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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3 인터뷰

광장에서 만난 세계 - 출판사 마케터 김하늘이 경험한 광장

2025.04.21

부끄러운 마음

2024년 12월 3일 이후 여의도와 광화문, 한강진 등 광장에 모인 2030 여성들은 세상을 바꾸고 있다. 여전히 민주주의의 가능성을 믿는 이들은 무엇으로 이어졌을까. 변화를 쟁취하기 위해, 또 무언가를 지키기 위해 광장에 모인 여성들을 만나고자 한다.

출판사의 신입 마케터로 일하고 있는 김하늘 씨(가명, 24세)에게 서울은 나고 자란 부산의 사투리를 고친 공간이기도, 친구들이 놀러 오면 곳곳의 맛집을 소개하는 약속의 공간이기도, 회사가 있는 일터이기도 하다. 이젠 비상계엄의 밤을 경험하고 내란범의 처벌과 대통령의 탄핵을 촉구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광장의 의미가 추가됐다. 그에게 과거와 현재를 잇는 사회적 사건, 그리고 12월 3일 이후의 자신에 대해 물었다

출판사에서 맡은 업무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정규직 마케터로 일하게 된 지 4개월 됐다. 서점에 영업을 나가고, 온라인 콘텐츠를 발행하면서 책을 홍보한다. 출근하면 주력 도서와 신간의 판매 데이터를 확인하고, 출판사 트위터(현 X)나 인스타그램으로 온 메시지도 확인한다.

2024년 2월에 서울로 왔다. 출판학교 입학을 준비하면서 다음 달인 3~4월에 서류와 면접 절차를 밟았다. 무조건 된다 생각했는데, 최종 면접에 떨어져서 계속 면접을 보고 아르바이트로 경력을 쌓게 됐다. 좀 웃기지만 ‘가만히 앉아 있을 수 있을까.’(웃음) 이런 걱정도 있었다. 회사에서 밉보이지 않을까 걱정도 했고. 부산에서 나고 자라서 초반엔 사투리를 많이 썼다. 일하면서 좀 더 부드러운 어휘를 사용하고 싶어서 고치려고 노력했다.

서울로 이사 온 과정이 궁금하다.

가족은 출판사가 수도권에 많이 있으니까 서울로 이사를 하는 게 좋겠다고 했다. 식당 아르바이트를 해서 그런지 요리 등 가사 노동이 어렵지 않았다. 처음 서울에서 집을 보러 다닐 땐 집 값에 많이 놀랐다. 직장은 서울이고 집은 일산인데, 일산은 부산과 가격대가 비슷한 편이다. 낯선 환경에 적응을 잘하는 편이라 적응이 어색하지는 않았다.

12월 3일 밤을 회상한다면.

딱 잠들기 직전이었다. 회사 단체방이 있는데 어떤 선배가 “지금 뉴스 보세요, 난리 났어요.”라고 말씀하셨다. 집에 TV가 없어서 유튜브 생방송을 틀었다. 전쟁도 아니고 왜 계엄 선포를 했나 싶었다. 동료들과 “우리 어떡하냐”, “내일 출근은 할 수 있나” 고민도 하고. 새벽까지 〈오마이TV〉의 라이브 방송을 봤다. 새벽 3~4시쯤 잠들었던 것 같다. 출판사 선배 친구 중에는 바로 국회로 가신 분도 있다고 들었다. 부끄러운 마음이 들었다.

부끄러운 마음은 어디서 비롯됐을까?

출판사에서 근무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부럽다고 생각했다. 고등학생, 대학생 때부터 했던 생각이다. 고1 때는 박근혜 탄핵 시위에도 나갔었다.

계엄이라는 단어를 듣고 든 생각은?

최근 〈소년이 온다〉를 재독하면서 계엄의 영향에 대해 되새겼다. 계엄 포고령에 언론과 출판의 자유를 제한하는 조항이 있는데 크게 다가왔다. 내가 출판사 마케터를 선택한 것에 후회가 안 남을 것 같고, 자유를 지켜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변에 편집자 준비를 하는 친구가 있는데 절대 그만두지 말아야겠다고 말한 친구도 있었다.

처음 나갔던 집회를 회상한다면?

친구가 나가자고 해서 가게 됐다. 잘못된 건 당연히 알고 있었는데, 사실 나에게 어떤 영향이 있는지는 잘 몰랐었다. 피켓을 들고 앉아 있다가 친구에게 문득 구호를 외치는 게 조금 부끄럽다고 말했는데, 친구가 “잘못이 뭔지 모르고 그냥 앉아 있는 사람들이 부끄러운 것”이라고 얘기하더라. 이번에 집회에 나갔을 때 당시 생각이 많이 났다.

12월 3일 이후의 광장 경험은 어땠나?

12월 21일에 집회에 참여했다. 사실 바로 가고 싶었는데 친구 결혼식 등의 빠질 수 없는 행사가 있었다. 대학교 때 교지편집부를 했던 친구와 둘이 안국역 인근 집회에 참여했다. 3시 반 정도에 역에서 내려 집회 장소로 가는데 ‘다시 만난 세계’가 크게 들렸다. ‘내가 지금 잘 걸어가고 있구나.’ 싶었다. 정말 추워서 히트텍을 두 개 껴입고 나갔다. 친구가 그 전주에도 집회에 참여했기에 길잡이 역할을 해줬고, 둘 다 응원봉을 들고 나왔다. 집회 안에서도 재미를 찾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힘들지만 이왕 나왔으니 즐기자.”는 대화를 많이 나눴다. 수백 개의 빛들과 함께 민주주의의 순간에 있음을 느꼈다.

