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을 갖는 방법은 의외로 간단합니다. 집에 작업실을 만드는 거죠. 빨간 벽돌집으로 둘러싸인 주택 숲속, 마치 예쁜 카페 같기도, 비밀스러운 레스토랑 같기도 한 ‘후암동삼층집’은 진민섭 푸드 크리에이터의 손끝에서 탄생했습니다. 냉이의 초록, 금귤의 주황을 집으로 끌어들인 공간을 통해 유튜브부터 출판, 그리고 조식당까지 새로운 시도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계절의 맛을 따라가다 보면 한 해가 지루할 틈이 없다.”라고 이야기하는 그의 원동력은 제철 요리처럼 이 순간에 집중하는 태도에서 오는 게 아닐까요? 어느새 그의 요리를 닮은 색다른 공간에서 그를 만나 내 집의 선명도를 높이는 방법에 대해 물어보았습니다.
글. 정규환 | 사진. 이규연
‘후암동삼층집’이 만들어진 계기가 궁금해요.
동료들이 하나둘씩 식당을 개업할 때 저도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유튜브 채널을 통해 온라인 공간을 먼저 차리게 됐어요. 이전 집에서 처음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채광이 좋지 않아서 아쉬웠어요. 볕이 잘 드는 집에서 콘텐츠도 예쁘게 제작하고 저 역시도 조금 더 쾌적하게 살고 싶다는 마음으로 새로운 공간을 알아보고 현재의 집에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이 집을 구할 때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
후암동에 오게 된 것 자체가 우연이었어요. 사실 후암동의 존재를 몰랐거든요. 기차역이 가까운 용산구에서 집을 구하려고 했는데 마음에 쏙 드는 집을 찾기가 어려웠어요. 그러던 어느 날 길을 걷다가 아무 버스를 타고 ‘이 동네 괜찮아 보이는데?’라는 생각으로 우연히 내렸던 동네가 바로 후암동이었어요. 거리가 고즈넉하고 예쁜 가게들이 많아 보이는 이 동네에 왠지 제가 찾는 집이 있지 않을까 알아보게 되었죠.
집 겸 작업실을 이용해본 소감이 어떤가요?
일과 생활이 명확하게 분리되지 않는 삶을 살다 보니 저에게 잘 맞아요. 작업실이 외부에 있으면 왔다 갔다 하는 것도 일인데, 집에 있으면 아무래도 편해요. 손님을 초대하기도 좋고요. 요리가 가능한 촬영 스튜디오를 단독으로 구하기에는 부담이 됐는데, 어차피 내가 사는 집을 예쁘게 꾸미자는 마음으로 부담 없이 도전했던 것 같습니다.
구옥으로 결정할 수 있던 포인트는 무엇이었는지 궁금해요.
구옥이 가진 장점이 많아요. 평수도 넓고, 구조가 특이한 집들이 많거든요. 이 집의 경우엔 복도가 있고, 화장실의 타일이 파란색인 게 특이했어요. 무엇보다 주방이 큰 게 좋았어요. 은행나무 가로수가 한눈에 보이는 테라스 공간도 특별하고요.
후암동에 자리 잡길 잘했다고 느끼나요?
이름에서 후암동이라는 지역성을 띠고 있으니 활동하는 데 구심점이 생기는 것 같아요. 이번 달에 후암동에 조식당 오픈을 준비 중인데요. 매거진 <아침(Achim)>의 오프라인 공간인 ‘아침 프로비전’에 카페, 마트와 함께 제가 식당으로 입주하게 되었어요. ‘아침’에서 후암동에 공간을 내게 되었는데 후암동삼층집이 ‘후암동’ 지역 정체성이 있으니까 같이 협업하고 싶다고 제안을 해주셔서 흔쾌히 함께하게 되었습니다.
기대되네요. 조식당의 이름과 메뉴가 궁금한데요.
계절마다 할 때 ‘마다’라는 단어를 따서 ‘마다밀’이라는 이름으로 지었어요. 말 그대로 계절마다 생각나는 식당이 되고 싶어서요. ‘아침’에서 꾸미는 공간이기에 자연스럽게 ‘조식당’ 콘셉트로 만들게 되었는데요. ‘조식’이라고 하면 보통 호텔 조식을 많이 떠올리잖아요. 아침에 일어나서 여러 가지 호텔 조식 메뉴를 보고 고르는 즐거운 경험을 해보셨을 거예요. 그래서 ‘마다밀’에서도 아침에 먹기 좋은 일곱 가지의 계절을 담은 메뉴들을 준비하고, 손님이 고르시면 접시에 예쁘게 담아서 제공해 드릴 계획입니다. 아침 9시에 열어서 3시까지 영업하는 조금 특별한 식당이 될 거예요.
혼자 사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아침 식사나, 제철 음식을 잘 챙겨 먹지 못하잖아요.
