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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1 컬쳐

탱고와 외모 (2)

2023.01.28


이 글은 '탱고와 외모 (1)'에서 이어집니다.

외모에 대해 덜 말하기

ⓒ unsplash

이런 사회에 문제의식을 가진 나의 대응은 “아닌데? 남자도 외모 중요한데? 남자도 좀 관리하면 좋겠는데?”라고 호통치는 것이었다. 일상에서 꾸준히, 신념 어린 실천을 이어갔다. ‘못생긴 남자’에 대한 부정적 감정을 지속적으로 표출하고, 남자 외모에 대한 취향을 떠들고 다녔다. 여성의 외모가 빈번히 얘기되고 또한 더 높은 기준을 요구받는 비틀린 상황의 균형을 맞추는 일은 보편적인 한국 남자들이 좀 더 외모에 신경 쓰게끔 만드는 것으로부터 가능하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다. 대상이 남성이든 여성이든, 외모에 대해서는 가급적 말하지 않는 편이 사회를 위해서도, 나를 위해서도 좋겠다고 마음먹었다. 외모에 대해 말할수록 ‘외모가 중요하다’는 틀을 갖고 세상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거울 앞>의 저자는 ‘스키마(Schema)’라는 인지 심리학 용어로 이 현상을 설명한다. 스키마는 경험을 조직하고 현실에 대한 인식을 바꿔놓는, 우리가 내면에 가지고 있는 틀이다. 이것은 우리가 어디에 주의를 쏟을지, 그리고 불안정하거나 모호한 정보를 어떻게 메울지를 돕는다. 예를 들어 강력하게 발달된 ‘외모 스키마’를 가지는 경우, 대상의 여러 특질 가운데 외모에 가장 먼저 집중하며 외모를 성격과 도덕성, 훌륭함, 성공까지 연결 지을 가능성이 크다. 내 생각을 말했을 때 그것을 외모와 연결시킨 탱고인도 외모 스키마를 가지고 있던 게 아닐까?

그가 던진 화두를 떠올려본다. 그의 말처럼 어리고 예쁜 여성이 삶에서 유리할 때가 있을 수 있고, 탱고를 추며 좋은 경험을 더 많이 할 수도 있다. 인간은 아름다움을 마주할 때 빠르게 알아보고 기쁨을 느끼게끔 진화해왔고, 자신을 기쁘게 한 상대에게 우호적인 태도를 가질 확률은 높으니까. 하지만 그런 현상이 ‘당연하다’고 믿고 말하는 태도에 대해서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부적절한 현실을 고착화하기 쉽기 때문이다.

ⓒ unsplash

다른 예를 들어보자. 인간이 설탕을 먹으면 기분이 좋아지는 것은 수백만 년간 진화한 결과다. 인간은 천천히 진화해왔는데, 환경이 빠르게 바뀌었다. 지금의 풍요로운 환경에서 무절제하게 설탕을 퍼먹다가는 병을 얻고 건강을 잃고 말 것이다. 아직 우리 몸이 지금 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게끔 바뀌지 못했기 때문이다. 즉 인공적인 환경에서 즉각적인 기쁨을 무절제하게 충족시키면 건강에 나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거울 앞>의 저자는 인간의 미모 역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아름다움을 배가하거나 없던 아름다움도 창출하는 기술과 자원의 시대, 무언가를 팔기 위해 아름다움의 이미지가 끊임없이 쏟아지는 현대 문화 속에서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절제’가 필요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스키마를 가지기 위한 의식적인 노력이 필요하다. 무엇이 우리 자신의 삶과 사회에 중요한지 환기하며 그것에 더 집중하려는 노력 말이다.

실천은 쉽지 않다. 나 역시 예쁘고 빛나는 것을 보면 쉽게 흥분한다. 스스로를 꾸미는 것도 때때로 즐긴다. 탱고를 출 때 더욱 그런 경향이 있다. 9cm 굽의 반짝이는 탱고 슈즈, 몸의 선이 드러나며 맵시를 내는 신축성 좋고 감촉 부드러운 옷이 기분을 좋게 한다. 하지만 이로써 ‘여성성’을 재현하며 성별 이분법 강화에 일조하는 건 아닐지, 일종의 죄책감을 느끼기도 한다.

<거울 앞>의 저자는 ‘꾸밈’ 전반을 비판하지는 않는다. 다만 행복한 중간 지대를 찾으라고 조언한다. 아름다움을 즐기되 적당한 자원을 배분하며, 그것이 궁극적으로 내가 원하는 바에 방해되지 않도록 균형을 잡는 것이다. 의복의 경우 저자가 강조하는 것은 편안한 움직임이다. 하의의 길이는 충분한지, 옷을 입는 동안 계속 신경 써야 하거나 숨을 참아야 하거나 불편한 자세를 취해야 하는 것은 아닌지 살피자는 것이다. 편하지 않은 옷은 우리 머릿속의 소중한 공간을 차지하고 일을 방해할 것이므로. 그렇다면… 탱고를 추기 위해서는 움직임이 편한 옷을 지향할 수밖에 없으니까… 이 문제는 일단 그냥 넘어가볼까?

ⓒ unsplash

다른 문제는 아름다움에 대한 칭찬이다. 나는 아름다운 대상을 보면 벅차올라 “정말… 아름답네요…”라고 표현해버릴 때가 많다. 대상이 사람일 때도 그랬다는 게 문제다. 앞으로 자제하겠다고 다짐한다. 외모 칭찬이 결과적으로 억압이 될 수 있음을 인지했기 때문이다. 인간이 늙는 것은 자연의 섭리이고 ‘어리고 예쁜’ 상태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그런 일시적인 상태에 대한 칭찬은 강박만 부추길 뿐, 다정한 관찰 끝에 건네는 상대의 본질과 닿은 칭찬의 효과와 다르다.

나도 다른 칭찬이 더 기분 좋다. 당신의 관점은 신선하다, 당신과 대화하는 게 즐겁고 재밌다, 당신의 글에 공감했다, 당신의 활동을 보며 영감받는다 등등. 탱고 추는 상대로부터는 “그동안 꾸준히 노력했나 보네요?” “당신과 같이 추는 탱고가 즐거워요”와 같은 칭찬을 들으면 기쁠 것이다. 내가 바라는 바를 타인에게 먼저 해봐야지.

또한 올해는 거울을 덜 보고, 외모의 아름다움을 덜 추구하겠다. 못생긴 남자들도 덜 구박하겠다. 그것이 ‘나는 이 정도 노력하는데 너는 이것도 안 하냐.’며 얄미워하는 감정에서 비롯된 것임을 돌아본다. 내가 좀 더 내려놓으면 상대에 대해서도 내려놓을 수 있겠지(대신 ‘님’들도 적당히 양심 있게 행동하십쇼). 한 인간으로서, 더 성숙하고 내실 있는 사람이 되는 데 역량을 집중할 것이다.


글. 최서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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