기억 남는 그날의 장면이 있다면?

화장실에 갔는데 누군가가 ‘마음껏 쓰라’고 메모를 붙여놓고 생리대를 쌓아놨더라. 너무 따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날 자유 발언자 중엔 청각장애인이 계셨는데, 비상계엄이 선포된 후 상황을 파악할 수 없었다는 말씀을 하셨다. ‘모든 존재가 지워지지 않는, 그런 민주주의를 꼭 만들고 싶다.’는 발언을 하셨는데 화면에 그분의 얼굴이 클로즈업되자 울컥했던 기억이 있다.

친구들이나 직장 동료들과도 이런 주제로 대화를 나누는 편인가?

새로 업데이트되는 소식을 자주 공유한다. 출판사 자체가 취미 실용서를 주력으로 해서, 이런 국가적 이슈가 생기면 타격을 크게 받는다. 나라가 시끄러울 땐 아무래도 사회과학이나 인문도서를 많이 고를 테니까. 경기가 안 좋고 원화 가치가 계속 떨어지고 있고. 실제로 계엄 다음 주 판매 데이터가 수직 하락했다. 물론 인문 카테고리도 있지만 마케팅 측면에서 주력으로 밀 수가 없었던 것이, 출판사 인스타그램을 팔로우 하는 분들 중 취미 실용서로 저희를 기억하는 분들이 많다. ‘얘네가 갑자기 이런 얘기를 왜 하지?’ 하고 이탈이 있을까 봐 저희끼리 되게 고민이 많았다.

계엄 선포 전과 후에 가장 크게 변화한 점은?

안담 작가의 〈친구의 표정〉(위즈덤하우스 펴냄, 2024)에 이런 문장이 있다. ‘기여하지 말고 균열이 되자’. 각종 차별과 혐오에 균열이 되자는 맥락이다. 그 문장을 자주 떠올렸다. 생활 측면에서는 비슷한데, 불안함이 계속 있기는 했다.

인생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사건은?

첫 번째는 세월호 참사다. 나 역시 당시 수학여행 중이었다. 갑자기 선생님들이 휴대전화로 “빨리 부모님한테 연락을 하라.”고 말씀하셨다. 그때 다 같이 밤에 잠을 못 자고 숙소에서 뉴스를 틀어놓고 “어떡해” 이 말만 했다. 그 영향으로 부산의 집회에 나가게 됐던 것 같다. 가방에 항상 노란리본 배지를 달고 다닌다. 매년 4월 16일마다 관련 책을 읽는데, 〈월간 십육일〉(김겨울 외 49인 글, 임진아 그림, 사계절 펴냄, 2024)과 〈홀〉(김홍모 지음, 창비 펴냄, 2021)을 책을 읽었다. 가끔은 4월 16일에 사람들을 보면서 왜 저 사람들은 행복해 보일까, 그런 이상한 생각도 좀 한다.

앞서 부끄럽다는 말도 그렇고, 행동을 해야 한다는 가벼운 강박이 있는 편인가?

그게 2023년 때부터 시작됐다. 그때부터 책을 많이 읽기 시작했다. 책 속에 있는 사람들은 매일 글을 쓰고, 목소리를 내고 누군가와 싸우면서 하루를 보내고 있는데 내가 지금 이렇게 누워서 그냥 기사 스크롤을 내리면서 분노하는 게 맞나 하는 생각을 많이 했다. 둔감해진 나 자신을 보고 혐오스럽다는 생각도 했다.

살다 보면 무던해질 수도 있지 않나?

그건 맞는데, 출판업계에 종사하고 있는 사람이라 그런지 ‘내가 이렇게 살아도 되나.’라는 생각을 자주 한다. 책을 많이 읽게 된 시기, 출판사에서 일한 타이밍이 겹쳐서 강박이 유지되는 것 같다. 매체에서, SNS에서 정치사회적 목소리를 내는 분들이 주변에 많이 보이는데, 내가 그들 뒤에 서 있다는 생각이 계속 든다. 빚지고 있다는 생각.

2030 여성들은 어떤 이미지로 대표된다고 보나.

실제로 12월 3일 이후 집회가 있고 노조나 직접 활동하는 단체에 가입하는 20대의 비율이 올랐다고 들었다. 행동하는 사람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사회적으로 차별받고 범죄의 위험에도 노출되어 있음에도 용감하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왜 책을 읽어야 할까?

책을 읽으면, 잠시 현실에서 떨어져 자신의 모든 걸 잊을 때가 있다. 얼마 전엔 유선혜 시인의 〈사랑과 멸종을 바꿔 읽어 보십시오〉(문학과지성사 펴냄, 2024)의 〈그게 우리의 임무지〉 시를 읽고는 ‘기어이 이어지고 마는 마음’에 대해서 잔뜩 생각하다 몇 시간을 보냈다. 세상이 흐릿해져도 여전한 나의 마음은 ‘그럼에도 믿고 사랑하는 마음’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달았다. 한마디로 이런 마음을 지속하게 해주는 건 늘 책이었고, 책이 하나의 믿을 구석이 되었다는 걸 알았다. 마침 2025년 서울국제도서전의 주제가 ‘믿을 구석’이더라. 나는 다른 사람의 노력하고 있는 마음, ‘믿을 구석’이 궁금하다. 그걸 책을 통해 알고, 이어가보면 어떨까 싶다. 문장의 아름다움에 기대어, 잠시라도 나를 둘러싸고 있는 혼란에서 벗어나보는 것도 좋을 것 같고. 도서전에서 믿을 구석을 공유할 수 있는 독자를 많이 만나고 싶다.

글. 황소연 | 사진제공. 김하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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