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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1 컬쳐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박재범 감독 ― 불완전하기에 비로소 완전해지는 (1)

2023.01.24


'스티로폼을 흩뿌리니 눈이 되었고, 천을 펄럭이니 바다가 되었다. 사물을 직접 자르고 이어 붙여 장면 한 컷 한 컷, 인물 한 명 한 명을 창조해나간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은 45년 만에 탄생한, 국내 역사상 세 번째 장편 스톱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집요하게 파고들며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 박재범 감독은 그렇게 우리에게 재미를 넘어 감동과 경이를 선사한다.'


ⓒ 사진제공. ㈜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를 완성하기까지 꼬박 3 3개월이 걸렸어요. 관객을 만날 텐데 소감이 어떠신가요?
아직은 생경한 느낌이 앞서요. 늘 영화를 보던 관객 입장이었는데, 우리가 만든 영화로 관객에게 말을 건다는 점이 가장 큰 이유겠죠. 적은 예산으로 대한민국에서 스톱모션 애니메이션, 그것도 장편을 만드는 것 자체가 무모한 도전이었고, 주변에서 회의 섞인 우려의 목소리가 많았어요. 물론 응원해주시는 분 역시 많았고요. 개봉하고 나면 영화에 대한 평가와 다양한 시선이 뒤따르겠지만, 그것과 무관하게 제게는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이 세상에 나왔다는 사실 만으로 작은 기적이에요.

영화의 배경은 유목민의 툰드라입니다. 주인공은 툰드라 원주민 부족이에요. 툰드라 땅과 그곳에서 살아가는 원주민을 소재로 삼은 이유가 궁금합니다.
대학생 때 우연히 SBS 다큐멘터리 <최후의 툰드라>를 봤어요. 툰드라에서 순록 수천 마리를 치며 사는 유목민 네네츠족을 담은 작품이에요.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면서도 흰 눈처럼 티 없이 순수한 모습이 무척 아름다웠고 무엇보다 행복해 보였어요. 본능적으로 끌렸고 강한 인상을 받았죠. 저는 시나리오를 쓰면 필연적으로 지난 삶을 되돌아보는 편이에요. 다섯 살 때 엄마가 아픈 모습을 보고 처음으로 ‘나를 지켜주는 엄마라는 존재가 영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는 막연한 두려움을 느낀 기억이 떠올랐고, 불쑥 설원에 떨어진 붉은 피의 이미지가 연상되었어요. 그렇게 다시 이 다큐멘터리를 보게 되었고, 영화가 시작되었어요.

ⓒ 사진제공. ㈜더쿱디스트리뷰션

영화를 보는 내내 경이를 느꼈습니다. 광활한 툰드라 설원, 절벽, 오로라 대자연이 탁월하게 구현되었어요. 자연을 묘사할 가장 신경 부분은 무엇인가요?
다 손으로 제작한 세트지만, 카메라에 비치는 모습은 실제 시베리아처럼 보이게 하고 싶었어요. 비디오게임처럼 극사실적 묘사가 아니라 보는 이에게 상상의 여지를 주는 자연의 공간을 만들고 싶었어요. 특히 자연은 그 자체로 변화무쌍한 동시에 인물의 마음을 보여주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해요. 영화 안에서 자연과 인물이 상호작용을 하는 세계관을 만들기 위해 설계했고, 공간이 가진 성격이나 분위기가 인물들의 상황과 자연스럽게 일치하게끔 구성했죠. 그리샤가 확신을 가지고 집을 떠날 때 눈이 그치고 하늘에 북극성이 보이는 상황처럼요.

ⓒ 사진제공. ㈜더쿱디스트리뷰션

광활한 대지에 퍼지는 묵직한 진동 소리, 설원의 신비와 숲의 영험한 기운을 표현하기 위한 , 영화를 보면서 소리와 빛이 중요한 요소로 작용한다고 느꼈어요.
빛과 소리에까지 신경 쓰고 궁금해해주셔서 기뻐요. 실제로 신경을 많이 썼거든요. 빛은 제가 스톱모션을 좋아하는 이유 중 하나예요. 같은 장소라도 새벽이나 노을이 질 때 느껴지는 감정이 다르잖아요. 빛과 소리는 감정과 기억을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영화가 빛과 소리를 다룬다는 점이 흥미로워요. 영화의 절반은 소리라는 말에 전적으로 동의하거든요. 이런 의미에서 빛이든 소리든 영화 안에 담기는 감정이 과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중간에 집중이 흐트러지는 부분이 없게끔 신경 썼어요. 촬영 감독, 음향 감독, 음악 감독님 들이 고생을 많이 해주셨어요.

이 글은 '<엄마의 땅: 그리샤와 숲의 주인> 박재범 감독 ― 불완전하기에 비로소 완전해지는 (2)'로 이어집니다.


글. 원혜윤
사진제공. ㈜더쿱디스트리뷰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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