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첫 로코가 엄태구에게 가져다준 가장 큰 변화가 있다면 뭐예요?
가장 큰 변화는… 팬분들의 사랑이 아닐까요. 원래도 많은 사랑을 주셨지만, 이번 작품을 통해 더 큰 사랑을 받았다고 생각해요. 아까도 말했지만 팬분들이 이렇게 좋아해주실지는 몰랐거든요. 〈놀아주는 여자〉를 시작으로 인스타그램을 만들고, 첫 팬 미팅도 하고… 생각만 해왔던 것들을 하나하나 실행에 옮기게 된 것 같거든요. 팬분들의 사랑이 그 변화의 시작점이고요.
〈놀아주는 여자〉 전까지는 ‘누아르 특화 배우’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로 강렬하고 센 캐릭터를 주로 연기해왔잖아요. 엄태구의 수줍음 많은 성격과 연기의 간극 덕에 예능에서의 모습이 더욱 사랑을 받지 않나 싶은데.
사실 제가 예능에서 보이는 것처럼 수줍기만 한 성격은 아니거든요. 친구들이랑 있으면 장난도 잘 치고 말도 잘하는데, 일할 때는 긴장을 많이 하다 보니 너무 한쪽 면만 부각된 것 같기도 해요. 아까 화보 촬영 때는 괜찮았다가 인터뷰 시작하니까 갑자기 긴장했던 것처럼 한 공간에서도 긴장을 할 때가 있고 안 할 때가 있거든요. (지금은 어때요?) 지금은 긴장을 안 하고 있습니다.(웃음)
언젠가는 예능에서도 친구들과 있을 때처럼 편안한 모습의 엄태구를 볼 수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근데 카메라가 없어야 그런 모습이 나올 텐데, 실제로 제 앞에 카메라가 있는데 없는 것처럼 행동할 수 있을까요? 제 성격상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웃음)
지난해 출연한 〈삼시세끼 Light〉에서는 비교적 편안해 보이던데요.
선배님들께서 정말 카메라가 없는 것처럼 편안하게 계시더라고요. 두 번째 날에는 저도 카메라가 있다는 걸 까먹을 정도였어요. 드론이 저희가 걸어가는 장면을 찍고 있었는데 저는 촬영이 되고 있는지도 몰랐거든요. 덕분에 선배님들과 있을 때의 제 모습이 자연스럽게 담기지 않았나…. 그래도 확실히 예능을 처음 할 때보다는 편한 것 같아요. 이렇게 말해놓고 막상 또 예능에 나가면 전과 똑같겠지만.(웃음) 적응되는 부분도 분명 있는 것 같습니다.
말한 대로 이제 전보다는 익숙해졌겠지만, 여전히 예능에 출연하고 나면 에너지 소모가 상당하겠어요. 다 쓴 에너지는 어떻게 충전하는 편이에요?
계속 자요. 일이 없으면 알람도 안 맞추고요. 스케줄을 하고 집에 가면 계속 누워 있어요. (오늘은 어떨 것 같아요?) 오늘은 아직 에너지가 좀 남아 있어요. 이러고 집에 가자마자 쓰러질 수도 있겠지만.
인터뷰에서 언급한 여러 일화를 보면 어렸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성격이었을 것 같은데, 수줍음 많은 소년이 모두가 나를 주목하는 무대 위에서 연극을 하고, 연기 학원을 같이 다니자는 친구의 말에 연기를 시작했다는 게 의외였어요.
어릴 때도 지금이랑 비슷했죠. 집에서나 친구들이랑 있을 때는 장난 많이 치고 낯선 데 가면 조용해지고. 그런데도 연기를 시작한 건… 겉멋이 들어서였겠죠. 농담이고요.(웃음) 진짜 멋있어 보여서 시작하긴 했는데, 당시에는 이유 모를 자신감이 있었어요. 왠지는 모르겠는데 하면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 어리고 뭘 잘 몰라서 가능했던 일이죠. 부모님께 연기 학원 다니고 싶다고 얘기는 했는데, 정작 저는 이후로 뭘 더 알아보지는 않았거든요. 거기서 끝이었는데 오히려 부모님이 나서서 학원을 알아봐주셨어요. 지금 생각해보니까 아무것도 안 하던 애가 뭐라도 해본다고 하니까 그러셨던 것 같아요.(웃음)
실제로 연기를 해보니 어땠어요?
제가 연기만 하면 다 웃었어요. 너무 못하고, 너무 떨어서요. 자기가 떠는지도 모르고 막 화난 연기를 하니까 그 모습이 웃겼나 봐요. 근데 웃긴 게 그러면서도 속으로는 ‘나 잘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이런 생각을 계속했어요. 학원 다니는 동안은 계속 못했지만.(웃음)
20대 초반, 영화과에 입학해 수많은 단편영화에 출연하며 꾸준히 연기를 해오면서도 ‘나는 진짜 연기와 안 맞는 사람인가?’라는 생각을 했었다고요.
사실 그런 생각을 굉장히 오랫동안 했었어요. 저마다 연기를 하면서 어려움을 겪는 부분들이 있을 거잖아요. 저 같은 경우는 현장에 적응하는 일이 그랬거든요. 적응을 잘 못하는 것도 문제지만, 결국 그게 연기에도 영향을 미치니까요. 근데 이걸 지나간 일처럼 말할 수만은 없는 게 사실 그 부분에 대한 고민은 지금도 계속 있거든요. 거기에 매몰되어 있는 시기는 지났지만, 지금은 적응을 잘한다고 말하기도 어려워요. 제가 갑자기 짠 하고 다른 사람으로 바뀐 건 아니니까요. 그냥 그 고민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배우의 길을 계속 걸어도 되겠다.’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던 순간은 언제예요?
