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사를 준비하면서 두 가지 취미가 생겼다. 하나는 수시로 핸드폰을 들여다보는 일이고, 나머지 하나는 지하철역 앞에 서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는 일이다. 그렇다. 뜬금없이 유행한 지도 한참 지난 중고거래 어플 ‘당근마켓’에 빠진 거다.
당근마켓, 일명 ‘당근’이 유행한 지는 꽤 오래되었지만, 평소 한번 손에 들어온 물건을 좀처럼 버리지 못하는 편이라 한두 번 사용해본 게 다였다. 그동안 풀소유, 맥시멀리스트로서의 삶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중고거래에 빠진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하다. 1년 반 전이었나. 지금 사는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이삿짐센터 기사님한테 들었던 말 한마디 때문이었다. “아니, 내가 이 일 하면서 옷이 이렇게 많은 사람은 처음 보네. 옷 장사해요?” 주말에 이삿짐을 미리 싸놓으려고 옷장을 들여다보고 있는데 문득 그때 들었던 그 말이 떠오른 거다.
옷 욕심이 많은 편이라는 건 알았지만, 남들 눈에 그 정도일 줄이야. 실제로 집을 정리하고 보니 싸둔 짐의 절반이 옷이라 깊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여기 있는 옷 중에 내가 실제로 입는 옷이 얼마나 되지? 당장 이번 주만 생각해봐도 똑같은 옷을 입은 날이 더러 있었다. 이래서야 불필요한 공간만 차지하는 꼴 아닌가. 더군다나 이사 갈 집 수납 공간은 지금보다 훨씬 적다.
처음은 기사님의 한마디 때문이었지만 따지고 보면 이런저런 이유로 시작하게 된 중고거래였다. 그리고 나는 곧 수집병이 중고거래에 꽤 도움이 된다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다. 옷에 달려 있는 태그나 쇼핑백, 포장지 같은 것들을 쉽게 버리지 못하는 성격 덕을 봤다고 해야 할까. ‘택 포함’, ‘더스트 백 포함’ 판매 글에 단 몇 글자만 덧붙이면 보다 빠른 거래가 가능함은 물론 더 높은 판매가에 물건을 팔 수가 있다.
이삿짐 줄이기를 목표로 ‘열당근’을 한 덕에 현재 나의 매너온도(당근마켓 사용자로부터 받은 칭찬, 후기, 비매너 평가 등을 종합해서 만든 매너 지표)는 36.5도에서 39.5도까지 올라갔다. 거래를 여러 번 하다 보면 매너온도에 집착하게 되는 나를 발견할 수가 있는데, 그도 그럴 게 거래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 확인할 수 있는 거라곤 매너온도밖에 없기 때문이다.(그렇다고 대화도 해보기 전에 온도만 보고 판단하라는 소리는 아니다.)
덕분에 집도 비우고 제법 쏠쏠한 용돈벌이를 했지만, 그렇다고 이사를 두 번 하고 싶지는 않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다.
글. 김윤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