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시가 끝나고부터 신건우 작가는 약 6개월간 산책을 할 때면 이 말을 뱉어냈다. 좀. 더. 숨. 쉴. 틈. 다섯 글자 사이에 바람 드나들 틈만도 네 개가 있는데 갑갑하다니! 나는 맨 처음에 그가 산책을 권유했을 때만큼, 아니 그보다 더 짜증을 냈다. 하지만 어느샌가 그 말에 나는 같은 발걸음을 맞추고 있었다. 나는 점점 우울해져가고 있었고, 생애 처음으로 그것을 감당하지 못하는 지경에 가서야 그놈의 ‘숨 쉴 틈’ 발언에 찬성한다고 털어놓았다.
올봄, 산책을 좋아하는 출판인 겸 작가, 박지원씨가 <아이돌을 인문하다>라는 책으로 살롱을 하러 취향관에 온 적이 있다. 사실 나는 아이돌에 관심이 없는 사람에 속하고, ‘한류’라는 대중문화로만 이해하고 있었다. 그런데 ‘인문’의 영역으로 그 현상을 이해하고 풀어낸 작가가 있다는 사실은 적잖이 놀라웠다. 그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지는 못했지만, 천천히 쌓여나갔을 생각들을 가진 양반임은 분명해 보였다. 그래서 그가 쓴 또 다른 책을 사볼 수밖에 없었다. ‘어슬렁거리는 삶의 즐거움에 관하여’라는 부제를 단 <산책하는 마음>이었다.
사실 이 책은 다른 사람에게 선물하기 위해 산 것이다. 그 사람은 친애하는 신건우 작가다. 그는 프랑스의 바스노르망디 주 꾸땅스 시에 위치한 ‘퐁데자르 꾸땅스 아트센터’에 레지던시 1기로 선발돼 5월부터 7월까지의 생경한 3개월 생활을 앞두고 있었다. 그는 자타공인 ‘산책주의자’다. 아마 박지원 작가만큼이나 산책을 즐기는 사람일 것이다. 본래 산책을 싫어했던 나에게 산책하며 대화하기를 끈질기게 시도해 나 역시 이제는 그와 괜찮은 대화를 하고 싶을 때면 “산책…이나 할까?”라며 어색하게나마 함께 걷기를 권하는 체질이 되게 했으니, 이 정도면 하나의 신념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그림을 그리는 화가이지만 국내외 여기저기서 자신이 걷고 있는 모습을 촬영한 ‘The Walker’라는 영상 작업을 쌓아나가고 있으며, 지난해 8 월에는 자신의 4년간 작업과 그 안의 생각들을 정리한 바를 라는 타이틀로 세 번째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그를 3년에 걸쳐 쭉 관찰해온 나는 ‘적당한 거리에 서서 시간을 바라보기’ 라는 제목으로 작가론을 써주었다. 그중 ‘산책’에 대해 쓴 부분을 살짝 소개하자면 다음과 같다.
“작가에게 산책은 매우 열등한 행동인 동시에 가장 고차원적인 행동으로 인식된다. 그것은 도시의 현상에 기생하는 미디어와도 비슷하다. 미디어는 정보의 산책이며, 일상 속에 침투한 강박적인 여가의 산책이다. 우리는 그로부터 숨 쉴 틈을 얻는다. 그 틈에 이슈가 있고, 하이라이트가 있고, 사건과 사고가 있다. 누군가를 위험에 빠뜨리는 웅덩이가 있고, 전쟁이 있으며, 끊임없는 성곽과 계단이 있다. 글자 없는 교본이 있고, 또한 통찰이 있는 듯하다. 주체와 객체는 사라진 지 오래다.”
전시를 끝내고 몇 달이 지났을 즈음, 몇 개의 별로로 보이는 해외 레지던시 공고를 패스하던 우리의 눈에 퐁데자르의 새 아트센터가 들어왔고, 신 작가는 그간 모아온 사비와 갑갑함과 열정을 한번에 쏟아부었다. 나의 일상을 어슬렁거리던 그는 그렇게 여운을 남기고 잠시 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우리는 징그럽게 너무 많은 소식을 전하지는 말자고 했고, 을 챙겨 간 그에게서 가끔 연락이 오면 나는 주로 들었다. 평소 더 많은 말을 했던 나는 침전된 마음속에서 눈을 감은 채 타국에서의 삶을 음미하곤 했다. 사진 전송은 최소화해달라고 했다. 가보지 않은 땅을 나는 가급적 쿨미디어적으로 읽고 싶었다.
