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 책 표지
마음을 다잡고 책 한 권을 고른다면, 올해 나온 SF 작품 중에서는 단요의 <세계는 이렇게 바뀐다>를 권하고 싶다. ‘수레바퀴 이후’라는 부제가 붙은 이 소설은 갑자기 사람들의 머리 위에 수레바퀴가 나타났다는 설정으로 시작한다. 수레바퀴는 사람들의 도덕성을 알기 쉽게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표시한다. 정의로울수록 파란색의 비중이 크고, 부도덕할수록 빨간색의 비중이 늘어난다. 모든 이가 수레바퀴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고, 남들의 내면과 과거를 한눈에 알아본다.
이뿐 아니라 수레바퀴는 사람의 내세를 결정한다. 누가 죽으면 수레바퀴는 심판을 시작한다. 파란색과 빨간색으로 물든 원판이 룰렛처럼 돌아간다. 바늘이 파란색에 멈추면 그 사람은 천국행이다. 온화한 빛이 망자를 감싼다. 바늘이 빨간색에 멈추면 그는 지옥으로 끌려간다. 수레바퀴가 나타난 이후로 사람들은 자기 행위의 결과를 체감하게 되었다. 문제는 최후의 심판이 확률로 결정된다는 것이다. 파란색이 9할이라도 나머지 1할에 당첨되면 지옥에 갈 수 있다. 이는 사람들의 마음을 극도로 불안하게 만든다. 어떻게 해야 파란색이 늘어나는지가 전 세계인의 관심사가 된다. 기후 정의, 봉사활동, 철학적 토론이 인기 화제로 등극한다. 파란색이 많으면 조명을 받는다. 파란색을 관리하는 전문 컨설팅 업체도 등장한다.
보통의 선량한 사람은 파란색이 60% 정도에 그친다. 악행을 범하지 않는 정도로는 파란색을 더 늘릴 수 없다. 직관대로 움직여서도 안 된다. 예를 들어 정의감에 불타 악플을 작성하는 행위는 오히려 빨간색을 늘릴 수 있다. 수레바퀴는 엄격하고 복잡한 계산식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인다. 대체 수레바퀴의 메커니즘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내가 좋아하는 문장은 이것이다. “우리는 좋은 의도만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는 사실을 안다. 그건 강을 사이에 두고 반대편 땅을 도착점으로 삼는 것과 같은 일이라서, 직선으로 걸어갔다가는 급류에 휩쓸리기 마련이다. 여기에서 징검다리 역할을 해주는 것은 명확한 이해와 판단,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이다.”
소설은 윤리학으로 출발해 곳곳으로 뻗어나간다. 수레바퀴는 세계를 바꿨다. 하지만 어떻게? 구체적으로 어떻게? 작가의 말마따나 이 소설은 여러모로 ‘규칙 게임’이다. 소설의 화자는 르포 작가로 수레바퀴에 대한 르포르타주를 쓰는 중이다. 그의 취재에 따라 사건은 시간순이 아니라 논리적 순서로 서술된다. 독자는 수레바퀴를 둘러싼 질문을, 수레바퀴의 규칙을 차근차근 배운다. 총 4장으로 구성된 이 소설은 더하거나 뺄 여지 없이 단단하게 짜여 있다. 작가가 독자로 하여금 특정한 부분에서 특정한 질문을 생각하도록 소설을 설계했다는 사실이 전면에 드러난다. 1장은 윤리학 교수의 인터뷰를 이용한 기본 규칙이라면(그래서 길이도 짧다), 2장은 수레바퀴가 실행하는 응보적 정의가 사회에 미친 영향이자 규칙이 적용된 구체적 사례다.
3장은 규칙의 빈틈을 찾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수레바퀴에 대응해 최적화 전략을 짠다. 만약 천국에 가는 일이 최고의 보상이라면, 파란색이 많은 사람은 자칫 잘못해 빨간색이 늘어나기 전에 빨리 죽는 편이 안전할 수 있다. 그렇다면 파란색이 많은 사람을 죽이고 다니는 행동은 선행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것은 어딘가 이상하지 않은가? 수레바퀴는 규칙을 우회하려는 자에게 가장 중한 처분을 내린다.
허구여서 더 날카롭고 무거운 작품
이는 수레바퀴의 한계이기도 하다. 수레바퀴는 응보적 정의를 강요하고 회복적 정의를 권장한다. 둘 다 강요하지는 못한다. 사람들이 자의로 수레바퀴를 따르게 만드는 일은 더더욱 못 한다. 수레바퀴 아래서 대다수 사람은 행복하지 못하다. 4장에는 감정의 문제가 등장한다. 자식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식을 위하는 일은, 자기를 위하는 일만큼 이기적인가?
여기서 또 흥미로운 점은 소설이 인물을 사용하는 방식이다. 작중 인물이라곤 화자가 취재할 때 단편적으로 등장하는 이들뿐이다. 그들은 개인이긴 하지만 어디까지나 자기 같은 유형을 대표해서 말한다. 인물 간에는 갈등이 없다. 그들은 수레바퀴에 대해서만 발언할 기회를 얻는다. 그러니까 이렇게 말할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수레바퀴다. 소설 속 세계를 차지하는 미증유의 수레바퀴가 흐름을 주도한다. 프레드릭 제임슨이 스타니스와프 렘의 SF <솔라리스>를 두고 한 말이 딱 들어맞는다. “우리는 (…) ‘세계’의 이상하게도 활동적이며 고동치는 생명력이, 보통 서사적 ‘인물들’을 위해 마련되어 있는 행위 및 사건 생산의 기능 중 많은 것을 흡수하는 경향이 있음을 제시하려는 것이다.”
이 덕분에 소설에는 독자가 감정을 이입할 여지가 별로 없다. 화자는 무감정하고 서술은 객관적인 거리를 유지한다. 이는 수레바퀴가 요구하는 바와 잘 맞는다. 수레바퀴는 개인의 감정적 만족을 보장하지 않는다. 수레바퀴의 세계에서 대다수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경제성장이나 풍요는 지양한다. 절제, 절제, 절제를 향한 변화다. 그들이 원치 않아도 변화는 지속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의 세상을 생각하면, 어쩌면 세계가 바뀌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수레바퀴는 완전히 허구지만 작중의 질문은 날카롭고 무겁다. 오랜만에 생각에 몰입하게 되는 소설이었다.
소개
심완선
주로 SF 평론가라는 이름으로 그에 관한 글을 쓴다. 와 함께라면 어디든> 등을 출간했다.
글. 심완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