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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8 인터뷰

영화 <몽마르트 파파>

2020.01.08 | 민병우 감독, 민형식·이운숙 부부 인터뷰

퇴임을 앞둔 아버지께 큰아들은 "이제 뭐 하실 거예요?"라고 묻는다. 이에 아버지 민형식 씨는 "다 계획이 있지"라고 대답한다. 그 계획이 무엇인지 궁금했던 호기심 넘치는 아들은 카메라를 들고 아버지를 찍기 시작한다. 현실적인 아내 이운숙 씨는 "진짜로 파리에 가면 내가 장을 지진다"라고 핀잔을 준다. 영화 <몽마르트 파파>는 34년간 미술 교사로 근무한 민형식 씨가 가슴속에 간직했던 거리 화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파리로 떠나는 과정을 그린 휴먼 다큐로, '오팔 세대'라고 불리는 5060 베이비붐 세대의 인생 2막 이야기가 펼쳐진다. 영화 개봉을 앞두고 주인공 민형식, 이운숙 부부와 큰아들 민병우 감독들 만났다.


<몽마르트 파파>는 아버지의 꿈을 아들이 기록한 영화예요.

병우 '아버지가 퇴임 후 뭐 하실까'라는 호기심에서 출발한 추적 다큐로 접근했어요. 어렸을 때 어렴풋이 들었던 아버지의 꿈이 생각났고, 동시에 아버지 기록을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영화를 위해서 아버지를 등 떠밀기보다는 천천히 지켜보면서 응원하고자 했습니다.

아버지의 "다 계획이 있지"라는 말에 여러 의미가 담겼었네요.

병우 몽마르트 거리 화가 지원 신청 같은 행정적 도움을 드리니 일이 일사천리로 진행이 되더라고요. 프랑스 가기 전까지도 100% 확신이 없었늕데 막상 파리에서 촬영하면서 '이거 잘 해볼 수 있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두 분은 완성된 영화를 어떻게 보셨는지 궁금해요.

병우 아버지께서는 한 서른 번 정도 보신 거 같아요(웃음).

운숙 저는 처음에 "난 안 볼란다"라고 했어요. 제가 영화에 출연한다고 화장도 하고 옷도 예쁘게 입었어야 하는데 완전 집에서의 행동 그대로 자연스럽게 나와서. 저는 그게 불만이에요(웃음).

형식 처음에 봤을 때는 이왕이면 다홍치마라고 "이 장면 넣어라, 뺴라"라며 훈수를 뒀는데 아들이 제 말을 다 듣더니 "감독은 저예요"라고 하더라고요. 만약 저도 누가 제 그림을 고치라고 하면 선뜻 안 받아들일 텐데 말이죠. 아들의 영화가 개봉하는 게 멋진 일이지만 제가 몽마르트 간 것보다는 덜 멋지다고 생각합니다(웃음).

민병우 감독, 이운숙 민형식 부부(왼쪽부터)

감독님께서는 가족 다큐멘터리를 찍으면서 어떤 점이 인상 깊었나요.

병우 그동안 제 꿈만 좇으며 살다가 아버지께서 은퇴하시는 모습을 보고 부모님의 꿈에 대해서 생각을 하게 됐어요. 아들이자 관찰자로서 카메라를 들고 부모님을 관찰하다 보니 두 분에 대해 모르는 게 의외로 많다고 느꼈습니다. 부모님을 인간적으로 이해하게 되면서 작업에 몰입할 수 있었습니다. 영화를 찍으면서 자연스럽게 관계 개선도 됐어요.

영화를 보면서 훌륭한 부모님과 그에 걸맞은 자식이라는 말이 납득이 갔어요.

