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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1 커버스토리

손담비

2020.02.20 | 치열하고, 덤덤하게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없다. 남의 비밀을 낚아채 협박을 일삼고, 필터링 없이 이 말 저 말을 내뱉는 얄밉고 엉뚱한 여자. 도둑질과 거짓말이 특기인데 이상하게 도무지 미워할 수가 없다. <동백꽃 필 무렵>의 인물 설명에 향미는 '미어캣'이라고 소개되어 있다. 미어캣처럼 주변을 두리번대다 상대의 비밀을 알아채지만, 그만큼 행동이 얕고 가벼워서 사람들은 그를 만만해한다는 설명이다. 처음에는 가벼운 존재감이지만, 회가 거듭할수록 자꾸 눈길이 가고 보듬어주고 싶은 인물이 바로 <동백꽃 필 무렵>의 또 다른 주인공 향미다. 외롭고 쓸쓸한 연기로 시청자를 울리더니 <나 혼자 산다>에서는 스쿠터를 타다 엉덩방아를 찧고, 대형TV를 포장도 없이 질질 끌어 옮기는 조마조마한 일상을 보여준다. 심지어 휴대폰 케이스까지 안 맞는 걸 끼워 카메라를 가리고 있는 게 발견되어 '대충 살자 손담비처럼'이라는 밈까지 생성했다. 멍담비, 손 많이 가는 똥손 등 출연 한 번에 별명부자가 된 손담비는 "이럴 일인가 싶다"며 호탕하게 웃는다. 인터뷰 당시까지도 손담비의 케이스는 여전히 카메라 하나를 가리고 있었다. 새 케이스가 아직 배송 중이라고. 역시 손담비의 매력에는 출구가 없다.


<나 혼자 산다>에서 크기가 안 맞는 케이스를 사용하는 모습이 공개되는 바람에 '대충 살자 손담비처럼'이란 말이 화제가 됐다.
맞다.(웃음) 주문한 케이스가 안 와서 깨질까 봐 임시로 쓰던 건데 캡처될 줄 몰랐다. 이럴 일인가 싶었다.

<동백꽃 필 무렵>의 향미는 인생 캐릭터다. 드라마로 연말 KBS연기대상에서 신인상도 수상했다. 워낙 좋은 작품을 끝낸 이후라 다음 작품을 고르는 게 고민일 것 같다.
이렇게 잘될 거라곤 예상하지 못했다. 글이 좋기 때문에 분명 반응이 올 거라고 생각했고, 좋은 작품 안에서 향미라는 캐릭터를 잘 살리는 게 최종 목표였다. 그런데 내 생각보다 향미를 너무 좋아해주셔서 처음엔 당황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사랑을 많이 받고 있구나 싶어 기쁜 한편, 중요한 시점이다 싶어 생각이 많아졌다.

대본 속 향미라는 캐릭터가 손담비라는 배우와 만나 바뀐 부분이 있나.
내 성격이 많이 가미된 것 같다. <나 혼자 산다>를 본 사람들이 향미가 나랑 똑같다고 하더라. 얼추 비슷한 부분이 있더라. 아무래도 나만의 스타일로 연기하다 보니 손담비의 기질이 향미에게 합쳐졌을 것이다. 멍때리거나 이상한 소리를 하거나 사이다 발언을 하는 것 등. 내 성격이 모 아니면 도다. 이런 모습이 가미됐지 않았나 싶다.

향미의 뿌리염색을 하지 않은 스타일이나 처음 등장할 때 병뚜껑에 술을 따라 마시는 장면 등은 직접 제안했다고 들었다.
워낙 글에 잘 표현되긴 했지만 향미의 외적인 부분을 살려야겠다고 생각했다. 외적인 모습을 신경 안 쓸 수 없으니까. 뿌리염색만 해도 '향미는 꾸미고 싶어 하는 애다, 분명 염색도 했을 텐데 다시 할 돈은 없을 거다'. 이런 설정을 더했다. 손톱도 튀고 요란한 색을 직접 발랐을 거고 분명 덧바르지 않아 까졌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 생각을 많이 더했고 작가님도 좋은 아이디어라고 반가워해주셨다. 진짜 향미 같다고.

처음 대본을 보고 향미가 어떤 사람이라고 느꼈나.
되게 안쓰러웠다. 향미의 서사가 길게 나와 있었다. 어떻게 보면 생각 없고 철부지 같지만 눈치는 빠르다. 팩트를 이야기해도 뭔가 어지러운 느낌이고. 그런데 나중에 향미의 서사가 드러나니까 무척 불쌍한 아이, 버림받았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안쓰러운 아이로 느껴졌다.


