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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양 똥을 본 적이 있나요? 누군가의 똥을 보고 반갑기는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녹색연합 활동가들은 자주 그러한 경험을 합니다. 심지어 똥을 찾아다니고, 정기적으로 보러 가기도 합니다. 누구의 똥이냐 하면, 바로 멸종 위기종이자 천연기념물인 산양의 똥입니다. 검고 동글동글한 게 꼭 커피콩 같기도 해 제법 귀엽습니다. 산양은 자기가 마음에 드는 자리에 배설을 하는데, 알알이 똥이 무더기로 쌓인 자리가 큰 것은 1m가 넘기도 합니다. 산양이라는 동물도 낯선 데 산양의 배설물은 당연히 처음 보았던 신입 활동가 시절부터 6년이 지난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산양 똥을 보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신기합니다. 예민하고 조심스러운 산양과 직접 만나기는 어렵지만 이렇게 흔적으로나마 그들의 삶을 엿볼 수 있다는 것이 반갑습니다.
활동가가 되기 전 저에게 산은 힘들어서 가기 싫은 곳, 그럼에도 멋진 경치를 보러 가끔 가는 곳이었습니다. 하지만 산양의 똥을 통해 산은 야생동물의 집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배웠습니다. 나를 중심으로 존재해온 산이 누구의 것인지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주로 일 때문에 산에 오르지만, 예전엔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된 지금 저는 자연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되었습니다. 산양이 지나간 자리를 내가 걷고 있다는 연결감이 때때로 벅차기도 합니다. 이 똥 자리 주변 어딘가에 몸을 잘 숨기고 있을 산양들에게 ‘잘 살아! 네가 잘 살 수 있게 나도 열심히 활동할게.’ 속으로 인사를 보냅니다.
‘산양 똥’에서 배우다
하지만 그 인사와 다짐이 무색하게도 산양의 터전은 위협에 시달립니다. 백두대간을 따라 전국에 분포했던 산양은 밀렵과 남획, 개발로 인한 서식지 훼손으로 멸종의 위기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그나마 남아 있는 안정적인 서식지도 빼앗겠다고요? 맞습니다. 설악산 케이블카 이야기입니다. 우리나라 산양의 약 18%가 서식하는 설악산, 그중에서도 케이블카가 들어설 오색 구간은 핵심 서식지입니다. 사업자 양양군은 케이블카 설치 예정지가 산양의 주요 서식지가 아니라 단순한 이동 통로라 주장하기도 했습니다. 당연히 사실이 아닙니다. 케이블카 설치를 위해 공사를 벌이고, 거대한 콘크리트 지주가 꽂힐 자리는 산양이 먹고, 자고, 쉬고, 새끼를 낳고 기르는 곳입니다. 오색 케이블카를 타면 15분 만에 정상에 오를 수 있다고 합니다. 그 15분을 위해 우리는 산양의 집을 파괴하고, 삶을 빼앗는 것입니다. 케이블카 예정지에서는 산양의 흔적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담비와 삵의 똥도 만날 수 있습니다. 흔적이 많은 구간에서는 세 걸음에 한 번씩 마주쳐 “이거 하나하나 다 기록하고 조사하다가는 설악산을 영영 못 내려가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어디 산양뿐일까요? 케이블카 예정지, 아니 설악산 숲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식물. 눈측백의 초록 잎과 악수하고, 사스래나무의 하얀 수피를 어루만지고, 분비나무를 가만 들여다보고, 200년 자리를 지켜온 잣나무를 껴안아봅니다. 하지만 그 잠깐으로는 오랜 시간을 거쳐 설악산에 자리 잡은 풀꽃과 나무들의 이야기를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크고 작은 식물로 빽빽한 숲에서 나는 몹시 이질적이었습니다. 상부 정류장과 지주가 들어설 자리를 표시한 붉은 줄과 깃발만이 인간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습니다. 흔히 인간도 자연의 일부라고 얘기하지만, 환경부의 오색 케이블카 허가 이후 설악산을 찾은 저는 초대받지 않은 불청객, 어울리지 않는 이방인, 누구에게도 환영받을 수 없는 침입자 같았습니다. 나무를 베고, 숲을 파헤치고, 산양을 내쫓은 우리가 감히 자연에 속할 수 있을까요?
이 글은 '산양 집 빼앗고 15분 만에 설악산 정상 정복하고 싶어?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박은정
녹색연합 자연생태팀장
글. 박은정 | 사진제공. 녹색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