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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5 인터뷰

COOL KIDS & MAD CITY

2020.05.03 | 밴드 보수동쿨러

부산시 중구 보수동이 아니라 ‘보스턴 쿨러’와 더욱 연관이 깊은 밴드, 보수동쿨러. 멤버 정주리가 ‘보스턴 쿨러’라는 술 이름을 ‘보수동쿨러’로 잘못 들으면서부터 팀의 역사가 시작됐다. 단어가 주는 이질적인 느낌이 멤버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부산의 밴드’라고 자신들을 소개하지만, 보수동에 대해선 여전히 궁금증이 전혀 없고 보스턴 쿨러가 팀을 대표하는 술이 되었다는 사연도 재미있다. 3월 21일 서울 공연을 성공적으로 마친 보수동쿨러의 멤버 정주리(보컬·기타), 최운규(드럼), 구슬한(기타), 이상원(베이스)을 만났다.

* 공연장에서는 모든 관객을 대상으로 발열 검사를 실시하고, 마스크 착용과 손 소독을 의무화했다.


서울 공연을 끝낸 소감은. 분위기는 어땠나.
주리 이렇게 긴 세트리스트로 공연한 건 처음이다. 지난해 연말 이후 오랜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는데, 와주신 분들에게 감사하다.
슬한 합주할 때도 길이가 30분 정도 되면 힘들었다. 체력을 길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뒤풀이를 다음 날 아침 7시 30분까지 했다. (모두 웃음) 무척 즐거웠다.

이번 싱글 앨범 ‘We live in the Jurassic Park’를 《빅이슈》 독자들에게 소개해주기 바란다.
슬한 목욕할 때 들으면 좋은 곡이라고 생각한다. 신나면서도 자극적이지 않으니 편안하게 들어주시면 좋겠다.
운규 조깅할 때 들어도 좋을 것 같다. 배경음악처럼 자연스럽게 음악이 깔리면서 즐겁게 운동할 수 있다.

부산을 기반으로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 보수동쿨러의 결성 과정이 궁금하다.
주리 슬한과 나는 원래 아는 사이였다. 언젠가 밴드를 해보고 싶었는데, 음악 듣고, 공연 보러 다니고 하면서 슬쩍 이야기를 꺼냈다.(웃음) 주변에도 밴드를 하는 친구들이 있어서 자연스럽게 다른 멤버들을 만날 수 있었다.

‘너희는 다시 나 같은 사람을 만날 수는 없을 거야’라는 공연 제목도 그렇고, 포스터나 앨범 커버의 분위기가 유쾌하다. 콘셉트는 어떻게 정하나.
주리 영화를 아주 좋아하는데, 종종 구도나 미장센을 기억해두는 편이다. 보수동쿨러가 재정적으로 여유로운 편은 아니어서 DIY로 헤쳐 나가야 할 때가 있다. 이번 싱글 앨범 커버는 슬한의 아이디어였고, 이전 앨범의 커버는 이리저리 사진 찍으면서 우연히 얻은 것이 많다.

<목화>의 앨범 커버도 그렇게 탄생했나.(네 사람이 비닐봉투를 머리에 쓰고 길에 서 있다.)
주리 슬한이 살던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삼각대를 설치해놓고 찍었다. <목화>도 그렇고, “어, 여기 햇빛이 있다, 앉아보자. ”(웃음) 이렇게 즉흥적으로 나온 결과물이 많다.

이번 싱글 앨범 ‘We live in the Jurassic Park’의 테마가 공룡이다. 인스타그램에서 ‘공룡 그리기 대회’도 열었는데 공룡을 주제로 잡은 이유가 있나.
슬한 처음부터 공룡과 연관이 있던 건 아니고, 주리 누나 팬들이 서로를 장난스럽게 주리 바라기라는 의미로 ‘주라기’라고 부르는 경우가 있었다. 곡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서 운규 형이 ‘주라기공원’이 어떠냐고 제안했다.
주리 일상에서 벗어나 고민을 떨쳐버리고 싶은 이야기를 가사로 썼는데, ‘주라기’가 어떻게 보면 내 일상과 동떨어진 단어다. 제목으로 쓰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녹음실에서 귀신을 목격하기도 했다고.
상원 내가 봤다. 그런데 나는 귀신을 안 믿어서 사실 그날 목격한 것을 귀신으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럼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나.) 그냥 사람이 진짜 왔다고 생각했다. 녹음을 마치고 스튜디오에서 수정하는데 불투명한 유리를 통해 검은 실루엣이 녹음실 안쪽을 지켜보다가 나가는 걸 봤다. 누가 왔나 보다 싶어 문을 열었는데 아무도 없었다.

무섭진 않았나.
운규 보통 귀신을 보면 대박 난다고 하니까…. 우리는 귀신 아니어도 정황상 귀신이라고 하자고 했다.(모두 웃음) 전에도 이런 경험이 있었다. 제 3의 목소리 혹은 현장에 없던 멤버의 목소리가 녹음되거나 했다.

‘0308’이라는 곡을 통해 지난 3월 8일 세계 여성의 날에 앨범과 굿즈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했다. 이 곡의 배경을 조금 설명해줄 수 있나.
주리 슬한이가 전부터 곡에 책 읽는 느낌을 넣고 싶다고 했다. 가사에 잘 안 쓰는 말들을 곡에 툭 떨어뜨리면 묘하게 다른 느낌을 줄 것 같았다. 사람들은 여러 관계 속에서 부딪히면서 변화하는데, 이 과정이 삶에서 끝없이 이어진다고 생각했다. 결국 관념이 영원한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리고 만연한 혐오나 편견이 떠오르며 이런 것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제목을 고민하던 중에 운규가 ‘0308’이라는 제목을 제안했다. 제목도 3월 8일에 지었다.

