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춘기를 겪는 철과 미애, 함께하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서로에게 묻고 싶은 말들이 늘어난다. ‘나는 이런데, 넌 어때?’ 하지만 속에 묻어두었던 말을 꺼내는 데도, 답을 듣는 데도 용기가 필요하다. 철이가 미애에게, 미애가 철이에게 신호를 보낸 순간들을 사심을 담아 모아봤다.
* 어디까지나 주관적인 해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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넌 대체 뭐야? (32화)
같은 반, 옆자리, 옆 빌라. 시도 때도 없이 눈앞에 나타나는 황미애가 김철이 다니는 학원에 신규 수강생으로 들어왔다. 학교에서 ‘철이와 미애’로 엮여서 주목받는 것도 싫은데 이제 학원에서까지 보게 생겼다. 시골로 돌아가려면 1년은 조용히 보내야 하는데, 황미애랑만 엮이면 주변이 시끄러워진다. 게다가 여기엔 고구려중 친구들도 있고… 어쨌든 김철은 제발 좀 조용히 살고 싶다! 그래서 하던 대로 무시를 해보려는데 황미애가 학교에서는 괜찮으니 학원에서라도 친하게 지내자고 한다. 김철의 누나나 부모님이 시켜서가 아니라 그냥 너랑 잘 지내고 싶다고. 어쩌다 보니 손가락까지 걸었다. 얜 대체 나랑 왜 친하게 지내고 싶은 걸까?
어쨌든 황미애는 무시하기엔 지나치게 신경이 쓰인다. 모진섭 그 날라리(김철 시점)랑 뭔가 문제가 있는 것 같길래 제 딴에는 도와주려고 했을 뿐인데 황미애는 도리어 화를 낸다. 아는 척하기 싫어해서 협력해줬더니 갑자기 왜 이러냐고? 아니, 물론 황미애도 같이 껴서 공부하자는 학원 친구의 말에 좀 더 생각해보자고 하긴 했지만 그건 다 이유가 있으니까 그런 거다. 그런데 황미애 얘는 진짜 뭘까? 화낼 땐 언제고 이번엔 학원 숙제를 같이 하자고? 학원을 좀 먼저 다닌 것뿐이지 어차피 나랑 같이 한다고 도움이 되지도 않을 것 같아서 얼버무렸는데 황미애는 거기다 대고 빵을 내민다. 학교에서 점심은 먹냐고, 친구니까 이 정도는 괜찮지 않냐면서. 어떤 반응을 해야 할까. 어차피 도움도 못 주는데 뭘 받기도 그래서 거절했는데, 그랬는데! 어째 자꾸 마음에 걸려 작년 같은 반 반장이었던 여자애에게 부탁해 문제집 해설지를 받는 생전 안 하던 짓까지 했다. 해설지라도 미리 보면 같이 공부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빵도 같이 주길래 받았다. 근데 이후로 황미애가 좀 이상하다. 원래도 이상했지만, 이번엔 정말 이상하다. 어째 나를 피하는 것 같다.
그러기를 일주일, 어쩌다 학원 버스를 같이 타게 됐는데 황미애 말이 사실 자기가 나한테 삐졌었단다. 좀 괜찮아졌나 싶어 넌지시 숙제 얘기를 꺼냈더니 이미 다했단다. 같이 하자고 할 땐 언제고. 나는 누구 때문에 안 하던 부탁까지 했는데! 근데 얘 아무리 봐도 뭘 숨기고 있는 것 같다. 숨길 거면 잘 숨기지 숙제 덜한 것도 딱 들켰다. 그래서 결국 먼저 말해버리고 말았다. 집 앞에서 황미애를 기다리는 수고까지 들여가면서. “숙제해야지. 같이.” 먼저 같이 숙제하자고 한 건 너면서, 왜 모른 척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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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친구 맞지? (105화)
황미애는 오기를 빼면 시체다. 남들은 김철더러 대마왕이라는데 황미애 눈에 김철은 덩치만 컸지 어린 자신이 자갈길을 걷기 힘들어하자 삽으로 자갈을 다 치워줬던 그때와 달라진 게 없어 보였다. 쟤는 여전히 벌레나 무서워하는 중학생 남자애 아닌가? 어릴 때 봤던 애라 그런지 편했고, 그래서 김철의 속도에 맞출 생각은 못 하고 마구 다가갔다. 호의를 무시당하는 건 일상이요, 친한 척하지 말라는 말까지 듣는 둥 그 과정에서 문제가 좀 많았지만, 황미애는 이런 결론을 내린다. 걘 못된 것 같지만 절대 날 안 싫어한다! 우리 집 전등 나갔을 때 전등도 갈아주고, 넘어지는 것도 잡아주고, 무엇보다 다른 남자애들과 달리 키가 작다고 놀리지 않는다. 결론을 내린 황미애는 전처럼 무작정 쫓아다니기보다는 김철의 속도에 하나하나 맞춰나가 보기로 했다. 일명 김철과 ‘진짜’ 친구 되기 프로젝트. 상황이 좀 그렇긴 했지만, 결국 친구 하자는 답까지 받아냈다. 드디어 김철과 친구가 됐구나, 싶었다.
하나 간과한 것이 있는데, 김철이 그동안 황미애랑만 친구가 된 것은 아니다. 김철은 운동도 잘하니 (전과 비하면) 남자애들과도 제법 어울렸고, 지나가는 여자애들 말로는 대마왕도 제법 괜찮은 것 같단다. 김철이, 잘생긴 편인가? 김철을 바라보는 호의적인 시선이 늘고, 남들이 보기엔 꽤 ‘특별한’ 친구인 황미애에게 불똥이 튄다. 우리는 ‘진짜’ 친구 사인데, 반 친구들은 김철이 나를 좋아한다고 하질 않나 잘 알지도 못하는 여자애들이 대뜸 찾아와 김철과의 관계를 묻기도 한다. 꼭 사귀어야만 친하게 지내나? 김철과 황미애는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낸 조금 특별한 친구일 뿐이다. 그러니까 말도 안 된다. 에이, 설마 김철이? 나를? 김철에게 궁금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닌데 왜인지 어느 하나 입 밖으로 내뱉지를 못하겠다. 그리고 결국 김철의 마음을 확인할 사건이 터지고 만다. 그것도 친구들이 다 보는 앞에서. “진짜로 황미애랑 사귀어?” 김철에게 관심 있다고 소문이 난 그 여자애가 김철에게 물었고, 김철은 단칼에 아니, 라고 했었지. “얘는 내 친구니까 그만해.”라고. 얘랑 친구가 되겠다고 어떤 짓까지 했던가. 심지어 영원히 친구 하자고 손가락까지 걸었는데! 김철의 입으로 ‘내 친구’라고 또 한 번 확인 사살을 당하니, 알 수 없는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철아, 너한테 나는 어떤 친구야?
글. 김윤지 | 이미지제공. 순끼·네이버웹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