그렇죠. 어렸을 때는 어머니가 해주는 제철 음식을 당연하게 먹고 자랐는데, 이제는 봄에 냉이 된장찌개를 한번 먹는 게 소중하단 걸 깨닫죠. 독립하고 난 뒤에는 여건상 집에서 직접 음식을 만들어 먹기 어려운 게 사실이에요. 주위에 자취하는 친구들의 요리가 주로 냉동식품이나 통조림, 달걀프라이, 김치찌개에 머무는 모습이 아쉽더라고요. 살아가면서 먹는 게 굉장히 중요한데 지칠 때 먹는 것부터 포기하게 되는 것 같아서요.
후암동삼층집이 제안하는 제철 식생활 팁을 알려주세요.
겨울엔 방어, 여름엔 초당옥수수처럼 가능하면 계절마다 꼭 먹어야 하는 식재료를 자주 접하시길 제안해요. 제철 재료는 본연의 맛을 머금고 있기에 간단한 조리만으로도 근사한 맛을 낼 수 있거든요. 마트에 가서 제철 재료를 둘러보면 언제, 어떤 재료가 가장 신선한지 알게 되고 요리를 만들어볼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거예요. 무엇보다 제철 음식을 챙겨 먹는 게 스스로를 돌보는 출발점이기도 하고요.
어느덧 봄인데요. 가장 좋아하는 제철 재료를 소개해주세요.
한식에 주로 쓰이는 향긋한 ‘냉이’를 양식에 사용해보길 추천해요. 구수한 냉이 스콘을 만들어서 팔았는데 반응이 좋았어요. 그리고 냉이 페스토를 만들어서 파스타를 만들면 쌉싸름하면서도 향긋한 맛이 좋아요. 어머니가 해주던 냉이 된장찌개의 추억이 있다면, 냉이 된장 리소토도 추천해드리고 싶어요. 그리고 ‘봄나물’ 하면 빠질 수 없는 게 달래죠. 잘 으깬 달래로 버터를 만들어 빵에 발라 먹으면 마늘빵 같은 맛이 나는데 좋아하는 레시피 중 하나예요.
올해의 봄맞이 마음은 어떤가요?
제철 음식이란 곧 절기에 맞는 음식이기도 해요. 지난 2월에 있던 ‘입춘’이 모든 절기의 시작이에요. 사람들이 새해나, 새 학기를 앞두고 설레는 것처럼 입춘이 지난 이맘때부터 봄나물의 새순도 푸릇푸릇하게 땅에서 올라오기 시작합니다. 한 해가 시작하는 봄이 되면 제철 재료를 어떻게 사용할지 아이디어가 샘솟기도 하고, 제가 가장 좋아하는 계절인 여름으로 가는 길목이라 기쁜 마음으로 보내게 돼요.
#후암동삼층집은?
서울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후암동삼층집’은 진민섭 푸드 크리에이터의 주거 공간이자, 제철 요리를 탐구하는 동명의 유튜브 채널 스튜디오다. 길쭉하게 늘어선 특이한 구조의 구옥으로, 입구의 복도를 기준으로 생활 공간과 작업실을 분리해서 사용하고 있다. 평범했던 가정집에 영감과 색감을 불어넣어 출판, 유튜브 등 푸드 콘텐츠를 만드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맛과 멋을 살리는 색다른 집
비비드한 컬러를 좋아하는 그의 취향대로 공간마다 다른 색깔로 구별했다. 침실. 다이닝룸, 주방, 화장실, 복도를 각각 다섯 가지 색깔로 구분해 지루하지 않은 느낌을 준다. 현관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보이는 복도의 노란색은 들어서자마자 환대받는 느낌을 준다. 가장 오랜 시간을 보내는 주방은 주황색을 써서 이곳에서 만들어지는 요리에 따뜻함을 한 스푼 더해준다. 샌드핑크로 칠한 다이닝룸은 고급스러우면서도 이국적인 느낌을 주어, 오래 머물고 싶어진다. ‘올해의 컬러’ 선정으로 잘 알려진 팬톤페인트사의 제품을 적절히 조합해 벽과 천장, 그리고 가구까지 손수 칠했다.
#푸드 크리에이터의 애착 물건
주된 작업 공간이기도 한 주방은 세월의 흔적이 담긴 물건이 눈에 띈다. 중고로 구입한 그와 동갑인 냉장고, 살구와 매실, 무화과 등이 숙성 중인 전통주. 그중에서 가장 아끼는 물건은 오븐으로, 파인다이닝 레스토랑 ‘권숙수’에서 일할 때 쓰던 것과 같은 모델이다. 이 오븐을 놓을 수 있는 주방이 있는 집을 찾아 이사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고. 한번은 중고로 판매하기 위해 중고거래 플랫폼 ‘당근’에 올려보기도 했지만 막상 팔려고 하니 눈물이 핑 돌아 팔기를 포기했다. 생일엔 손님을 초대해 파티를 여는 전통이 있는데 묵묵히 그의 곁에서 수십 인분의 요리를 책임져주고 있다.
정규환
에디터. 도시 생활자를 위한 팟캐스트 <개인사정>을 제작하며, 삼각지에 동료들과 함께 크리에이티브 사무소 ‘GLG’를 운영 중이다. @kh.inspiration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