음악 감상이나 연주를 제외한 네 사람의 취미가 궁금하다.
운규 게임을 즐기는데, 쉽게 질려서 다섯 개 정도를 번갈아 한다.
슬한 식물 키우는 걸 좋아한다. 알로카시아, 몬스테라 등을 키우고 있다. 바질도 키워서 먹어보려고 한다.
상원 <굿 플레이스>와 <기묘한 이야기>를 다시 정주행하고 있다. 보드 타는 걸 좋아한다.
주리 이따금 등산을 한다. 집 뒤에 황령산이 있는데, 거기 편백나무 숲이 있다. 가면 편안한 느낌이 든다.

‘보수동쿨러’라는 이름을 본 사람들은 부산의 동네를 떠올리게 마련이다. 도시라는 공간이 보수동쿨러에게 주는 영감이 있나.
슬한 여름이면 자주 광안리에 가서 수영을 하곤 했다. 이런 부분이 삶을 윤택하게 해주는 것 같다. 그런데 부산 하면 ‘바다’, 그러니까 ‘바다를 걷는 걸 촬영해보죠.’ 하는 식의 제안이 워낙 많아서.(웃음) 뻔하지 않은가 싶은데, 바다가 있는 공간이 내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
운규 도시에서 에너지와 활기를 많이 받는다. 바다의 영향이 없지 않다고 생각한다.
주리 저는 광안리 바로 앞에서 2년 살았는데, 바다에 한 번인가 갔다.(웃음) 활동하면서 숨어 있는 좋은 뮤지션들을 많이 만났다. 부산을 문화적으로 활발하게 만들고 싶은 욕심이 있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사라지는 팀이 많아서 아쉬운데, 그래서 우리는 더욱 ‘로컬’의 의미를 지키고 싶었다.

힙한 뮤지션이라는 평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슬한 한때 힙스터를 비난하는 게 추세가 아니었나. 남들은 소비하지 않지만 나만 아는…. ‘그런 예술적 욕구를 충족시켜주는 무언가가 우리한테 있군.’ 하는 생각이 들어서 좋다.
운규 슬한과 얼마 전에 나훈아 선생님이 하신 말씀을 읽었다. “진짜 슈퍼스타는 사람을 미치게 하는데, 그 지점에서 좋아하는 사람만큼 싫어하는 사람도 나온다.” 안티가 더 생기는 것도 괜찮지 않을까 싶다.(모두 웃음)
슬한 유튜브의 악플도 신경 써서 읽게 된다.
운규 슬한이가 악플을 즐겨 본다.
슬한 “아, 왜 악플이 없지? 왜 ‘좋아요’밖에 없지? 이러면 슈퍼스타가 될 수 없는데….” 하면서 (모두 웃음)
운규 사실 맹목적인 칭찬과 지지를 조금은 경계하고 있다. EP가 발매되고 리뷰를 많이 해주셨는데, 평가를 보면서 이런저런 기준이 있다는 걸 느낀다.

현재의 보수동쿨러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아티스트는.
슬한 넷이 좋아하는 뮤지션이 완전히 다르다.
상원 나는 보이 파블로와 톰 미쉬를 좋아한다.
슬한 원래 펑크 디스코를 좋아하는데, 요즘 빅티프라는 팀이 너무 좋다. 포크를 기반으로 멋진 음악을 하는 사람들이다.
운규 판테라나 메탈리카 같은 밴드의 음악을 좋아하는데, 영향은 많이 받았지만 연주 스타일은 정반대로 가려고 한다. 만약 작곡을 하게 된다면 일본 음악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그런 분위기의 곡을 쓰고 싶은 욕심이 있다.
주리 전에는 싱어송라이터 로라 말링이나 엘 세븐 같은 밴드의 음악을 좋아했다. 특히 1990년대 미국 페미니즘 펑크 밴드들의 움직임을 좋아했는데, 지금 보수동쿨러의 음악은 작곡을 하는 슬한이의 취향이 많이 반영되어 있다. 다양한 것 같으면서도 명확한 음악이 보수동쿨러의 색깔인 것 같다.
슬한 우리 팀의 장르를 물어보면 대답하기 곤란하다.
주리 전체로 모았을 때, 몇 가지 단어만으로 규정하기 쉽지 않은 스타일이다. 정규 앨범에서는 조금 정리될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는 그렇다.

최근 가장 주목하고 있는 아티스트나 문화 현상이 있다면.
슬한 최근 N번방 사건을 보면서 굉장히 화가 나 있다. 말세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게 가장 신경이 많이 쓰인다.
주리 요새 겨드랑이 털 기르기에 도전하고 있다. 그간 털은 잘못이 없다고 생각해왔는데, 스텔라 도넬리라는 뮤지션이 호주 잡지에서 겨드랑이 털이 보이는 사진을 찍었더라. 무척 위안이 됐다. 마음이 가벼워지는 경험을 했다.

5월에 미국 투어를 앞두고 있다. 어떤 기분으로 투어를 맞이할 예정인가.
주리 시간이 지날수록 걱정이 더 커진다. 멤버들이 모두 이 투어에 스케줄을 맞추어두었는데, 코로나 19 상황이 좋아지지 않아서 고민하고 있다. 가능하면 투어를 꼭 가고 싶다.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슬한 유유상종이라는 말을 참 좋아한다. 좋은 음악을 좋은 사람들이 알아본다고 생각한다.
운규 《빅이슈》의 지향점이 보수동쿨러와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인터뷰를 할 수 있게 되어 반갑다.
주리 모두 건강을 지키고, 흔들리는 일상을 잘 넘어섰으면 좋겠다. 보수동쿨러를 아껴주는 분들에게 감사하다.


황소연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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