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종종 주변에서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으면, 제목처럼 말하는 버릇이 생겼다. OTT가 일상을 넘어 정신을 지배하는 걸까? 기록하지 않기엔 재밌는 사건들이 너무 많다. “삼남매가 수도권에 흩어져 살아서, 중간에서 찜질방 회동 가져요. 식혜 한 사발씩 하고, 일렬로 앉아서 스트레칭 해요. 카톡방 공지사항은 이거예요. ‘나대면 나락’. 가훈이랄까?” <나의 해방일지>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톤의 이 이야기는, 페이크 다큐나 시트콤으로 만들면 좋을 것 같다. 회동을 위해 찜질방으로 이동해, 같은 찜질복으로 갈아입고 식혜 사발식을 하는 삼남매의 모습이 상상된다. 그들이 ‘나대는’ 순간은 언제일까. 또 그렇게 나댄 뒤엔 어떻게 나락에 도달하게 될까. 삼남매에게 나댐의 기준은 뭘까. 궁금증이 꼬리를 문다.
얼마 전엔 친구네 집 김장이 망해서 김치찜을 못 해 먹고 사 먹어야 한다는 얘기를 들었다. 한국에서 김장이 망하는 경우가 있나, 생애 처음 드는 궁금증이었다. 자초지종에 따르면, ‘김장 당사자’인 어머니와 평가단인 다른 가족의 의견이 대립했다고 한다. 당사자는 ‘배추가 미쳐서 그렇다’고 해명했다. 현재 당사자는 김장의 실패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포인트. 친구는 ‘본인의 김치가 맛없다는 걸 인정하느냐 마냐는 전라도 여성의 자존심’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 이야기는 <모던 패밀리> 스타일의 2020년대 한국 버전 시트콤으로 소화하면 어떨까.
과거에 기반 한 에피소드도 있다. 나는 최명희의 <혼불> 읽기를 올해 목표로 삼은 참인데, 친구가 이런 말을 해준다. “중학교 때, 영어를 엄청 잘 섞어 쓰고 굉장히 ‘날라리’ 같은 친구가 있었어. 걔가 어느 날 <혼불>을 엄청 열심히 읽는 거야. ‘재밌어?’ 물어보니까 대답이 ‘어, 존나 재밌어.’였어.” 영미권 문화에 익숙한 10대 소녀는 어쩌다 <혼불>을 독파하게 됐을까? 구체적으로 어디가, ‘존나’ 재밌었을까? 이 에피소드가 진정한 K–하이틴 스토리가 되어주진 않을까? 뿐만 아니다. 나를 ‘관찰자’로 만드는 덕후 친구들의 일상을 보면, 그들의 덕질 여정을 누군가 OTT 시리즈로 만들어줬으면, 하고 바라게 된다. 덕질을 위해 돈을 벌고, 티켓팅을 하고, 어떤 굿즈를 살지 밤낮 고심하고 (그리고 소속사를 비판하는) 모습들. 문화적으로 놓치기 아쉬운 텍스트가 될 것이다.
어떤 사건을 전해 들을 때면, 그 사람이 극적으로 생각하는 지점을 함께 알아차리게 된다. 그걸 파악하는 게 재미있다. 베일에 감춰진 이야기가 있으리라 짐작하는 것도 재미있다. 왜 그 이야기를 인상 깊게 기억하게 됐는지를 되짚는 것도, 재미있다. 난 OTT 중독자가 아니라 재미 중독자였던 걸까. 이런 얘기를 나에게 자주 해주면 좋겠다. 두둥!
글. 황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