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로그와 게임이라는 딴청이 가진 힘

<마인크래프트>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힘을 쌓기 위해 ‘딴짓’으로 빌드업을 한 경험이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다. 블로그에 여행과 화장품 공병을 기록해 쌓인 글들이 생활의 데이터베이스가 된 ‘미도리코’와 스팀 게임을 즐기며 일상의 재미를 찾는 ‘디돈’이 딴짓으로 분류되는 일들이 어떻게 일상을 살아가기 위한 힘이 되는지를 말한다.
나의 오래된 블로그 ‘포토덤프’
글. 미도리코
본격적으로 블로그를 시작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어간다. 처음 블로그를 시작한 건 2000년대 초반이다. 워낙 하고 싶은 말이 많아 글로도 써야 직성이 풀리는 탓에 싸이월드에서도 미니홈피가 아닌 블로그를 사용했다. 그땐 싸이월드가 아닌 블로그에 기록하는 나에 취해 있었다.
이후 싸이월드가 사라지고 대체로 찾은 게 네이버 블로그였다. 마침 회사에 다니며 일에 여유가 생기기 시작했다. 일본 나고야 여행을 준비하면서 네이버 블로그에서 정보를 다수 접했다. 특히 나고야에 거주하는 한국분들의 일상이 인상적이었다. 내 취향의 장소와 맛집을 자주 방문하는 블로거가 매달 ‘짤털이’라는 이름으로 일상을 기록했다. ‘포토덤프’와 비슷한 개념이다. 그 아이디어를 빌려 나 역시 월간, 내지는 순간으로 구분해 일상을 적게 되었다. 지금은 ‘나날들’이라는 카테고리로 2주에 한 번, 월 2회 정도 일상의 이야기들을 털어놓고 있다. 주로 회사 욕과 친구들과 만나서 논 이야기들 위주다. 어쩌다 보니 텀이 긴 그림일기 같은 느낌으로 꾸준히 쓰고 있는 나를 칭찬하고 싶다. 방학 숙제로 그림일기를 그리는 건 좋아했지만 쓰는 것은 괴로워하는 어린이가 이렇게 성장한 것은 참으로 놀랍다. 어느덧 2000여 개가 넘는 글을 썼고, 임시저장된 글만 15개 정도다.
처음엔 그냥 일기라고 생각했는데 훗날 셀카와 풍경 사진을 다시 보니, 대략적인 기상 정보를 파악할 수 있었다. 특히 ‘작년엔 벗고 다닌 게 아닌데 옷이 왜 없지.’라는 인류 공통의 질문에 작은 답을 찾게 되었다. ‘이즈음 이 옷을 입어야 하는구나.’라는 데이터도 얻게 된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고 나눈 기록도 보면서 제철 음식에 대한 데이터를 재정비하기도 한다.
여기에 직장과 인간관계에서 얻게 되는 희로애락이 알게 모르게 녹아 있어, 그때의 나와 지금의 나를 비교하고 반추한다. 어떻게 회복했는지, 취향의 변화는 어떤지도 볼 수 있어서 혼자 적어보는 에세이, 나만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백세희 지음, 흔 펴냄, 2018) 같은 책이 나올 것 같은 느낌이다. 실제로 내 블로그에는 우울증 등 약물 복용 후기가 있다.
일상을 기록하는 포스팅의 업데이트가 늦어지면 해외 거주 중인 친구들에게 재촉을 받기도 한다. 내 블로그가 고국의 향수를 달래주는 요소인 것 같다. 특히 추어탕이나 순댓국, 즉석떡볶이 같은 음식을 먹은 내용이 있는 포스팅엔 늘 부러움의 댓글이 달린다. 그리운 친구들과 이어지게 하고 끊임없이 나를 돌아볼 수 있게 하는 기록들을 통해 나라는 사람이 빌드업 되는 중이라면 조금 닭살스럽고 허세일까?

곤키츠네 여우우체통
잊고 싶지 않아서, 쇼핑과 공병 기록
누구나 물건을 사고 소진하고 버린다. 나는 저장 강박이 살짝 있고 물건을 버릴 때 그 물건에 담긴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 처음 구매한 내용과 버리는 내용을 각각 기록하려고 한다. 특히 화장품이 그렇다.
