 때에 그 지하수를 끌어올려서 쓸 거다. 그리고 꽃을 피울 거다.” 지하수가 흐르지 않으면 어느 것도 유지되기 힘들어요. 그렇기에 지하수가 마르지 않도록 보이지 않는 영역에서 애쓰시는 분들에게도 돌봄이 필요해요.
홍열 영화를 만들 때 전국에 44명이던 마을 방과후 교사가 35명으로 줄었어요. 어떤 분은 10년 동안 방과후 교사를 하셨는데 터전이 없어졌어요. 그동안 쌓아온 모든 것이 사라져버린 거죠. 효율성을 기준으로 삼을 때 언제든 사라질 수 있는 일이라면, 이렇게 고용이 불안정하다면 누가 이 일을 할 수 있겠어요. 이게 살림이랑 똑같아서 열심히 해도 티가 나지 않아요. 문제가 터지기 전에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고, 당장 눈에 띄는 일에만 돈을 쓰려고 하죠. 문제가 없다고 외면하다 보면 나중에 더 큰 사회적 비용이 발생하거든요. 국가와 사회가 사건 사고가 생기지 않게끔 제도적으로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 스튜디오 그레인풀

코로나19 공교육 시스템이 멈췄을 도토리 마을 방과후는 긴급 태세에 돌입해 운영 시간을 늘렸어요. 국가가 해야 일을 대신 셈이에요.
다은 아이들이 학교에 못 간다는 건 무척 큰일이에요. 맡길 데가 없으니까요. 그래서 선생님들이 긴급 돌봄 체제를 가동하고 아침부터 보내도 된다고 하셨어요. 밀집도를 줄여야 해서 돌봄이 가장 필요한 저학년 아이들 위주로 등원했는데 코로나19가 지속되니 집에 있는 고학년 아이들도 걱정되는 거예요. 그래서 회의를 거듭하면서 계속 바뀌는 상황에 대처했고, 아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집에 직접 찾아가서 문도 두드리고 그랬어요.

초등 돌봄을 국가에서 공적 영역으로 편입하고 있지만, 마을 방과후 교사는 교사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그에 따른 지원도 얻지 못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예를 든다면요?
다은 코로나19 초기에 돌봄 종사자는 우선 접종 대상자로 분류되어 빠르게 접종했어요. 그런데 여기는 조합에서 운영하는 비인가 기관이라 선생님이 우선 접종 대상자에 속하지 못했어요. 선생님들은 60명의 아이들하고 있으니 마음이 타들어가 여기저기 전화하는데, 담당자를 연결해주지 못하는 거예요. 우리 소관이 아니다, 사정은 알지만 해드릴 수 있는 게 없다, 이런 식으로 말을 돌리더라고요. 직업란에 ‘교사’라고 쓸 수 없는 사람들이라 위급한 상황에서도 지원을 받지 못했어요.

도토리 마을 방과후에는 교사와 학부모의 유기적 관계도 중요하게 작용해요. 관계가 공공 학교의 선생님과 학부모 관계와 어떻게 다르다고 느끼시나요?
다은 일단 학교 선생님은 뵙기 어려워요. 뵈려면 먼저 신청해 약속을 잡아야 하고, 어떤 일이 있을 때만 뵙게 되죠. 계속 접촉해야 상황을 공유하고 마음도 나눌 텐데, 공교육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는 서로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마음이 전제로 깔려 있어요.
홍열 그런데 여기에서도 아이들과 관련된 것은 부모가 개입하지 않고 전적으로 선생님에게 맡겨요. 선생님들이 아이들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운영 제반은 부모가 맡고요. 이러한 사실은 선생님들도 알고 있죠. 부모도 선생님이 뭐 하는지 알고 있고요. 서로 이야기해주니까요. 어떤 활동을 할 때 선생님들이 아이들과 미리 소통하기 때문에 아이들도 무엇을 할지 알아요. 세 주체가 말 그대로 각각 주체로서 서로 믿고 존중해요. 서로의 돌봄을 받으면서요. 어른만 아이를 돌보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도 돌봐요. 선생님이 아프고 힘들 때 다가서서 위로해줘요. “힘들어? 어디 아파?” 선생님들을 기운 차리게 해주는 말이죠.

ⓒ 스튜디오 그레인풀

공동육아는 아이와 어른이 서로를 돌보고, 서로에게 배움이 된다.”라고 하셨어요. 공동육아를 하며 분이 배운 점은 무엇인가요?
다은 다정함을 배우고, 진정한 만남을 배우고, 더불어 살아감을 배우고, 그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인지,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배워요. 저희가 좋은 이야기만 했는데, 이 안에서도 많은 일이 벌어져요. 여기가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위험한 일이 일어나지 않아서 안전한 곳이 아니라, 어떤 일이 일어나도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서로의 시간을 견뎌줄 거라는 믿음이 있기에 안전한 곳이에요.
홍열 제가 배운 건 공동체가 유지되려면 뭔가를 바라면 안 된다는 것. 내가 열 개의 품을 내면 한 개가 돌아와요. 근데 가장 필요할 때 돌아와요. 그래서 공동체는 혜택을 받으러 오면 유지되지 않는 것 같아요. 현재 조합원들이 ‘개봉 지원단’을 만들어 도와주시고 있거든요. 열여섯 분이 계시는데 회사에서 몰래 메일도 써주시고, 배너도 만들어주시고, 야근하시는 분도 있어요. 공동체이니 내가 엄청난 환대를 받을 거라는 생각은 판타지에요. 그저 각자의 위치에서 나누던 마음이 쌓여서 어느 순간 쫙 연결되는 것이죠.

마지막으로 관객들에게 한마디해주세요.
홍열 이 다큐멘터리는 드러나지 않는 돌봄 노동자들의 이야기지만, 우리 모두 사회 안에서 불안한 존재고 자신의 존재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는 분도 많잖아요. 그래서 서로 위로받고 위로해줄 수 있는 영화였으면 좋겠어요. 난 혼자가 아니라고, 가치 있는 것을 믿고 내가 하는 선택이 틀리지 않았다고 느끼면서 극장을 나가셨으면 좋겠어요.
다은 '논두렁’ 선생님이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나중에 애들이 나를 같이 재밌게 놀았던 사람, 자기를 지지하고 응원해준 사람으로 기억하면 좋겠다고. 이 영화를 보고 우리도 누군가에게 그런 지지를 받으며 신나게 놀 때가 있었다, 우리에게 그런 존재가 있었고 그런 돌봄 안에서 지냈던 시절이 있었다는 걸 기억해주셨으면 좋겠어요.


글. 원혜윤
사진제공. 스튜디오 그레인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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