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너머의 실제를 보는 즐거움

2023년 4월, 홍대 어느 영화관에서 스페셜 상영회가 열렸다. 방영 예정인 애니메이션의 1화를 스크린에서 미리 상영하는 행사였다. 기대 반 걱정 반 마음을 가지고 나도 참석했다. 그리고 90분이라는 짧지 않은 시간 동안 입을 다물 수 없었다. 빠른 전개와 충격적인 엔딩, 이어서 흐르는 주제가 ‘アイドル(아이돌)’까지. 하나의 에피소드 더할 나위 없이 완벽했다. 2023년 방영하여 일본을 넘어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를 끈 애니메이션 〈최애의 아이〉다.
1기 방영을 성공적으로 마친 뒤, 이듬해인 작년 2024년 2기가 연이어 방영되었다. 두 번째 시즌은 어머니인 ‘아이’의 뒤를 이어 본격적으로 연예계 생활을 시작하는 ‘아쿠아’와 ‘루비’ 쌍둥이의 이야기를 그린다. 특히 쌍둥이 오빠가 출연하는 무대 공연 〈도쿄 블레이드〉가 큰 비중을 차지한다. 리허설부터 본 공연까지, 배우의 연기 해석부터 각본과 연출의 대립까지, 세세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한다.
가면 쓰는 나
수많은 등장인물 중, 최애 중 최애는 단연 ‘아쿠아’다. 2기 극 중 극 〈도쿄 블레이드〉에 출연하는 인물들은 각자 연기에 대한 방법론을 가지고 있다. 메소드 연기, 즉흥 연기, 자신의 단점을 감추는 연기, 남을 돋보이게 하는 연기 등. 각 방법론은 해당 인물의 성격과 경험을 반영한다. 누군가에겐 수단이고, 다른 누군가에겐 목적이다. 누군가에겐 트라우마이며, 누군가에겐 구원이다.
‘아쿠아’에게 연기는 철저하게 수단이다. 애초에 연기에도 연예계에도 뜻이 없다. 오직 복수를 위하여 이용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역설적으로 연기를 잘한다. 어떻게 보면 불순한 의도가 강력한 동기부여가 되어 좋은 결과로 나타난 셈이다.
애니메이션을 감상하며 개인적인 고민과 맞닿은 부분이 있어 반가웠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니 가면을 쓰는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혼자의 나와 친구와의 나는 달랐다. 일할 때의 나도 또 달랐다. 더 좋은 관계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일 수도 있겠고, 상처를 받지 않기 위한 방어기제일 수도 있을 것이다. 작품 속 인물이 자신의 본래 자아를 숨기며 때로는 고독하게 지내는 모습을 보며 나 자신을 투영했는지도 모른다.

실제와 허구의 미묘한 관계
〈최애의 아이〉 속 가장 좋아하는 장면도 ‘아쿠아’의 성격과 행동을 잘 드러낸다. 1기 초반부 그는 만화 원작 드라마에 스토커 단역으로 캐스팅된다. 실력이 부족한 동료 연기자와 의지가 부족한 제작진 가운데에서 즉흥 연기를 통해 촬영장 분위기를 압도해버린다. 자신의 대사와 동선은 물론, 구도와 조명, 바닥에 생긴 물웅덩이까지 고려하여 연기한다. ‘아쿠아’가 연예계 활동을 수단으로 쓰고 있다는 게 잘 드러난 장면이다.
이 장면은 최애 캐릭터의 명장면이기도 하지만, 내가 애니메이션을 비롯한 영상 콘텐츠를 좋아하는 이유를 설명하는 장면이기도 하다. 영상 콘텐츠는 실제로 있을 법한 일처럼 만들어 관객이나 시청자로 하여금 몰입하게 한다. 동시에 아무리 실제 같다고 해도 인위적으로 만든 허구에 지나지 않기도 하다.
영상 콘텐츠는 실제 같지만 실제가 아니어서 더 매력적이다. 어떻게 탐구하고 실행했는지 엿볼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카메라 앞에 있는 배우를 볼 뿐이지만, 실상 카메라 뒤에는 수십, 수백 명의 제작진이 있다는 걸 생각하면 느낌이 다르다. 더욱이 애니메이션이라면 화면 구석에 있는 구름 한 조각까지 누군가의 의도로 그려졌음을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수많은 ‘아쿠아’가 노력하는 덕분에 최애 애니메이션의 다음 시즌을 기다릴 수 있다.
글 | 이미지 제공. 제이스
[소개]
제이스
영화가 좋아서 영화 블로그 ‘제이스의 키노피오’를 운영 중이다. 드라마, 애니메이션, 게임, 개인 방송까지 영상 콘텐츠라면 가리지 않고 다 잘 먹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