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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5 인터뷰

가족이 될 수 없는 차별

2020.05.01 | '외롭지 않을 권리' 황두영 작가 인터뷰

<외롭지 않을 권리>는 2012년부터 2019년까지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며 생활동반자법 입법을 추진했던 황두영 작가가 생활동반자법이 우리 사회에 왜 필요한지를 써낸 책이다. 정책 전문가로서 한국의 가족 중심 문화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과 통찰력으로 개인 행복 추구의 보편성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결혼은 싫지만 가족은 있었으면 하는 상상은 누구나 해봤을 것이다. 결혼식과 혼인신고라는 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국가가 인정한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함께 살며 “오늘 하루 어땠어?”라며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는 그런 가족. 누구나 가족이 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하는 이들에게 이 책은 뜻밖의 위로가 될 것이다.


첫 책 펀딩에 사람들의 반응이 뜨거웠어요.
‘생활동반자법’이라는 혼자도, 결혼도 아닌 대안적인 제도에 대한 공감대가 생긴 것 같아요. 특히 1인 가구, 동거 커플뿐 아니라 결혼과 비혼에 대해 고민하는 사람들처럼, 현실적인 문제를 마주한 생활인들이 많이 호응해주셨어요.

가족을 이루는 건 누구나 살면서 겪는 과정이잖아요.
하지만 우리 법은 같이 살아가는 방법을 결혼에만 한정하고 있어요. 만약 배우자가 먼저 세상을 떠난다면 남은 인생을 혼자서 살아갈 수 있을까요? 오래 살수록 결혼의 테두리 바깥에서 사는 시간도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그럴 때 친밀한 사람과 자연스럽게 서로를 돌봐줄 수 있는 유연한 시민 결합 제도가 있다면 좋겠죠. 결혼 관계로만 해결할 수 없는 외로움의 공백을 채울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한 순간이 살면서 분명 생길 거예요.

생활동반자법이 꼭 필요하다고 느낀 계기가 있다면요.
처음엔 생활동반자법이 동거 커플이나 성소수자 커플에게 필요할 것이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볼수록 보편적인 복지 제도라고 생각하게 됐어요. 특히 노인과 관련된 빈곤, 독거 문제가 심각한 상황에서 그분들이 어떻게 하면 행복한 나날을 보낼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들었죠.

사람들에게 사회적 상상력을 주는 제도라는 의미죠.
생활동반자법은 결혼 생활이 자연스럽게 끝나더라도 안정적인 생활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죠. 최근 20년 새에 급격하게 증가하는 노인 1인 가구와 빈곤, 자살률을 보면 가족의 기능에 대해 더 근본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이걸 누군가 명쾌하게 설명해주면 좋겠는데 여태껏 아무도 하지 않아서 제가 본격적으로 시작했어요.(웃음)

생활동반자법을 사람들에게 설득하기 위한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요.
생활동반자법은 다수의 사람들을 배제하는 법이 아니에요. 제가 전문가로서 논리적으로 설명해도 누군가는 이 법이 동성 결혼의 전초가 될 것이라거나, 동거를 장려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허무맹랑한 프레임으로 공격하는 경우를 보아왔죠. 이러한 비논리적인 반대에 부딪혀 이 법을 사람들에게 제대로 설득할 기회를 갖지 못했던 게 안타까웠어요.

책을 읽으면서 참 친절하게 설명해준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불필요한 오해를 풀기 위해 원 없이 설명해보자는 마음이 담겨 있어요. 대안적인 가족제도를 향한 사람들의 관심은 많아지는 반면 정치권에선 사람들을 설득하는 데 노력이 부족했다는 반성도 들었고요. 제가 ‘생활동반자’라는 단어를 처음 쓴 사람이기도 하고 이 제도에 대해 누구보다 오래 고민해온 사람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있어요.

