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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5 스페셜

그리고 사랑만이 오래 번져간다

2019.11.28 | 펫로스에 대처하는 우리의 자세

호두와 치즈, 그래서 호치
나는 아주 귀여운 고양이 두 마리와 살고 있다. 이름이 호두와 치즈인데 한배에서 태어난 형제여서 남편과 나는 줄여서 호치 형제라 부른다. 아기 고양이이던 호치가 우리 집에 온 건 초가을이다. 태어난 때는 정확히 알 수 없어서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그 즈음을 생일처럼 축하하고 있다. 올가을 '호치 주간'을 축하하다 아이들이 만 세 살이 되었다는 걸 알게 됐다. 그게 내게는 조금 뜻깊었는데, 그 말은 나의 새 고양이들이 이제 더벙이보다 나이가 많다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더벙이는 두 살 반을 막 넘긴 어느 여름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나는 아직도 더벙이가 왜 죽었는지 알지 못한다. 호흡이 살짝 가쁜 듯해 병원에 데려갔을 때 수의사는 이미 폐가 많이 상했다고 했다. 하지만 죽을 거라곤 하지 않았는데, 그러고서 36시간을 넘기지 못했다.
차 타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더벙이를 먼 제주시의 병원까지 데려갔던 게 어쩌면 잘못이었는지도 모른다. 수의사는 하루 만에 상태가 심각해져 나타난 더벙이를 보고 지금으로선 손쓸 방법은 없고 대신 암 검사를 해보겠냐고 물었다. 암이 발견된들 달라질 건 없는데도 큰 병원의 의사는 검사를 권했다. 호치를 데려온 뒤 읍내의 작은 동물병원에서 사려 깊은 수의사 선생님을 만나고서 나는 더벙이를 그 병원에 데려갔던 것을 후회했다.

누구의 잘못도 아닌 순간들
내가 자책한 건 병원만이 아니었다. 나는 더벙이가 토했던 새벽으로, 밥을 조르지 않았던 아침으로, 기력이 쇠한 것 같다고 느낀 여름의 초입으로, 더벙이를 살렸을지도 모를 순간들로 끝도 없이 돌아갔다. 상상 속에서 언제나 더벙이는 쾌차하여 집으로 돌아왔고, 우리는 함께 침대에 누워 햇살을 쬐었다. 눈물 나게 평화로웠다. 더 아픈 상상은 더벙이가 서서히 몸이 안 좋아져간 과정에 대한 사후적인 재구성이었다. 잘 기억나지도 않은 시간들을, 더벙이가 아팠다고 가정하고 새로 썼다. 묵직하고 둔탁한 통증이 있는 상상이었다.
그러나 자책하는 동안 가장 괴로웠던 건 자책하지 말라는 주위 사람들의 위로였다. 그들의 말을 나도 이해한다. 바뀔 게 없고 고통만 가중되니 그만두는 게 좋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정말로 책임이 있었다. 더 일찍 알아차렸어야 했고 더 나은 대처를 했어야 했다. 그냥 그건 사실이다. 자책은 쓸모가 없을 뿐이다. 쓸모는 없는데 고통스러우니 언젠가 그만두게 되는 것이 수순이지만 자책하는 과정을 생략할 수는 없다. 자책하지 말란 위로를 들으면서 누군가를 상실하고 자책하는 이들에게 위로가 되는 말은 오히려 충분히 자책하란 말일 수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자책하지 말라는 것은 얼른 괜찮아지라는 의미이기도 했으므로.

펫로스는 없다.
상실을 극복하는 데는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다. 내 경험을 이야기하자면 나는 호치를 데려왔다. 집 근처 공사장에 붙은 '아기 고양이 분양'문구에 무작정 찾아갔다. 현장 소장님이 컨테이너 사무실에서 어미 고양이가 공사장에 두고 간 새끼들을 보살피고 있었다. 귀와 코가 꼬질꼬질한 채 새근새근 자고 있는 고양이들을 보고, 아주 강렬하게 이 아이들을 데려와야 한다고 느꼈다. 따뜻한 물에 씻기고 깨끗하게 닦아주고 싶었다. 그 확신이 너무 강렬해서 이게 잘하는 짓인지 확신하지 못하면서 호치를 데려왔다. 돌이켜 보면 나는 갑작스러운 상실로 대상을 잃은 에너지가 흘러갈 곳을 구했던 것 같다. 더벙이에게 해주지 못한 것을 이 고양이들이게 대신해주고 싶었다. 같은 이유로 이별 후 급히 시작한 연애였다면 문제는 심각했겠지만, 다행히 천방지축 호치들은 더벙이를 그리워하는 내 맘 따위 관심도 없었다. 그리고 내키는 대로 원하는 것을 얻어내며 무럭무럭 잘 자라 이제는 더벙이보다 나이 많은 성묘가 됐다. 나는 나대로 그 무심함에 위로받으며 애도의 수순을 천천히 통과했다. 내가 펫로스에 관해 아는 건 하나다. 그런 건 없다는 사실이다. 펫로스가 아니라 그냥 상실이다. 펫로스의 특수함이라면 펫로스가 그냥 상실이라는 것을 세상이 이해하지 못한다는 사실뿐이다. 그렇게까지 오래 울 일은 아니라거나 네가 슬퍼하면 하늘에서 댕댕이도 슬퍼할 거라고 멋대로 빙의하여 위로하는 사람들에게 남몰래 상처받게 되고, 그래서 더욱 고독하다는 것이 차라리 그 차이다. 그러나 모든 상실이 본질적으로 고독한 과정임을 생각하면 그것 역시 대단한 차이는 아닐 것이다.

주머니에 넣어 다니는 슬픔
남편은 종종 농담처럼 그래서 호치야, 더벙이야? 묻는다. 처음엔 당황했지만 이내 깨달았다. 어떤 의미로는 더벙이 덕분에 호치를 만났다. 나보다 작고 여린 존재를 보살피는 기쁨에 대해 알려준 것이 더벙이였다. 더벙이를 사랑했고, 잃었고, 그래서 호치를 만나게 된 것이 이제는 흘러간 계절처럼 자연스럽게 느껴진다. 이 방식의 애도가 잘못되었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상실을 견딘다. 그러므로 누군가 '펫로스'를 겪고 있다면 나의 수칙 또한 하나다. 펫로스라 칭하지 않을 것. 그 고유한 상실을 고유한 방식으로 통화하고 통합할 수 있도록 그저 기다려주고 싶다.
영화 <레빗 홀>에는 아이를 잃은 모냐가 나온다. 어린 아들을 차 사고로 잃고 8개월째 슬픔 속에 사는 베카는 마찬가지로 아들을 잃은 경험이 있는 엄마에게 이 무겁고 슬픈 감정들이 언젠가는 사라지냐고 묻는다. 엄마는 답한다. 영원히 사라지지 않지만, 시간이 흐르면 그 아래서 기어 나올 수 있을 정도로 가벼워지고, 시간이 더 지나면 주머니 속에 넣어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작아진다고 그리고 그렇게 되고 나면 그런 방식으로 아들과 영원히 함께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그럴 것이다. 슬픔은 작아지지만 사랑의 기억은 작아지지 않는다. 시간이 충분히 흐른다면 부재 또한 나의 일부가 된다. 그리고 사랑만이 오래오래 번져간다.

글·사진 정지민


정지민
고양이2, 남자1과 제주에 살며 로컬 잡지사
<iiin> 에 다닌다. <우리는 서로 구할 수 있을까>를 썼고
<내가 연애를 못하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인문학 탓이야>(공저)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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