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게 앞 뜬장에서 힘없이 웅크리고 있던 개를 기억한다. 뜬장 앞에는 ‘고기 삶아드립니 다’라는 간판이 걸려 있었다. 머뭇거리며 손을 내밀자 그 애는 내 손을 정성껏 핥아줬다. 그 애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나는 이제 그 애가 세상에 없는 것을 안다. 그리고 그 애가 있던 시장이 문을 닫았다.
60년 구포 개 시장의 종지부
전국 3대 개 시장이 있다. 성남 모란 시장, 부산 구포시장, 대구 칠성시장. 그중 부산 구포 개 시장은 60년이 넘는 시간을 이어왔다. 한창 호황일 때는 60여 곳 넘는 업소가 있었다. 개들은 가게 앞 뜬장에 진열되었고, 손님이 오면 목숨을 내놓아야 했다. 2019 년의 구포 가축 시장에는 개를 파는 업소 17곳이 남아 있었다. 구포 개 시장에서의 강도 높은 동물 학대 사건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시민들의 개 식용 반대 집회 등 갖가지 압박에 불이 붙으며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결론은 말 끔했다. 개 시장을 완전히 폐업하고, 상인들은 완전히 전업하는 것. 부산 북구청에서는 상인들에게 생활 안정 자금을 지급하고, 개를 도살하던 자리에는 반려동물을 위한 복지시설을 설치하는 것. 2019년 5월 30일의 잠정 협약 내용이었다.
매일매일이 D-DAY
부산시는 상인회와 협약하며 그들에 게 한 달의 유예 기간을 약속했다. 6월 30일까지 개의 전시와 도살이 가능하고, 7월 11일까지는 지육 판매를 할 수 있게 한 것이다. 이미 많은 생명이 구포 개 시장에서 스러졌는데 마지막까지 큰 희생을 치를 수는 없었다. 카라는 뜻이 맞는 동료 단체들과 함께 구포 개 시장의 조기 폐업과 개들을 구조하기 위한 협의를 시작했다
피 말리는 나날이었다. 한 마리의 동물이라도 덜 도살되도록 지자체 그리고 상인들과 길고 힘든 줄다리기를 계속했다. 결국 개 시장 업소 17곳 중 40%가 넘는 7곳의 점포가 6월 21일 조기 폐업을 하는데 합의했다. 본 협약 열흘을 앞두고 7개 업소 개들의 소유권이 우리에게로 넘어왔고, 도살 장비를 봉인했으며 지육의 판매도 곧 중지 시켰다. 그 후 7월 1일까지는 더 치열한 시간이었다. 어떻게든 남은 업소를 설득하려 노력하는 한편 개들을 안전 하게 구조하기 위한 준비를 진행했다. 그동안 개 시장에 버려지는 유기견을 구조하는 일이 잦았다. 갓 태어난 새 끼들과 어미, 장모 치와와 4마리, 어린 진돗개 3남매, 믹스견 6남매… 좋은 사람 만나라며 길가에 버린 것도 아니고 죽으라고 보신탕집 앞에 버린 개들이었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개 들이 영문도 모른 채 버려져서 죽었을까….
홍역은 더 큰 난관이었다. 몇 마리가 양성을 보이기 시작했다. 영양도 부족하고 비위생적인 환경에 있으니 당연 했다. 아픈 개들을 병원에 보내면서 제발 다른 개체에게는 전염되지 않았기를 간절히 빌었다. 더 이상 누구도 죽지 않기를 바랐다. 그게 도살이든, 전염병이든. 그렇게 열흘이 정말 잔인 하고 빠르게 지나갔다.
죄 없는 그들을 위하여
지난 7월 1일 오전 8시 30분. 동물권 행동 카라, 휴메인 소사이어티 인터 내셔널HSI-Korea, 동물자유연대, 부산동 물학대방지연합 등 4개 단체가 현장에 집결했다. 개 시장의 개들에게 ‘뜬장에서 나가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 했다. 대개 상인들은 쇠꼬챙이로 꾹꾹 쑤시며 개들에게 폭력과 공포를 각인 시킨 후 뜬장 밖으로 끌고 나와 죽였다. 무력에 굴복해왔을 개들을 우리까지 급하게 서두른다고 거칠게 다룰 수는 없었다. 한 마리씩 차례차례 홍역 검사와 예방접종을 진행했다. 개들은 너무나도 순했다. 입질 한 번 못 하는 개들이 대부분이었다. 구조된 한 개가 홍역 진단을 받으면 그 자리에서 작업을 멈추고 바로 환복한 뒤 소독을 위해 방역복과 장화를 착용했다. 날이 몹시 덥고 습해 땀이 뻘뻘 났지만 다른 개들한테 홍역 바이러스를 옮길 수는 없었다.
오전 일찍부터 시작한 작업은 점심때가 지나갈 즈음 마무리됐다. 개들을 옮겨놓은 이동장을 윙카에 실을 때는 방송사에서 온 기자와 카메라, 몰려든 시민들로 정신이 없었다. 업소 앞 뜬장 일부는 시원하게 철거되었다. 뜬장 을 때려 부수는 소리가 그렇게 경쾌 할 수 없었다. 많은 사람의 축하와 기쁨 속에서 개들은 위탁 보호소로 출 발했다.
86마리 개들의 새로운 시작, 그 이상의 의미
보호소의 개들은 잘 지내고 있다. 구석에서 잘 움직이지 않던 개들도 이제는 곧잘 꼬리를 흔든다. 개들은 빠르게 사람이 마냥 나쁘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배워가는 중이다. 개들은 국내에서 입양처를 찾다가 가족을 얻지 못하면 해외로 입양을 갈 예정이다. 구포의 마지막 개들, 잔인하고 비정한 역사에서 살아남은 개들의 안녕을 축복한다.
나는 구포의 개들을 보호소에 두고 집으로 돌아오며 언젠가 시장에 두고 돌아서야 했던 개들을 내내 생각 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태도와 시민 들의 목소리, 활동가들의 헌신으로 구포의 개들을 구조할 수 있었지만, 예전에 내가 만났던 그 애는 고통스럽게 죽었을 테다. 아직 나는 그 애를 잊지 못한다. 그리고 여전히 다른 곳에서 수많은 개들이 죽어가고 있을 것이라는 걸 안다.
죽음은 도무지 익숙해지지 않는다. 명복을 빌고 애도하는건 이제 지친다. 식품위생법이나 동물보호법 등 법률 적 근거는 차치하고서라도, 내가 더 이상 다치지 않기위해서 다들 죽지 않았으면 좋겠다. 더 많은 개 시장이 문을 닫고 개 도살장과 개 농장이 망했으면 좋겠다. 그런 마음으로 일한다. 우리의 다음 목표 중 하나는 대구 칠성 개 시장의 폐쇄. 내년에는 이곳이 꼭 문을 닫기를 기원한다.
Writer·Photographer 김나연(동물권행동 카라)
Editor 문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