특히 ‘외로움’이라는 키워드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실제로 요즘 사람들이 너무 외롭기 때문이에요. 젊은 사람들이 결혼과 출산을 기피하는 것도 현대 가족의 구조적인 문제에서 나오는 것이잖아요. 정부에서는 저출산 문제 해결의 일환으로 동거에 대한 사회적 차별을 해소해야 한다는 것을 이미 인지하고 있어요. 다만 혼인과 출산을 장려하기 위해 동거 커플의 차별 해소보다 중요한 문제가 있다고 봐요. 우선 함께 사는 것의 즐거움과 새로운 사람들을 삶에 기꺼이 받아들이는 사회를 만들어야죠.

‘외로운 대한민국’이라는 표현이 인상 깊었어요.
우리나라는 가족 중심적인 사회인데 가족을 이루지 못했을 때 개인을 보호할 안전망이 부재해요. 즉, 가족을 이루지 못하는 데서 오는 차별이 크죠. 사회복지 시스템 자체가 가족 중심으로 이뤄져 있기 때문이에요. 물론 북유럽처럼 개인 중심의 복지 체제로 전환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동시에 가족의 범위 자체를 넓히는 것도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예컨대 밀레니얼 세대가 오늘날 가족에 기대하는 것이 1인분인데, 지금까지는 홈쇼핑 1+1 세트 상품같이 부담스럽게 여겨졌죠. 생활동반자법은 한국에서 가족의 의미를 좀 더 가볍게 하는 데 도움이 될 거예요.

‘함께 사는 즐거움’에
너무 많은 사회경제적 비용이
드는 것이 현실

밥 한 끼 집에서 차려 먹기엔
많은 돈이 들고
배달 음식을 시키면
항상 남는 것처럼

이토록 결혼 중심의 가족 문화가 견고하게 유지되어온 까닭은 무엇일까요.
우리나라는 지난 반세기 동안 급격하게 경제적으로 성장했죠. 이 과정에서 개인의 삶을 충분히 보듬지 못하고 뭐랄까 좀 도박적이라고 표현해야 할까요. 생존을 위해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하는 사회였죠. 개인은 때로 생존 단위를 넘어 가정을 일으켜 세워야 하는 희생을 감수하기도 하고요. 마치 가족이 기업처럼 성공해야만 하는. 가족이 함께 누리며 사는 게 아니라 성과를 남겨야 하는 조직처럼 되어버린 측면이 있죠. 그게 경제성장기에서는 시도할 만했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어요. 예전처럼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집을 사는 것조차 쉽지 않죠. 그래서 사람들은 점점 가족을 이루지 않으려고 하고요. 근본적으로 가족의 기능은 무엇인지를 상기해야 해요. 생활동반자법은 같이 사는 즐거움을 가족의 핵심으로 보는 제도죠.

책을 읽어보면 특유의 자신감이 엿보여요.
편견을 한 꺼풀 벗기면 생활동반자법이 사람들에게 필요하다는 것이 명확하기 때문이에요. 정부도 결혼과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지만 뚜렷한 효과를 보지 못했어요. 그래서 언젠가 멀지 않은 미래에 가족의 틀 자체를 고민할 것이라고 봐요. 생활동반자법의 모티프가 된 프랑스의 PACS(시민연대계약) 제도도 혼인 제도 외에 다양한 가족을 보호하면서 자연스럽게 저출산 문제를 해결했어요. 우리나라에선 생활동반자라는 개념이 얼마나 더 합리적일지 사람들이 판단해주길 희망해요.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의 생각이나 반응은 어때요.
꽂히는 포인트가 다 다르다는 점이 신기했어요. 여성, 노인, 장애인, 성소수자 등 당사자들이 공감하며 만족스러워하셔서 좋아요. 어떤 독자들은 더 급진적인 대안을 기대할 수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은 ‘불닭볶음면’처럼 화끈한 맛보다는 조금 더 부드러운 맛이라고 할까요. 이상적인 면보다 제도적인 측면에서 설명하고자 했어요. 이 법을 필요로 하는 다양한 당사자들에게 이슈를 던지면서 폭넓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했죠. 앞으로 많은 사람들이 함께 책을 읽고 다양한 장소에서 토론을 하면 좋겠어요. 지금은 사회적 거리두기의 시기지만 꾸준히 독자들을 많이 만나고 싶어요.