현장 분위기도 좋았을 것 같다. 당시 공효진 배우의 SNS를 보면 공간과 사람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드러났다.
언니도 나도 많이 사랑했다. 현장 분위기가 좋아서 배우들이 편했고 거리낌 없이 자신을 표현할 수 있었다. 모든 감독님과 작가님들이 다 서포트해주고 분위기가 화기애애했다. 나는 웬만하면 안 우는데, 마지막 날 안 운 사람이 없었다. 이런 작품은 다시 못 만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나봐야 10년 후가 되지 않을까 싶을 만큼. 잊지 못한다고 얘기도 하고 모임을 자주 갖고 있다. 다들 <동백꽃 필 무렵>을 그리워한다.

2009년 연기자로 전향한 후 10년 만에 향미라는 캐릭터를 만났다. 사람들이 배우 손담비를 확실히 인지하게 해준 향미는 손담비에게 어떤 의미인가.
꾸준히 하길 잘했다고 생각한다.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냥 있었더라면 이 작품이 내게 왔을까 싶다.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했고 캐릭터에 몰입하려고 노력했다. 이런 와중에 동백꽃이 들어와 꽃을 피웠다고 생각한다.

처음엔 큰 배역처럼 안 보이지만 결국 극의 반전을 품고 있는, 배우로서 부담이 될 수도 있는 역할이었다.
맞다. 작가님, 감독님의 포커스가 온통 향미에게 맞춰져 있었다. 향미라는 캐릭터가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시더라. 서사도 많고 나중엔 처절해지니까 초반부터 잘 쌓아가야 하는데 내가 잘할 수 있을지 믿음을 심어달라는 이야기도 들었다. "향미야, 네가 나한테 믿음을 줘야지" 해서 드리겠다고 했다. 우여곡절 끝에 캐릭터가 완성됐다. 향미가 보통 캐릭터는 아니고 어려울 수 있으니 꼭 해내야겠다는 마음에 열정이 타올랐다. 많이 부담됐다. 그래도 괜찮았다.

드라마에서 향미가 죽고 충격이 컸다. 다음 회를 안 보겠다는 시청자도 있었다.
이렇게 사랑받은 캐릭터를 연기한 건 처음이다. 신인상을 받고 어안이 벙벙했다. 팀이 되어 같이 웃고 같이 우는구나 하고 느꼈을 때 시너지가 달랐다.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라고 다시 한 번 느꼈다. 이런 좋은 캐릭터를 다시 만날 수 있을지, 사랑받는 캐릭터를 잡을 수 있을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시상식 때 공효진 배우와 눈 마주치고 우는 장면이 인상 깊었다.
효진 언니는 개인적으로 친한 언니기도 하고 좋아하는 선배다. 촬영 현장에서도 날 너무 많이 도와줬고 누구보다 향미를 응원한 사람이 동백이란 생각이 들었다. 언니가 대상 받았을 때 이미 울고 있었고 언니가 나랑 눈 마주치고 우는 모습에 울컥해서 또 엄청 울었다. 언니도 그런 마음이겠구나 싶었다. 효진 언니는 향미가 잘 돼서 기분이 너무 좋다고 항상 말해줬다. 그 마음이 느껴져서 운 것 같다.

설 연휴 지나고 SNS에 엄마 잔소리를 들으면서 멍때리는 사진이 올라왔다. '요새 이 언니가 제일 웃기다'고 반응이 폭발적이었다. 사진은 누가 찍어준 건가.
(정)려원 언니, (임)수미, (김)소이 언니, (공)효진 언니랑 모이는 모임이 있다. 그날도 설날에 엄마가 떡국 해준다고 해서 려원 언니랑 수미가 우리 집에 왔다. 밥을 먹다가 엄마가 잔소리해서 멍때리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웃겼는지 려원 언니가 찍어줬다. 또 언니네 집에서 조카랑 놀아주고 있었는데 그 모습도 웃겨서 찍었다더라. 피드백이 이렇게 많을 줄 몰랐다. 휴대폰 케이스 새로 받았다는 글엔 댓글이 4천 개 넘게 달렸는데 설 사진에도 많이 달렸다. 새로 받은 케이스도 휴대폰에 안 맞아서 "어? 난 이런 게 운명인가 보다"했는데 그런 걸 재밌어 하시더라. 이상하게 요새 그쪽(멍담비)으로 가는 게 아닌가 싶다.(웃음) 반응이 쏠려 있다.