영화 〈밀정〉을 찍고 나서요. 사실 그전까지는 ‘언제 그만하지?’라는 생각을 계속 품고 살았는데, 〈밀정〉 촬영을 마치고 나니까 ‘계속 나아가봐야겠다.’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촬영하는 과정에서 느낀 게 되게 많았어요. 자신감이 없던 때였는데 김지운 감독님이나 송강호 선배님께서 많은 배려를 해주셔서 자신감도 얻었고, 내가 추구해왔던 연기나 가치관이 잘못된 건 아니구나 느꼈던 것 같아요. 연기를 계속 갈고닦아서 업으로 삼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죠. 말하다 보니 생각난 건데 내년이 〈밀정〉을 촬영한 지 딱 10년 되는 해네요.

(인터뷰일인 2024년 11월 27일 기준) 공개 예정인 드라마 〈조명가게〉에서는 또 어떤 모습을 보여줄지 기대되는데, ‘현민’을 연기하며 마주한 처음이 있다면요?
현민의 감정선이 저한텐 굉장히 낯설게 다가왔어요. 감정선이 되게 깊은데, 평상시에는 느껴보지 못했던 감정이라 흥미로웠달까요. (현민과의 싱크로율은 어떤 것 같아요?) 연기를 할 때 밖에서 끌어오는 것도 있지만, 제 안에서 끄집어내는 부분도 있으니까 어느 인물이든 싱크로율은 50프로 정도라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현민과 성격이라든지 이런 부분이 비슷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말투는 좀 비슷한 것 같아요. 아무래도 제가 연기한 거니까.(웃음) 더 말하면 스포일러가 될 수 있으니 작품을 통해서 확인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필모그래피를 살펴보면 〈기담〉, 〈구해줘 2〉, 〈홈타운〉 등 스릴러 장르를 많이 연기했더라고요. 〈조명가게〉도 그렇고요. 무서운 걸 잘 못 보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모니터링이 쉽지 않겠어요.
깜짝깜짝 놀라는 걸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무서운 장면이 나오려고 하면 일단 소리를 끄고 촬영장을 떠올려요. ‘맞아. 촬영장에서 저 장면은 저렇게 연기했었지.’ 그런 생각을 하면서 연기하던 당시를 떠올리면 좀 나아져요.
어느덧 배우로 살아온 시간이 18년을 넘어가고 있어요. 그럼에도 매번 처음인 것처럼 어려운 것들이 있어요? 예를 들어 스릴러 작품 모니터링처럼.(웃음)
사실 〈놀아주는 여자〉를 촬영할 때는 8개월 내내 매일이 처음인 것처럼 새롭고 어려웠어요. 아침 촬영 다르고, 점심 촬영 다르고, 또 저녁 촬영 다르고…. 이제 이 공간에 좀 적응했다 싶으면 촬영하는 장소가 바뀌고 새로운 상황과 대사가 주어지니까 매 순간이 새롭게 다가오더라고요. 만약 《빅이슈》 커버 촬영을 당장 내일 또 한다고 해도 저한테는 새롭게 느껴질 거예요. 오늘 느낀 현장의 분위기와 내일 마주할 현장의 분위기는 분명 다를 테니까요.
인터뷰 시작부터 느낀 거지만, 단어 선택 하나하나에도 굉장히 조심한다는 느낌이 들어요.
말이라는 게 아무리 조심한다고 해도 누구나 한 번쯤은 후회하는 말을 내뱉게 되잖아요. 조심해도 그 정돈데 조심 안 하면 어떻게 될까.(웃음) 이런 생각으로 항상 의식하는 편입니다. 친한 친구한테 장난을 칠 때도 조심하려고 해요.
오늘처럼 말을 많이 한 날은 집에 가면 생각이 많아지겠어요.
말을 조심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사실 매번 생각처럼 되지는 않아요. 당장 오늘 메이킹 인터뷰 때도 말실수를 했을지도 몰라요. 너무 긴장해서 말도 안 되는 말들을 했거든요. 마지막 멘트를 빼고는 제가 어떤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나서… 걱정입니다.(웃음)
지난 2024년은 엄태구에게 ‘도전의 해’이지 않았나 싶은데, 스스로는 어떤 한 해였다고 생각해요?
음… 감사한 해? 그냥 하는 말이 아니고요. 정말 감사한 일이 많았던 한 해라고 생각해서요. (‘구체적인 감사함’을 느낀 한 해였나요?) 구체적인 감사함은 너무 한정된 표현 같아서 그냥 ‘감사한 해’라고 해두고 싶어요. (어떤 부분이 그렇게 감사한가요.) 많은 사랑과 응원을 주신 팬분들께도 감사하고, 같이 촬영한 스태프분들께도 감사하고 또….(일동 웃음)
수상소감이 되어버렸네요. 2025년은 또 어떤 한 해가 되었으면 해요?
이것도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을 것 같은데(웃음), 행복한 한 해가 되었으면 해요. 저도 행복하고 그로 인해 제 주변 사람들도 행복을 느끼는 그런 한 해. 상투적으로 들릴 수 있겠지만 정말 그러길 바라요.
글. 김윤지 | 사진. 김영배 | 헤어. 김선애 | 메이크업. 김모란 | 스타일리스트. 정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