황두영 작가에게 생활동반자란 무엇인가요.
성인이 된 이후엔 주로 혼자 조용히 살았어요. 사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요.(웃음) 사람에게 의지하는 스타일은 아닌 것 같아요. 같이 살기 위해서는 애정보다 현실적인 조건이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편이랄까요. 그래서 이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저 역시도 대안을 찾는 과정이라고 생각해요.

정작 글쓴이는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니 예상외네요.
제가 워낙 워커홀릭이라서요. 요즘은 코로나 19 때문에 못 하지만 영화관에서 혼자 스크린을 마주할 때 행복감을 느껴요.

최선을 다해 행복해지고 싶기에 이 책을 썼다는 말이 인상 깊어요.
제 주변의 결혼 적령기를 맞은 사람들을 지켜보면서 결혼이라는 게 썩 유쾌한 선택은 아닌 것 같았어요. 결혼이든 비혼이든 당시에 내릴 선택들이 최대의 행복을 보장한다는 느낌이 아니었죠. 새로운 제도를 통해 사람들이 큰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 저 역시 어떤 가족을 꾸려야 가장 행복할지 고민하는 것처럼요.

국회의원 보좌관으로 일하다가 작가가 되기까지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요.
퇴사하기까지 오래 고민했어요. 현실적으로 걱정은 되지만 정해진 답은 없으니까요. 그럼 뭘 해도 상관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최소한 좋은 책을 쓸 자신은 있었어요. 지인이 생활동반자법 책을 쓸 사람은 한국에 저뿐이라고 격려해준 게 기억에 남아요. 돈을 많이 버는 성공한 작가는 못 되어도 의미는 있겠다고 판단했어요. 이제 생활동반자법과 이 책의 운명은 여러분 손에 달려 있어요.

요즘은 평소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매일 알라딘, YES24 같은 온라인 서점에서 도서 세일즈 포인트를 확인하고 일희일비해요.(웃음) 시사 주간지 <시사IN>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고, 또 80년대생 셋이 모여서 정치 교양 팟캐스트 ‘미운정치새끼’를 준비하고 있어요. 정치 관련 콘텐츠가 난립하는 상황이잖아요. 때론 가짜 뉴스의 선을 넘나드는 상황도 연출되고요. 정치를 어떤 음모나 우스운 소재가 아닌 균형 있는 시각으로 이해하고자 하는 이들을 위한 콘텐츠를 준비하고 있어요. 언젠가 우리 정치가 사랑스러워질 때까지요.

이번에 새롭게 구성된 국회에서 희망을 걸어볼 수 있을까요.
생활동반자법이 법제화가 될 수 되도록 저 역시 안팎으로 노력해야죠. 사람들의 외로움이 단순한 감정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인 한계치에 다다랐다고 생각해요. 사람들의 미래가 달린 문제이기 때문에 천문학적인 예산을 쏟아부어도 해결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면 변화의 모멘텀이 필요한 게 당연하죠. 앞으로 가족을 어떻게 만들지 우리 사회의 화두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스스로 생각하는 이상적인 가족의 조건이 있다면요.
매 순간이 내게 최선의 선택이기 때문에 유지되는 가족이요. 스스로에게 언제든 되물었을 때 지금이 좋다고 할 수 있는 상태요. 어쩔 수 없이 사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질문할 수 있는 존재가 되길 바라요.

끝으로 미래의 독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요.
소개팅, 동호회처럼 평소 우리는 외로움을 해소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해요. 그런 와중에 가끔은 정치적인 노력이 필요할 수도 있어요. 외로운 건 당신 잘못이 아니라 정치의 잘못일 수도 있으니까요.

‘생활동반자’는 두 성인이 합의하에 함께 살며 서로 돌보자고 약속한 관계다. ‘생활동반자법’은 생활동반자 관계를 맺은 사람이 국가에 이를 등록하면 함께 살아가는 데 필요한 사회복지 혜택 등의 권리를 보장하고 둘 사이의 분쟁을 합리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정규환
사진제공 <시사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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