설 명절은 어떻게 보냈나.
엄마가 와서 2주 동안 함께 보냈다. 엄마랑…(한참 있다가) 우여곡절 끝에 2주의 시간을 보냈고 려원 언니네 집에 놀러 가거나 운동하면서 보냈다.

<나 혼자 산다> 출연 이후 친구들과 커뮤니티가 든든하고 즐거워 보여서 부럽다는 여성들이 많다. 여성 커뮤니티가 손담비에게 주는 영향이 커 보인다.
좋은 일도 같이 하고 나쁜 점도 지적할 수 있는 친구들이다. 당연히 서로 응원도 하지만, 지적도 엄청한다.(웃음) 한 명한테 좋지 않은 일이 생길 것 같으면 모여서 회의한다. 친하니까 사소한 점까지 '이건 아니다'하고 얘기해주고 방향을 같이 고민한다. 우리끼리 하는 말인데, 나이 들어서까지 전부 다 잘됐으면 좋겠다. 같이 좋은 모습만 보자고 말하곤 한다. 큰 울타리 같다. 우리가 마흔을 바라보고 있고 그중엔 마흔이 된 언니도 있다. 나이가 더 들어서 누구 하나 초라해지지 않는 삶을 사는 게 목표라서 서로 도와주는 부분이 많다. 내가 형제가 있으면 이 정도로 친하게 지낼 수 있겠구나 싶다. 외동딸이라 못 느껴본 감정을 언니들한테 느낀다. 떼려야 뗄 수 없다. 그야말로 가족이다.


<동백꽃 필 무렵>도 공효진 배우의 추천으로 합류하게 됐다고 들었다. 참 좋은 선배 같다.
언니한테 뭐 하나라도 해줘야 할 것 같아서 "뭐 해주지?"하니까 언니가 "야, 됐어 좋은 작품이나 더 해" 하더라.

친구들과 만나면 주로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나.
넷플릭스 보기? 이번에 려원 언니랑 <종이의 집>을 보느라 일주일이 그냥 갔다. 다음 넷플릭스 작품으로 뭘 선택할지 고민 중이다. <종이의 집>이 한동안 위로가 됐다. 너무 재밌어서.

평소 패션에 관심이 많고 운동도 열심히 한다. 취미가 많은데 <나 혼자 산다>에서 그런 모습이 부각되지 않았다. 아쉽지는 않나.
그런 모습은 식상할 것 같았다. 많은 배우가 운동 등 자기 관리하는 모습을 기본으로 보여주지 않나. 난 다른 걸 보여주고 싶었다. 일단 하면 잘해야 하는 성격이라 그간 잘 보여주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고 싶었다.

지금의 자연스러운 일상을 보여주는 모습은 본인의 의견이 많이 반영된 부분이겠다.
그렇다. 나에게도 여러 모습이 있으니까 꼭 알차게 사는 모습만 보여줄 필요는 없을 것 같았다.

가수 때부터 치열하게 활동한 모습과 달리 일상은 느슨하더라.
어느 순간부터 나를 못 챙긴다는 느낌이 들었다. 여유롭게 살자고 생각했다. 그래서 평상시에 느린 거 아닌가 싶다. 내가 약간 '렉 걸린' 아이처럼 느리다는 걸 <나 혼자 산다> 보고 깨달았다. 20대 땐 내 생활이 하나도 없었다. 한 번도 나 자신을 위해 뭘 해본 적이 없다. 그런 일상에 질렸던 것 같다. 이제는 일이 없을 땐 아무것도 안 한다. 운동 다녀오고 이후엔 릴랙스하고 있는다. 넷플릭스 보고. 넷플릭스를 이렇게 볼 일인가 싶을 정도다.(웃음) 그런데 쉬면서 잘 만든 드라마나 영화를 보는 게 너무 재밌더라. 고양이들이랑 놀아주고. 이런 모습이 내 일상이다.


20대를 돌아보면 어떤 모습이 떠오르나?
바쁘게 생활한 게 가장 크다. 늘 잠과의 싸움이었다. 매일 한두 시간밖에 못 자서 스트레스가 극심했다. 많은 사랑을 받았고, 내가 원해서 했던 일이지만 반면 내 생활이 없었던 것 같다. 일상의 생활 패턴이 무너져서 힘들었다. 돌이켜 보면 '와, 어떻게 그렇게 살았지?' 싶기도 하다.(웃음)

가수를 다시 할 생각은 없나.
10년 가까이 춤을 안 췄는데 다시 출 수 있을까.(웃음) 너무 많이 해서 춤은 쉬고 싶다. 연습생 때부터 하루 12시간씩 하다 보니 이제 못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라. 연기자로 나서기로 했을 때에도 이제 춤은 추지 말아야지 싶었다.

