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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5 커버스토리

이문동의 역사, 살아남은 아이들

2020.05.03 | 이문냥이 프로젝트

서울시 동대문구 이문동 재정비촉진구역, 통칭 ‘이문동 재개발지구’에 남은 길고양이들의 삶을 고민하는 이들이 있다. ‘이문냥이 프로젝트’의 활동가 김꼭빵(활동명), 에스펜(활동명)은 이문동 인근에 길고양이 임시보호소를 어렵게 마련했다. 활동가를 비롯한 인근 대학의 학생들과 자원봉사자들이 곧 철거 예정인 재개발지구에서 구조한 고양이들을 돌본다. 고양이들이 구조 후 입양·이주방사되기 전까지 지내는 거점이다. 이곳에서, ‘살아남은 아이들’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면서 삶의 의지를 다진다. 새로운 곳에서의 묘생(猫生)을 위해. 김꼭빵 씨는 이 고양이들이 ‘이문동 역사’의 일부분이라고 말한다.


임시보호소에 들어서면 공간의 삼면을 ‘ㄷ’ 자로 메운 케이지들이 보인다. 고양이들이 낯선 이의 동태를 살폈다. 보호소 가운데의 탁자엔 고양이들의 상태가 기록된 차트와 크고 작은 청소도구, 메모지, 생수병 등이 놓여 있다. 케이지의 메모지엔 고양이들의 이름과 성격을 구분하는 스티커가 붙어 있다. 케이지 사이사이에 놓인 색색깔의 이불 사이로 ‘야옹’ 소리가 들렸다. 태어난 지 몇 달 안 된 아기고양이는 종이상자 안에 몸을 숨긴 채, 귀만 쫑긋 내밀고 주변을 파악했다. 이날은 이문냥이 프로젝트 활동가들과 한국외대 동아리 ‘냥만외대’ 회원, 자원봉사자가 쉴 틈 없이 청소를 하고 있었다. “한 아이가 그릇을 엎으면 어떻게 아는지 다른 아이들도 똑같이 엎어요.(웃음)” 에스펜 씨의 말이다. 케이지를 들어보니 무게가 상당하다. 활동가들과 봉사자들은 한 손으로 고양이가 있는 케이지를 살짝 들고, 다른 한 손으로 케이지 바닥에 빗자루를 집어넣어 먼지와 모래, 쏟아진 사료 등을 능숙하게 쓸어낸다. 고양이들도 익숙한지 종이상자 안에서 청소하는 인간을 얌전히 지켜본다.

직접 케이지 만들고, 달래가며 청소하고
활동가와 봉사자들은 네트망을 구매해 직사각형의 케이지를 만들었다. 밥과 물을 주고 청소를 하려면 수시로 케이지를 여닫아야 한다. 그래서 임시보호소 한쪽엔 늘 잠금장치인 케이블타이가 수북이 쌓여 있다. 나무젓가락을 케이지의 ‘잠금장치’로 사용하는 봉사자들의 아이디어는 여기서 출발했다. 케이블타이로 매듭을 만들고, 매듭 구멍 사이에 젓가락을 끼운다. 일종의 걸쇠다. 케이블타이를 일일이 자르지 않아도 문을 여닫을 수 있다. 자원봉사자 정인(활동명) 씨가 마침 화장실 모래를 쏟은 고양이의 케이지를 청소하고 있었다. “애들이 다 상처가 있어요. 하악질을 하거나 빠져나오려는 아이들도 있고요. 무리하진 않고 눈을 마주치고 달래면서 청소해요.” 자원봉사를 하게 된 이유를 묻자 정인 씨가 울컥했다. “제가 키우는 고양이도 길에서 구조된 아이였어요. 고양이들이 다 남 같지가 않고…. 자주 오가던 동네에 고양이들을 위해 애써주는 사람이 있는 걸 보고 시작했어요.”

활동가들과 봉사자들은 고양이를 보면 이름과 상태를 술술 이야기한다. “이 아이들은 남매가 같이 구조됐는데 절대 안 떨어지고 붙어 있어요. 아, 얘는 누가 무슨 말만 하면 먹어.(웃음)” 에스펜 씨가 말했다. 짙은 밤색 털이 빛나는 고양이는 사람이 다가가 말을 걸면 밥그릇으로 향한다. 다행히 곧 입양이 예정되어 있다.

오늘은 꼭 구조되기를
고양이 구조를 위해 해지기 전 김꼭빵 씨와 길을 나섰다. 준비물은 습식 캔과 신문지 몇 장, 통덫(포획틀). 바쁜 활동가들은 한 손에 여러 물건을 들고 분주히 움직이는 것이 익숙하다. 큰 길을 여러 차례 돌아 재개발지구로 들어섰다. 골목마다 자목련 등 봄꽃이 피어 있지만 안쪽엔 쓰레기 더미가 어지럽게 쌓여 있다. 어느 빈집에 들어서니 널브러진 못과 크고 작은 판자, 한쪽에 쌓인 공사 자재가 보였다. 고양이가 우는 소리가 들렸다. 활동가들은 아픈 고양이들이 걱정이다. “구내염이 있으면 입이 아파서 그루밍을 하지 못하죠. 털이 오랫동안 지저분했던 고양이들은 구내염을 앓고 있을 가능성이 높아요.” 구내염을 앓는 고양이들은 먹는 것이 고통스러워 음식을 삼키지 못한다. 굶어 죽는 경우가 허다하다.

다가구주택의 계단 위쪽을 둘러본 김꼭빵 씨가 마당 가운데에 통덫을 내려놓았다. 직사각형의 통덫 바닥에 신문지를 깐다. 먹이를 한 입 크기로 덜어 통덫 입구, 가운데, 가장 안쪽에 놓는다. “저희 사이에서 ‘절벽’이라고 부르는 곳이 있어요. 그 아래에서 고양이가 잘 구조돼요. 빈집이 많아서 고양이들이 거의 한 채씩 차지하고 지내요.(웃음)” 말하면서도 활동가는 구석구석을 살핀다. “늘 고민이에요. 어디에 놓아야 잘 올지.” 또다시 고양이 울음소리가 희미하게 들렸다. 폐허가 된 다가구주택 구석에서 지낼 고양이들이 오늘은 꼭 나와주길 바라며 김꼭빵 씨가 발길을 돌렸다.


황소연
사진 김화경
사진제공 이문냥이 프로젝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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