종종 재활용품 수거장에서 공병을 버리기 직전에 사진을 찍는데, 나중에 보면 날씨와 분위기가 떠오르기도 하고 햇빛 눈이 부신 날에 이별하는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당시의 내가 어떻게 사용했는지, 사용감에 대한 호오를 알 수 있어 좋은 레퍼런스가 된다. 변방의 블로거라 협찬이나 제품을 제공 받지 않고 ‘내돈내산’ 혹은 지인에게 받은 선물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마음 놓고 단점을 얘기할 수 있어서 가감 없이 솔직하게 적게 된다. 일본에서 산 제품에 대한 기록을 통해 유입되는 ‘코덕’들과의 소통도 블로그를 작성하면서 느끼는 즐거움이다.

필름카메라로 촬영한 벚꽃
그날의 분위기와 일본 여행기
싸이월드 시절부터 친구들에게 칭송받아왔던(?) 부분이 아무리 늦게까지 놀아도, 익일 새벽 2시 전에는 반드시 디카로 찍은 사진을 옮겨 포스팅한 것이다. 단체 사진이든 뭐든 날짜와 장소 그때의 분위기를 잊지 않고 싶어서 잠을 참아가며 꼭 올려두었던 기억이 난다. 네이버에서 블로그를 처음 할 때 정식으로 올렸던 여행기는 14년 나고야 여행기다. 11월 여행이었는데 티켓을 6개월 전에 구매해서 반년간 설렜던 기억을 블로그에 다 쏟았다. 그렇게 매번 여행마다 기록을 하니 습관이 되었고, 여행을 준비하는 분들부터 현지에 거주하는 분들까지 찾아와주셔서 댓글로 소통하고 나아가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고 친구로 지내는 분도 생겼다. 정말 놀랍고도 소중한 인연들이다.
모든 여행이 다 즐겁지만은 않다. 아플 때도 있고 일정이 틀어질 때도 있다. 비행기를 놓쳐 다음 날 귀국하거나, 숙소에서 잠이 들어 오후 일정을 날리거나, 일행과 다투는 일까지, 다들 경험해봤을 일들이다. 이런 내용을 쓸 때는 솔직히 버겁고 괴롭다. 지난날이 다 좋을 수만은 없기에 그때의 감정을 실어서 여행기를 쓰는 날은 다른 날보다 커피도 담배도 훨씬 많이 한다.
블로그는 지속될 수 있을까
4차 산업, AI가 일상에 스며든 지도 수년이 되어가지만 사람이 글로 풀어주는 일은 기계에 한계가 있길 바란다. 나중에는 눈이나 뇌에서 정리되는 대로 글이 써지는 등의 기술이 나타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은 들지만, 그때까지 온전한 정신으로 생명을 영위하고 있을지에 대한 보장은 없고, 그럴 자신도 없다. 그래도 누군가는 사람에게 직접 하지 못할 말, ‘덕질’과 개인적인 취미에 대한 기록들을 남기려는 시도는 끊임없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건강하고 멋진 할머니로 오래 살고 싶고, 자판을 두드릴 수 있을 때까지는 일기처럼, 때로는 라디오처럼 삶을 이야기를 하는 출구로 블로그를 사용하고 싶다.
미도리코 - 40대 미혼. 일하는 척하면서 놀고먹는 것을 놓칠 수 없는 평범한 회사원. 화장품, 열차, 비행기를 좋아하는 잡덕.
가장 오래된 취미의 현재, 게임
글. 디돈
스마트폰이 보급되기 시작한 초등학생 때부터 줄곧 게임과 함께했다. 가장 쉽고 빠르게 접할 수 있는 취미가 게임이라고 생각해서다. 컴퓨터가 없었을 때는 지금도 아주 유명한 게임인 〈마인크래프트〉와 〈아이러브커피〉, 〈드래곤 플라이트〉, 〈모두의 마블〉 등 모바일 게임을 주로 했다. 아직도 마니아들이 많은 닌텐도 게임인 〈동물의 숲〉, 〈마리오 파티〉, 〈리듬세상〉, 〈쿠킹마마〉 등도 플레이했다. 집에 컴퓨터가 생긴 이후로는 〈테일즈런너〉, 〈로스트사가〉와 같은 온라인 게임을 시작으로 현재 스팀과 같은 플랫폼의 게임을 구매해 즐기고 있다.