가수로 활동할 땐 남성 팬이 많았다면 지금은 여성 팬이 더 많은 것 같다. 실감하나.
SNS 댓글을 보면 거의 다 여자다. '누나'가 없고 대부분 '언니'다. 아니면 담비 씨라고. 내가 여자 팬이 되게 많구나, 나를 팔로우 하는 사람 중에 여자가 압도적으로 많구나 싶었다. 예전부터 차가워 보인다는 얘기를 많이 들었다. 가수 할 땐 그 말이 상처가 되기도 했다. 왜 사람들은 나를 그렇게 볼까 싶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대중에게 더 다가가고 싶었다. 내 진짜 모습도 보여주고. <나 혼자 산다>를 선택한 이유도 내 본 모습을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예능 프로그램 <미추리 8-1000>에서 보여준 거리낌 없는 모습도 새로웠다.
가수 때는 회사에서 그런 모습을 보여주는 걸 안 좋아했다. 그러고 싶지 않았지만 신비주의 콘셉트가 있었다.(웃음) 워낙 어릴 때 데뷔했고 내 결정권이 적었다. 30대가 되고 내 의견도 낼 수 있게 되면서 많이 바뀌었다. 이젠 자연스러운 모습을 보여줘도 될 거 같은데 숨겨봐야 뭐가 남나 싶어서 이왕 오픈하는 거 제대로 하자는 생각이 들더라. <미추리 8-1000>도, <나 혼자 산다>에서도 과감하게 내려놓을 수 있었다.


차기작으로 어떤 작품을 하고 싶나.
내 마음을 모르겠다. 공중에 떠 있다. 글쎄, 내가 뭘 원하는지 생각해봐야 하는 시점이다. 언니들하고도 많이 이야기하고 있다. 언니들은 일단 대본을 보여달라고, 그래야 판단할 수 있다고 한다.

<동백꽃 필 무렵>에서 연기에 대한 피드백도 많이 받았을 텐데 기억에 남는 응원이 있나.
너무 많다. 태어나서 악플이 한 번도 안 달린 건 향미가 처음이었다. 정말 감동했다. 어떻게 보면 미울 수도 있는데 함께 울고 재밌어해주고. '향미는 손담비 그 자체다'라는 코멘트가 특히 감명 깊었다. <나 혼자 산다>가 방송된 뒤에는 '같이 여행 가고 싶은 사람'에 3위로 뽑혔더라. 신기하더라. 유쾌해 보였나 보다. 곧 려원 언니, 효진 언니, 소이 언니, 수미, 새미 언니랑 같이 런던으로 여행 간다. 효진 언니가 런던에 일이 있는데 끝나는 일정에 같이 여행하기로 했다. 런던에 일주일 동안 머물면서 함께 박물관, 전시회도 가고 맘껏 쉬려고 한다. 같은 집에서 머물 거라서 또 다른 추억이 생길 것 같다.

힘든 일이 닥쳤을 때 극복하는 방법이 궁금하다.
둔한 편이다.(웃음) 그리고 인내심이 강하다. 그냥 버티는 편이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치열하게 싸우다가 어느 순간 잊어버리기도 한다. 그런데 성급하게 생각하거나 극단적으로 행동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렇다고 변할 건 없으니까 찬찬히 생각해보려고 한다. 또 나 자신에게 위로의 말을 해주는 편이다.

'손담비처럼 재미있게 살고 싶다'고 생각하는 여성 독자들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
드라마 <눈이 부시게>에서 김혜자 선배님의 한 대사를 엄마한테도 보내줬다. "오늘을 살아가세요. 눈이 부시게. 당신은 그럴 자격이 있습니다. 누군가의 엄마였고 누이였고 딸이었고 그리고 나였을 그대들에게." 독자들도 느낄 것이다. 힘들지만 이겨내며 살아가는 게 삶인 것 같다. 힘든 날도 있고 좋은 날도 있지만 모든 순간이 결국 내 거고 내 삶이다. 행복한 시간과 불행한 시간 모두 내 거니까, 생각을 바꾸고 바라보면 좋겠다. 그리고 힘든 시간도 결국 지나가더라. 행복이 언젠가 온다고 믿고 이겨내면 좋겠다.


진행 김송희・양수복
사진 백상현
스타일리스트 홍은영
헤어 이범호
메이크업 오윤희(제니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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