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서재도 번역이 되나요? : 박선형 번역가 (1)'에서 이어집니다.

기술이 발달할수록 출판에서 번역가가 중요한 이유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단순히 외국어를 잘한다고 해서 번역을 할 수 있는 건 아니에요.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까지 아울러야 하죠. 번역가가 단순히 글을 옮기는 작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요. 기본적으로 문해력과 독해력도 있어야 하고, 글을 쓰는 재능도 있어야죠. 이렇듯 번역은 굉장히 복합적인 일이지만, 출판계의 번역 환경이 열악한 건 사실이에요. 제가 ‘번역가의 서재’를 나름의 사명감을 가지고 운영하고 있는 이유도 더 많은 번역가들이 독자와 만나면서, 자신의 일에 자부심을 가지고 좋은 번역서를 소개할 수 있는 공간이 되길 바라기 때문이죠.
번역서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어렸을 때 번역서를 좋아했던 이유를 떠올려보면, 다른 나라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지가 제 호기심을 자극했던 것 같아요. 책을 읽는 게 아니라, 책에 빠져든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통해 집 밖에 나가지 않아도 세상을 알 수 있다는 말이 있듯이, 번역서를 통해 다른 나라의 언어를 직접 구사하지 않아도 그 나라의 책과 작가를 알게 된다는 게 굉장히 멋지고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비록 책 한 권이지만 그 안에서 세계는 상상하는 만큼 넓어질 수 있고, 오롯이 내 것이 될 수도 있다는 게 신비로운 일이에요. 그래서 번역서를 읽으면서 작은 설정에서부터 커다란 세계관까지 상상력을 펼쳐볼 수 있지요. 또 나라마다 다른 언어가 지닌 특징을 들여다볼 수 있는 점이 흥미롭고, 이국의 문화와 역사를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는 점도 큰 매력이 아닐까 싶어요.
독자로서, 번역가로서 좋은 책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독자로서 좋은 책은 다시 읽고 싶고, 소장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책인 것 같아요. 서점에 입고하는 책을 고를 때 이 점을 항상 염두에 두고 있어요. 내가 정말 소장하고 싶은 책인지 말이죠. 번역가로서는 이 책은 내가 가장 먼저 읽고 번역하고 싶다는 욕심이 드는 책이 좋은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번역가라는 직업에 매진할 수 있는 이유가 궁금해요.
식상한 대답일지 모르지만, 번역이 정말 재미있어요. 최근에는 책 집필과 번역을 병행하고 있는데, 제가 번역 작업을 얼마나 좋아하는지 극명하게 드러나더라고요. 번역할 때는 정말 몰입하고 즐거워서 작업 속도도 굉장히 빠르고요. 반면 글을 쓸 때는 몰입하기 힘들어요. 왜 그런가 하고 생각해보니 글을 쓰는 게 재미없다기보다, 제게는 번역이라는 작업이 훨씬 의미 있는 일이라고 여겨져서 그런 것 같아요. 번역은 작가의 이야기를 진솔하고 유익하게 들려주겠다는 의도를 품고 있어서인지 몰라도, 작업하면서 내내 보람을 느껴서인지 없던 기운도 솟아나요. 작가와 번역가는 결국 글을 쓴다는 점에서 한 끗 차이 같은 일처럼 보이지만 무엇이 단순히 쉽다, 어렵다는 비교보다는 그 일을 향한 마음가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지난 5년 동안 서점을 운영하면서 생긴 변화는 무엇이었나요?
‘번역가의 서재’는 단골 독자분들이 이끌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 겸손해서가 아니라 저는 이 공간을 열어드리는 서점지기일 뿐이고요. 책이 좋아서 책을 매개로 이곳에 모였지만,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가고, 때로는 위로받고,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꾸준히 찾아주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 경험들을 함께할 때마다 뭉클해져요. 어느새 하나의 사랑방으로 손님들께 다가가고 있더라고요. 저 역시 이런저런 사연을 가지고 다양한 삶을 살아가는 분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용기를 얻고 때론 위로를 받으며 작든 크든 무슨 일이든 감사하게 여기게 된 것이 서점을 운영하면서 크게 달라진 점이에요.
자연스럽게 한 권 한 권, ‘번역가의 서재’가 채워지고 있네요.
정말 그렇게 되어가고 있어요. 다른 언어에 흥미를 느끼고, 번역을 통해 서점까지 운영하게 된 게, 돌아보면 정말 신기해요. 처음 서점을 시작할 때 사랑방 같은 곳을 만들 생각은 없었고, 널리 알린 적도 없지만 서재의 책들처럼 하나, 둘 모인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다 보니 어느새 그런 특별한 공간이 되어 있더라고요. 동네 책방은 단순히 책을 파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들의 이야기로 경험을 쌓고 취향을 공유하는 공간이라고 생각해요. 무슨 일이든 결코 의도해서 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 같아요. 진심으로 좋아하는 것을 묵묵히 하다 보면 마음이 통하는 사람들과 결국 서로서로 이어지게 된다고 믿어요.
번역가의 서재
서울특별시 마포구 동교로17길 67 101호
인스타그램 @tlbseoul
<박선형 번역가의 추천 도서> #번역가추천예술서
<예술가란 무엇인가> 레너드 코렌 지음, 박정훈 옮김, 안그라픽스 펴냄

ⓒ <예술가란 무엇인가> 책 표지
섬세하면서도 독창적인 시선으로 자신만의 미학관을 보여준 레너드 코렌의 현대 예술 작가론이라고 해도 무방한 이 책은 예술가들의 창작 활동을 통해 예술가의 작업이 다른 일과 비교하여 본질, 정신, 방법론 면에서 어떻게 다른지 사유하게 합니다. 저자의 시선을 통해 바라보는 예술가의 내면의 이야기에서 현대 예술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 단서를 발견하게 됨과 동시에 ‘예술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대한 현명한 대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일상에서 기존의 관습에 저항하고 현재 정체된 상태에서 벗어나려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예술가라고 말하는 저자의 말처럼 스스로를 예술과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한 권입니다.
#번역가추천소설
<언어의 무게> 파스칼 메르시어 지음, 전은경 옮김, 비채 펴냄

ⓒ <언어의 무게> 책 표지
<리스본행 야간열차>의 파스칼 메르시어의 신작 장편소설이자 유작으로 남은 작품입니다. 파스칼 메르시어를 추모하는 마음을 담아 소개하고 싶은 책이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아름다운 소설입니다. 600페이지가 넘는 묵직한 분량에 압도당하지만 작가와 번역가, 출판인, 문학을 삶의 지침으로 삼은 모든 이들의 삶을 사색하듯 우아한 언어로 묘사되어 매 페이지마다 밑줄을 긋게 될 것입니다. 문학과 언어를 사랑하는 독자에게 느린 호흡으로 사색하며 읽기를 추천하는 책입니다. 언어에 매혹되어 수십 년 동안 번역을 해온 주인공 레이랜드의 말이 이 책을 관통하는 메시지로 느껴집니다. “인생은 아름답다. 삶이란 언제나, 매 순간 시작되니까.”
소개
정규환
에디터, 작가. 2023년엔 무슨 일을 할까, 누구에게 기쁨을 줄까 고민하고 있다. @kh.inspiration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