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태구에게 지난 2024년은 ‘처음’으로 가득한 해였다. 연기를 18년이나 했음에도 여전히 그에게는 처음인 것 투성이다. 그만의 압도적인 저음으로 〈밀정〉, 〈낙원의 밤〉, 〈구해줘 2〉에 이르기까지 강렬한 연기를 보여온 엄태구는 〈놀아주는 여자〉로 첫 로맨틱 코미디에 도전했다. 그간 누아르로 깊은 인상을 남긴 그이기에 ‘엄태구가 로코를?’과 같은 반응이 뒤따랐지만, 질투에 눈이 멀어 “애기야 가자.”를 외치는 엄태구의 사랑스러운 변신은 의심을 확신으로 바꾸기에 충분했다. 강렬한 이미지 뒤로 수줍음을 숨기고 있는 그에게 처음은 늘 어렵다. 말이 없고 극내성적인 것으로 유명해 그가 예능에 출연하면 그 마가 뜨는 특유의 어색한 분위기가 도리어 신선함을 주기도 했다. 말수가 없기로 명성이 자자한 그이지만 빅이슈와의 첫 만남에서는 조금 달랐다. 마침 첫눈이 내렸던 날, 화보와 인터뷰는 할 때마다 설렘과 긴장이 공존한다고 말하던 엄태구는 조금 들뜬 듯 하늘을 올려다보며 슬쩍 웃었다.

빅이슈와 엄태구의 첫 만남인데, 마침 첫눈이 내렸어요.
분명 오는 길에 눈이 내리는 걸 봤는데, 촬영하느라 잊고 있었거든요. 카메라에 집중하다가 작가님께서 “위쪽 한번 볼게요.” 하시길래 위를 봤는데 창밖으로 눈이 펑펑 내리는 게 보이더라고요. 순간 저도 모르게 놀란 표정이 나왔어요. 그 표정이 담긴 컷이 쓰일지는 모르겠지만, 첫눈 하니까 그 생각이 가장 먼저 났어요. 눈 내리는 걸 보면서 촬영한 건 처음인 것 같네요.
평소 수줍음이 많은 성격으로 잘 알려져 있잖아요. 온종일 한마디도 안 한 적이 있을 정도라고 들었는데, 오늘은 어땠어요?
제가 한창 집에만 있던 때가 있었는데, 그때 그런 말을 했나 봐요.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으면 말을 할 일이 없잖아요. 그런 날은 정말 한마디도 안 하기도 하죠. 그래도 오늘처럼 촬영이 있거나 누군가를 만나면 한마디도 안 할 일은 없지 않을까요? 낯선 곳에 가면 수줍음이 많아지긴 하지만, 적어도 “안녕하세요.”, “감사합니다.” 같은 인사말 정도는 하니까요.(웃음)
지난해는 유독 엄태구에게 ‘처음’이 많은 해이지 않았나 싶어요. 데뷔 17년 만에 처음으로 인스타그램 계정을 만들고, 첫 팬 미팅도 하고, 첫 로코 연기에도 도전했잖아요.
제가 한꺼번에 일을 많이 벌이는 성격은 아니거든요. 그런데 팬분들께 너무 많은 사랑을 받다 보니까 ‘내가 받은 사랑을 어떻게 돌려드리지?’ 이런 생각을 자꾸 하게 되더라고요. 이런 건 어떨까, 저런 건 어떨까 고민하다가 인스타그램을 시작했고, 첫 팬 미팅도 열게 된 거예요. 마침 시기나 상황도 잘 맞아떨어져서 가능했던 일이죠. 늘 감사한 마음입니다.
뭔가를 처음 시작할 때 설레기보다는 긴장하는 편이에요?
음, 좀 복합적인 것 같아요. 두 감정이 항상 공존하긴 하는데, 무슨 일이냐에 따라서 긴장감이 크게 느껴질 때도 있고 설레는 감정이 더 클 때도 있고. 그때그때 다른 것 같습니다.(웃음)
빅이슈와의 첫 만남은 어땠나요. 설렘과 긴장 중 어떤 쪽이 더 커요?
반반인 것 같습니다. 보통 화보 촬영을 하면 설렘이 크거든요. 근데 오늘은 유독 긴장이 많이 됐어요.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는데, 아까 화보 촬영 끝나고 메이킹 인터뷰 영상을 촬영하는데 순간 너무 긴장되더라고요.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이 안 날 정도로.
인스타그램 첫 게시 글은 반려견 엄지가 장식했어요. 계정주 셀카보다 엄지 사진이 더 많은 것 같던데요?
셀카 찍는 걸 별로 안 좋아해서요. (왜요?) 셀카 찍겠다고 포즈를 취하는 제 모습도 좀 그렇고, 셀카가 잘 나오기라도 하면 좋아할 텐데 그렇게 잘 나오는 것도 아닌 것 같고….(웃음)
인스타그램을 둘러보다 보니 문득 엄태구의 휴대전화 갤러리가 궁금해지더라고요.