이미지 출처: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 홈페이지
그중 〈데드 바이 데이라이트〉라는 게임을 소개하고 싶다. 멀티플레이어 생존 호러 게임인데, 한 명의 킬러와 네 명의 생존자가 대결하는 구조다. 생존자들의 목표는 맵에 흩어진 발전기 다섯 개를 수리하여 살인마로부터 도망쳐 출구를 열고 탈출하는 것이고, 킬러의 목표는 생존자들의 수리를 방해하고 사냥하여 엔티티(게임의 창조자와 같은 존재)에게 제물로 바치는 것이다. 술래잡기와 비슷하면서도 느껴지는 긴장감은 훨씬 배가 되는 게임이라고 볼 수 있겠다.
스무 살부터 집중적으로 플레이했던 게임을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즐기고 있다. 특히 코로나19로 고등학교 3학년 때부터 스물한 살까지 힘든 시기를 보냈던 나에게 게임은 큰 위로가 되었다. 삶의 큰 전환점에서 수업은 전부 비대면으로 바뀌었고, 설상가상으로 취업까지 어려워지는 바람에 슬럼프까지 찾아온 상황이었다. 밀려드는 무력감에 아무것도 하기 싫어, 방구석에서 종일 이 게임만 했다. 그렇게 게임에 몰두하다 보니 혼자 플레이하기보다 여러 사람과 함께 하고 싶어졌다.
마리오카트
게임으로 힐링, 가능
어떤 방법이 있을까 고민하다 SNS를 통해 게임을 함께할 친구들을 구하게 되었다. 다양한 직업을 가진 친구들을 만날 수 있었고, 함께 게임도 하고 삶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홀로 쌓아둔 외로움을 마음껏 해소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과 소통하며 점점 다시 일어설 힘을 얻게 되었고, 결과적으로 슬럼프를 극복하여 일을 시작할 용기를 얻었다.
사실 슬럼프를 극복하게 된 다른 계기가 하나 더 있다. 이 게임에는 캐릭터들에게 스킨(옷)을 사서 꾸며 줄 수 있는 시스템이 있다. 게임을 하다 보면 휘황찬란하게 꾸민 캐릭터들로 플레이하는 유저들을 종종 보았을 것이다. 나도 가장 애착이 가는 캐릭터에게 멋진 옷을 입혀주고 싶은 마음에, 빠르게 슬럼프를 극복하고 일을 시작하게 되었다. 게임과 덕질의 순기능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일터에서 만난 지인들에게 이 게임을 소개하며 함께 플레이 하기도 했고, 게임 덕분에 새로운 친분을 쌓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나에게 게임은 단순한 오락의 범위를 넘어 삶을 살아가는 데 가장 큰 힘이 되어준 존재다. 중독성이 강한 취미이기 때문에 당연히 조심해야 하겠지만, 게임이 주는 긍정적인 영향 또한 결코 무시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컴퓨터, 모바일 게임뿐만 아니라, 우리가 비교적 쉽게 접할 수 있는 보드게임이나 TRPG(Table Talk Role Playing Game)도 모두 게임의 한 종류다. 전자기기로 플레이하기 어렵거나, 가벼운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해보고 싶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다. 게임 진행 방법이 어렵지 않아, 부담 없이 게임의 즐거움을 알아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지치고 힘든 순간, 취미는 잠시 쉬어가는 시간이 되어준다. 당장 어떤 취미를 가질지 고민하고 있다면, 다양한 종류의 게임을 통해 위로와 즐거움을 찾아보길 추천한다. 나는 이번 주에도 친구들과 함께 글에서 소개한 게임을 플레이하기로 했다.
디돈 - 게임을 통해 힐링하고, 살아가는 힘을 얻는 이 시대의 평범한 직장인 게이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