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남미새 아니고 춤미새 (1)'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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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쳐도 해롭지 않은 대상에게 미치자
그런데… 남미새 졸업생인 줄 알았던 내가, 사실은 현역? 내가 빠져 있는 이곳, 소셜 댄스라는 필드가 남미새와 여미새의 온상이라는 ‘머글’의 인식을 접하고 정체성에 혼란이 왔다. 짝을 이뤄 음악에 맞춰 리드와 팔로우를 주고받는 춤이고, 대체로 짝이 남과 여로 구성되다 보니 그 속에 속하는 사람들이 짝 찾기에 미친 사람일 것이라는 인식을 하게 되나 보다.
이런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소셜 댄스 경력 20년 넘는 고인물 Y에게 물으니 이렇게 말했다. “춤판에 남미새 별로 없지 않아? 와봤자 얼마 못 버티고 다른 데 가지.”부연 설명은 이랬다. 이 문화를 제대로 즐기기 위해서는 춤을 배우고 익혀야 하는데, 제대로 즐기기까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만약 춤 자체에 흥미와 열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시간과 노력이 아까울 거고, 더 손쉽고 자원 투자 없이 남미새 활동을 할 수 있는 곳을 찾아 훨훨 날아가지 않겠냐는 것이었다. 그리고 설명 뒤 그가 덧붙인 말에 나는 크게 웃었다. “오히려 여미새가 많지.”
한국 사회 전반에서 그렇듯 이곳도 미인과 미남의 비율 차이가 크다. 아름답고 매력 있는 여성에 비해 잘생긴 남성을 찾기란… 아니 기준을 ‘훈훈한’ 남성으로 낮춰도 정말… 쉽지 않다. 그 점을 남성인 Y도 인정하고 있었다. 이런 맥락에서 ‘괜찮은 여자’들이 모여 있고 자연스러운 신체 접촉의 기회가 많은 이곳이 여미새에게는 꽤 괜찮은 활동 무대가 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그리고 내가 강조하고 싶은 사실은 내가 경험한 사람들 중에는 남미새나 여미새보다 ‘춤미새’가 많았다는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내가 무언가에 미친 새끼라면 그 대상이 춤이었으면 좋겠다.
다행히 2023년은 춤미새로서 여한 없는 해였다. 올해 살사와 바차타를 새로 배우고 사람들 앞에서 공연하며 해당 춤의 기량이 빠르게 향상되는 경험을, 함께 공연하고 응원해준 사람들과의 끈끈한 동료애와 후련한 성취감을 만끽했다. 소셜 댄스에 대해 얕을지언정 넓게 체험하며 입문자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킬 수 있는, 역할에 대해 좀 더 자유롭고 유연한 초보 워크숍이 폭넓고 다양하게 생기면 좋겠다고 생각해왔는데, 올가을 영화를 매개로 평소 생각해온 가치를 실현하며 일종의 실험을 해보기도 했다. ‘어쩔탱고'에서도 소개한 바 있는, 춤 관련 영화를 보고 춤을 추는 행사. 홈춤영(a.k.a 무비포둠칫)이 그것이다. 상영회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새로운 춤 왁킹도 체험해봤는데 신선하게 즐거웠다. 결핍을 느낄 틈이 좀처럼 없던 충만한 시간이었다.
춤미새로서 춤추는 사람을 볼 때 망막에 씌워지는 남미새/여미새라는 필터는 춤 자체의 즐거움과 유익함을 지워버리는, 지나치게 이성애 중심의 사고방식 같아 거부감이 든다. 무엇보다 이성은, 건강하게 관계 맺기 위해서는 미치면 안 될 대상 같다. 심리학을 기반에 둘 때 더 안정적이고 성숙한 관계를 위해서는 연애 초기의 각성 호르몬이 잦아든 뒤 찾아오는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 그것은 사람에게 안정을 느끼게 하는 옥시토신의 시간이며, 상호 간의 존중, 의리, 돌봄 같은 미덕이 강조되는 때이다. 상대가 ‘대상’이 아닌 동등한 인간임을 주지하고 경청하며 서로를 보완하는 관계를 맺고자 지속적으로 (때론 지난하게) 노력하는 일은, ‘미친 상태’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물론 춤에는 미쳐도 된다고 생각한다! 춤에 미치면 건강해지고 (새벽 뒤풀이만 안 한다면) 체중도 감량할 수 있으며 (다만 주 3회 이상을 춰야 할 듯) 무엇보다 즐거우므로. 어느덧 2023년의 끝에 다다르고 있다. 2023년이 아쉬웠다면, 2024년 일상에 새로운 활력과 윤기를 더하고 싶다면 춤의 세계로 오세요.
소개
최서윤
재미있고 의미도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다. 게임 <수저게임>, 영화 <망치>를 만들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 <미운청년새끼>(공저) 등이 있다.
인스타그램 @monthlying
글. 최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