형식 아들의 꿈을 지지해주고 싶었습니다. 아내는 큰아들이 영화감독 한다는 걸 반대하면서 남들처럼 직장 가지고 결혼하는 평범한 생활을 원했어요. 그 마음이 이해가 가면서도 살아보니 그게 가장 어려운 일이란 걸 깨달았죠. 언제나 아들이 살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기를 응원하고 있어요. 서로 내색은 안 해도 부자지간이라 마음이 통하길 바랍니다

감독님은 극영화로 데뷔하시고 다큐멘터리 작업은 이번에 처음이셨죠?

병우 한국과 파리에서 촬영한 분량이 워낙 방대하다 보니 선별하는 작업이 오래 걸렸어요. 그리고 두 분의 감정이 흐르는 대로 좇다 보니 예측 불가능한 부분도 있었고요. 1년 정도 편집하면서 러닝타임도 80분대로 압축적으로 줄일 수 있었습니다. 또한 아버지가 과연 그림을 팔았을지 같은 극영화적인 궁금증을 자아내는 연출을 염두에 두었습니다. 연출과 촬영, 편집까지 다 스스로 했기에 가능한 일이었고, 무엇보다 재밌게 작업했어요.

국경을 초월해 몽마르트 거리 화가들과 같이 지내본 소감이 어떠신지요.

형식 프랑스 파리에 도착하자마자 상상했던 대로 예술의 도시 느낌이 딱 와닿았습니다. 제가 교직 생활을 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파리의 예술가들이나 미술관을 보며 우리나라의 학생들 생각이 많이 났습니다. 어렸을 때부터 예술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하면 '한국의 피카소'도 나오겠다고 생각했어요.


두 분이 젊으셨을 땐 2020년의 현재 모습을 상상하셨는지요.

운숙 큰아들이 커서 영화감독이 되고 우리를 찍게 될 것이라고 상상을 못했죠.​

형식 저희가 젊었을 때는 '백세 시대' 같은 단어가 없었죠. 그만큼 생활이 나아지고 세상이 편리해졌어요. 다만 과거에 정상적인 직장을 생활을 10년 하면 집을 살 수 있었다면 지금은 그렇지 않죠. 오히려 요즘 우리 세대가 다시 조명받는 이유도 자식 세대가 사회적으로 늦게 자리를 잡는 배경도 있는 것 같아요. 실제로 부모들이 자식 뒷바라지를 오래하고 있잖아요. 공교롭게 그런 사회 분위기가 '백세 시대'와 연결되는 점도 있다고 느낍니다.

부모와 자식 세대가 처한 현실을 이해하면서 각자의 꿈에 가까워지고 있다고 보입니다.

병우 맞아요. 각자의 꿈을 이루는 데도 서로 동기부여가 되고 있습니다. 저도 영화를 찍고 아버지도 그림을 그리며 같이 발전해가는 모습을 원합니다. 이번에 영화 개봉과 연계로 아버지의 첫 개인전도 준비 중이에요. 그러면서 아버지도 그림을 더 많이 그리는 상황이 되었어요. 아버지 제2의 인생이 열렸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영화 개봉처럼 이벤트로만 끝난다면 아버지의 꿈이 퇴색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어머님 역시 현모양처가 꿈이라고 하시는데 사실 그게 아닐 거라고 감히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몽마르트 파리> 속편을 생각하고 있어요. 시리즈로 만들고 싶은 가장 큰 이유 중에 하나는 꿈이 단발성으로 그치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이에요. 다음 편에서 그걸 찾아볼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그럼 어머니의 현재 꿈은 무엇인가요?

운숙 저는 젊을 때는 여유가 없어서 하고 싶은 걸 못하고 지금은 나이가 이만큼 되니 자신 없어서 못하고 있어요. 사실 하고 싶은 건 많아요. 나중에 찻집도 하고 싶고요. 무엇보다 두 아들이 잘되었으면 하는 게 현재 가장 큰 꿈이에요. 영화 속 파리에서 기도하는 것도 남편 위해서가 아니라 다 자식들한테 기도한 거예요(웃음).

<몽마르트 파파>는 낭만적인 여행 영화이기도 합니다.