3개월이라는 한 계절 단위의 시간은 결코 짧지 않았다. 가끔 오는 전화 뒤로 때로는 파도 소리가 들렸고, 때로는 뿌연 안개가 느껴지기도 했다. 그럴 때면 심란하거나 부러웠다. 공감이란 늘 어려운 것이었다. 하지만 다행히도 “지금 공원이야.”라고 했을 때는 내 마음도 조금 편안했다. 산책은 어디서든 할 수 있는 것이지만, 작가로서의 그가 가장 잘 어울리는 공간은 아직은 공원이었다고 하면 설명을 잘한 것일까. 아무튼 나는 그런 선입견을 섞어가며 그를 멀리서 여전히 응원하고 있었다. “우리는 산책의 본질을 어떻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인가? 한마디로 말한다면, 산책은 역시 부정하는 일이 아니라 긍정하는 일이라고 할 수 있으리라.”
<산책하는 마음>에 기술되었듯, 산책의 이런 긍정적 기운은 다시금 그를 일으켰다. 신 작가는 한국에 있을 때보다도 잠을 많이 안 자고도 대부분의 아침을 상쾌하게 맞이했다고 했다. 노르망디의 맑은 공기 덕도 있었겠지만 산책을 벗 삼은 그의 생활 습관은 그곳에서 빛을 발했다. 퐁데자르 갤러리의 정락석 대표님, 그리고 의 편집장을 맡은 심은록 평론가님, 그리고 그와 함께한 작가 동료들 모두 점점 나아지는 그의 컨디션에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는 소식이 들려올 즈음, 빨강과 검정만을 쓰던 그의 다소 무거웠던 그림에는 듬성듬성 초록빛의 풀도 자라나기 시작했다. 생각해보니 나 역시 무언가를 만들어가는 사람으로서 오래 생각하고 한번에 터뜨리는 스타일은 그와 닮아 있었다.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다. 어느덧 그가 파도를 뒤로하고 전화를 걸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예민함이 너그러움을 입고 기분 좋게 바위에 하얀 거품으로 부서졌다. “나는 도시에 있을 때에도 자꾸만 바다를 보고 싶다.”
<산책하는 마음>의 한 문장을 또다시 새롭게 읽어본다. 이제 이해가 된다. 그사이, 신개선문 ‘라 그랑드 아르슈La Grande Arche’를 닮은 건축적 오브제를 품은 신 작가의 그림은 노르망디 박물관의 관장실에 걸렸다. 라는 신문사에서 그를 인터뷰해 기사화했지만, 그는 오늘도 겸손하다. 산책을 닮은 그의 행보가 기대된다. 나 역시 그 시간을 통해 홀로 산책하는 법을 배웠다. 나에게도 새로운 응원을 해본다.
이 원고를 쓴 날, 나는 취향관의 다음 시즌 테마인 ‘취향의 존재 — 괜찮은 개인주의자’에 대한 제안의 글을 함께 썼다. 자신을 스스로 더 소중히 생각하고 탐구하며 점진적인 변화를 시도해보자는 내용을 담았다. 이제는 더 이상 ‘개인주의’가 사상이 아니듯, 우리의 ‘산책’ 역시 개인적 신념에 머무를 이유가 없었다. 이것은 하나의 현상이며 더 나아가 삶 그 자체의 일부다. 오늘도 나는 기분 좋게 걷는다.
취향관 : ‘우리 시대의 예술’에 대해 질문하는 회원제 사교클럽. 2018년 합정동에 문을 열었다.
배민영 : 살롱공간 취향관에서 편집장, 전시 디렉터, 시즌테마 기획자 등으로 일하듯 놀고 있다. 변화하는 삶을 긍정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Writer 배민영
Photo Providing 신건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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