엄지가 아기일 때부터 지금까지 성장 과정이 다 담겨 있으니까 엄지 사진이 가장 많겠네요. 최근에는 일 관련된 게 좀 많은 것 같아요. 제가 사진을 많이 찍지는 않는 편인데, 인스타그램을 시작하고 나서부터 어떤 사진을 보면 ‘나도 저런 사진을 업로드하면 좋으려나?’ 이런 생각이 들긴 하더라고요. 셀카를 업로드해야 하나 싶어서 찍어본 적도 있는데 역시나 셀카는… 좀 어려운 것 같습니다.(웃음)

첫 팬 미팅에서 실시간으로 심박수를 체크하는 모습이 화제가 됐었잖아요. 등장할 때는 심박수가 141까지 치솟았다던데.
정확히 기억나요. 문을 여는 순간 들려오는 팬분들 함성에 머리가 띵해지고 쥐가 난 듯했어요. 살면서 그런 경험은 처음이어서 많이 당황했었죠. 이걸 어떻게 표현을 해야 할지 정확한 단어가 안 떠오르는데, 찌릿찌릿? 꼭 전기 충격이라도 받은 느낌이었어요. 팬 미팅 전에 ‘문을 열고, 계단을 내려가면 대충 이런 느낌이겠지?’ 저 혼자 상상해보기도 했었는데 상상과는 전혀 다른, 감히 상상할 수 없는 그런 느낌이었어요. 예전에 한 인터뷰에서 ‘구체적인 감사’라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팬분들께 감사한 마음은 늘 가지고 있는데 이걸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어서요. 고민하다 구체적인 감사라는 표현을 썼었는데 이번 팬 미팅 때 그 감정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팬분들이 저를 어떤 눈빛으로 바라봐주시는지 두 눈으로 확인한 순간에 특히.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것들도 있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여전히 카톡을 사용하지 않는다든지.(웃음)
여전히 카톡은 사용하지 않고, 제 일상도 전과 크게 달라진 건 없는 것 같아요. 좀 달라진 거라면 운동하는 시간이 길어졌어요. 30대 때는 아파서 운동을 많이 못 했거든요. 그래서 지금 배로 열심히 하는 중입니다.(웃음)
항상 연기 외의 취미를 물어보면 운동이라고 답하던데, 그 외에 빠져 있는 건 없어요?
예전에는 쉴 때 집에만 있었는데 운동을 하려면 일단 집을 나서야 하니까 전보다 외출을 자주 하게 되죠. 또 헬스장까지 가려면 운전을 해야 하니까 운전하는 시간이 길어지고…. 너무 사소한가요.(웃음) 아, 하나 있다. 제가 방송에서 추어탕을 자주 먹는다고 말한 적이 있는데, 부모님이 그걸 보고 걱정되셨는지 하루는 통화하다 말고 진지하게 말씀하시더라고요. 건강 생각해서 추어탕만 먹지 말고 다른 것도 좀 먹고 그랬으면 좋겠다고. 그래서 요즘은 일부러 여기저기 다녀보고 있어요. (요즘 꽂힌 음식이 있어요?) 그 이후로 김치찌개집을 좀 자주 갔는데, 김치찌개에 라면 사리를 추가해 먹으면 그렇게 맛있더라고요. 부모님께서 건강을 생각하라고 하셨는데, 건강과는 거리가 멀지만.(웃음) 당분간은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국물 요리를 좋아하나 봐요. 순댓국도 좋아해요?
개인적으로 국물에 들어간 순대는 별로예요. (아쉽네요. 순댓국 맛집 추천해드리려 했는데.) 제가 순댓국을 안 좋아해서…. 순대는 따로 먹어야 맛있어요. 분식집 순대처럼.(웃음)
좋아하는 음식 얘기를 하니 긴장이 풀린 것 같은데, 조금 진지한 얘기를 해볼까 봐요.(웃음) 〈놀아주는 여자〉로 첫 로코 연기에 도전하기도 했잖아요. 단편영화 〈시시콜콜한 이야기〉에서도 로맨스 연기를 보여준 적은 있지만, 긴 호흡의 로맨스는 처음이었는데 어땠어요?
촬영 기간이 8개월 정도로 꽤 길었거든요. 이렇게 긴 호흡의 작품은 처음이라 촬영 내내 도전하는 기분이었어요. 제가 로코 경험이 많지 않다 보니까 모든 부분에 있어서 초보에 가까워서 힘든 점이 많았죠. 로코는 특히 남녀 주인공의 비중이 큰 장르다 보니 대사량이 많은데, 16부작 동안 이렇게 많은 대사를 소화한 게 처음이라 더 쉽지 않았던 것 같아요. 사실 이렇게 많은 사랑을 주실 줄은 몰라서, 힘들었던 만큼 감사함도 큽니다.
본 인터뷰는 첫 만남은 어려워, 배우 엄태구 (2)에서 이어집니다.
글. 김윤지 | 사진. 김영배 | 헤어. 김선애 | 메이크업. 김모란 | 스타일리스트. 정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