병우 촬영 기간 내내 하루도 안 쉬고 몽마르트로 출근을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추운 날씨에 하루 종일 그림만 그리시는 아버지도 슬슬 지쳐 보였어요. 그래서 퇴근하고 미술관을 찾았는데 파리에 있는 유명 미술관은 거의 다간 것 같아요. 아버지께서 여행을 자유롭게 즐기시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미리 정해놓진 않고 아버지와 상의하고 어디 갈지를 즉흥적으로 결정했어요. 영화를 보면 아시겠지만 프랑스 남부의 니스, 에즈를 방문 한 것 모두 영화적으로 의미가 있었어요. 그중 특히 '에트르타' 마을은 화가들의 작품에서 자주 등장해서 가봐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는 마치 미술관의 큐레이터의 느낌이 들었어요. 어떻게 미술 교사가 되셨나요.

형식 저의 부모님도 제가 번듯한 생활을 하기를 원해서 학창 시절 의사를 권유했어요. 저는 그림에 관심이 많아 의과 시험을 보는 도중에 포기하고 고향에 내려와 서양학과 진학을 결정했습니다. 다만 화가보다는 안정적인 직업인 미술 교사를 선택했고 아내를 만날 수 있었죠.​

운숙 살면서 평소엔 그림 그리는 걸 잘 못 봐서 실력을 인정 안 해줬습니다. 그러다가 이번에 파리에 가서 지켜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어요.​

병우 어렸을 때부터 집 벽에 걸린 아버지 그림을 보고 자랐는데도 무감각했어요. 아버지를 인정하지 않는 어머니의 영향을 많이 받았죠. 그래서 프랑스 갈 때 걱정을 했습니다. 저 역시 아버지 그림은 아닌 거 같다고 속으로 생각했어요. 미술관에 함께 가고 나서야 그림에 대한 철학을 이렇게 가지고 계신지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그런 대화를 해본 적 이 없었어요. 그때부터 아버지 그림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어요. 흰색, 파랑 두 색상만으로 감정을 담아 그림을 완성하시는 걸 보고 그림도 영화와 마찬가지로 사람을 움직이는 게 있다고 느꼈어요. 무엇보다 평소 게으르시던 아버지가 파리에선 그림을 정말 열심히 그리셨어요. 확실히 예술가 기질이 있으셔서 영감을 받아야 그리시더라고요. 저에게도 많은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비바람이 부는 날 고흐의 <까마귀가 있는 밀밭>의 실제 배경을 바라보며 "우리가 사는 게 아무것도 아니거든. 멋진 작품을 남기고…"라고 말씀하시는 게 기억에 남아요.

형식 고흐의 마지막 발자취를 느낄 수 있는 작은 마을을 방문했는데 저 역시 책을 통해서 배웠던 고흐의 삶을 직접 느낄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고흐는 살아생전에 인정을 못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고 업적을 인정받았잖아요. 직전에 고흐 무덤을 보고 그 장소를 가서 그랬는지 감정이입이 잘 되었어요. 비 오는 게 뭐 대수인가요. 어느 박물관 보다도 더 멋지고 전율이 느껴졌어요.​

병우 모든 게 예정에 있던 장면은 아니었어요. 저희도 날씨가 그렇게 궂을지 몰랐는데 달리 방법도 없었죠. 비바람에 카메라가 고장 날 정도였습니다. 렌즈를 닦으면서 촬영을 했는데 운 좋게 리얼한 영상이 담겼어요.​

형식 누구나 꿈이 있으면 가슴 뛰는 인생을 살 수 있어요. 우리 삶도 크게 보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꿈도 거창한 게 아닌데 뭐든 해놓고 나면 훗날 멋진 작품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 있는 한 무엇보다 가슴 뛰는 일을 하고 싶어요. 붓을 잡고 그림을 그리다 죽는 삶을 살고 싶습니다.


정규환

사진 김찬영

스틸제공 트리플픽쳐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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