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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1 빅이슈

홈리스 여성 이야기 - 우리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

2025.03.07

한 해가 저무는 이맘때가 되면 사회복지 기관들은 이용인들이 서비스에 만족하는지 조사를 한다. 조사 결과는 다음 해 사업을 계획하는 데 기초 데이터가 되곤 한다. 이용인들이 원하는 게 뭔지, 어떤 것이 도움이 되고 있는지를 알면 어떤 점을 개선할지, 뭘 더 해야 할지를 찾아가기가 수월하다,

내가 일하는 여성일시 보호시설에서도 연말이 되면 여러 질문으로 여성 홈리스 이용인들의 의견을 구한다. 객관식 질문을 주고 ‘매우 만족한다’부터 ‘매우 불만족한다’까지 5점 척도로 하나를 고르게 한다. 그리고 점수만으로는 왜 그러한지 알기가 어려운 것도 있어서 주관식 답변 칸을 둔다. 시설에 바라는 것, 시설에서 지낼 때 힘든 점은 단골 질문이다. 그에 대한 단골 답변 중 하나가 “방이 비좁아요”, “제발 이러이러한 사람과 방을 따로 쓰게 해주세요” 같은 시설의 환경에 대한 것이다. 이러이러한 이유는 다양하다. 혼잣말을 하는 사람일 때도 있고 잘 씻지 않아 냄새가 나는 사람일 경우도 있고, 문을 쾅쾅 닫고 다니며 잘 시간이 돼도 시끄럽게 구는 사람일 때도, 모두 불을 끄고 누웠는데 휴대전화를 본다며 불빛이 새어 나오게 하는 사람일 수도 있다.

홈리스 시설의 면적 기준

시설 이용인들이 거주 환경에서 느끼는 불만은 시설의 주요 민원이 된다. 이용인 민원을 처리한 고충처리 대장을 살펴봐도 아주 일상적으로 여럿이 함께 밀집해서 지내기 때문에 느끼는 애로를 호소하는 내용들로 꽉 차 있다. 잠을 자고 있는데 누가 발로 내 발을 밀쳤다, 화장실을 간다며 내 머리 위로 넘어갔다 등 별도의 방이 있거나 최소한의 적정 공간을 점유하고 있으면 덜 느꼈을 법한 안타까운 고충들. 시설의 환경을 개선해야 해결될 수 있는 것들, 이용인들의 배려심과 이해에 기대기만 해서는 해결이 어려운 그런 고충들이다.

사람이 거주하는 곳은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는 법이다. 그중 하나는 사람이 거주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면적일 것이다. 우리나라는 ‘주거기본법’으로 ‘최저주거 기준’을 설정하고 있다. 이에 따르면, 가구 구성원별 최저주거 면적은 1인 가구의 경우 14㎡이다, 약 4평 정도. 1인이 개별 주택에 살 때 최저주거 기준이 있듯이 공동생활을 하는 복지시설들도 시설을 설치할 때 충족해야 할 면적 기준을 두고 있다. ‘노숙인복지법’은 홈리스를 위한 생활 시설의 경우에 한 명의 홈리스가 머무는 거실은 최소 1평 이상이 되어야 하는 규정을 두고 있다.

1평. 한 사람이 사용하는 방의 면적이니 누군가는 홈리스에게 그만큼의 거실을 제공하면 괜찮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고, 또 누군가는 최소한의 인간다움을 유지하기에 부족하다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 판단은 차치하고라도 현재 홈리스 생활 시설의 면적 기준은 노인이나 장애인을 위한 시설의 면적 기준에 비해서 좁다. 다른 복지 분야보다도 홈리스에게 허용하는 최저주거 기준이 훨씬 열악한 셈이다. 그나마도 일시보호시설은 한 명의 홈리스에게 반드시 부여해야 할 거실 면적 기준 자체가 없다. 일시보호시설은 긴급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어서 그저 누워 있을 곳만 있어도 되지 않나 하는 판단이 깔려 있다. 홈리스 시설에서 개인에게 보장된 최저면적 기준이 이토록 열악하니 시설에서 사생활이 가능한 개별 공간을 바란다는 것은 더 꿈같은 상황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사적인 공간

주거가 불안정한 홈리스 여성들에게 나만의 공간에 대한 욕구는 늘 뜨겁다. 오죽하면 내가 있는 일시보호시설에서는 애초 잠자리가 아닌데 유독 이용인 잠자리로 인기가 있는 공간들이 있다. 세탁기 두 대가 놓여 있는 구석 자리, 싱크대 앞 좁은 공간, 현관 신발장 옆의 공간 같은 데 딱 한 사람이 누울 수 있는,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혼자 있을 수 있는 아늑한 공간이다. 사람이 없을 땐 빨래 건조대 하나가 놓여 있곤 하는 곳인데, 빨래 건조대는 자주 접혀 있고 이부자리가 깔려 있곤 한다.

몇 년 전부터 일시보호시설들은 칸막이를 설치해 개별 잠자리를 제공하는 곳이 늘어나고 있다. 이미 훨씬 전부터 일시보호시설도 홈리스 1인당 최저면적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는 의견, 또 사생활 보장이라는 인권적 관점에서 개별 사용이 가능한 공간으로 재구성해야 한다는 문제 제기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긴급 잠자리를 제공하는 일시보호시설에서 방 하나를 따로 준다는 것을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다 칸막이를 하여 침대 하나 정도의 공간은 보장해주기 시작한 것이다. 코로나19의 영향이 컸다. 밀집한 환경이 감염 예방에 취약하다는 것을 몸소 체험하면서 개별 공간의 필요성이 공감을 얻었다.

내가 있는 시설은 올해 말에야 개별 공간을 구분해주는 가벽을 설치했다. 다세대주택을 시설로 사용하고 있어서 사실 가벽을 세울 만한 면적이 되지 않아 고민이 컸다. 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남남끼리 얼굴을 맞대고 자야 하는 불편은 없애주는 게 옳다 싶어 무리를 해 공사했다. 방 하나에 벽이 한 개, 두 개씩 세워졌으니 너무 답답하지 않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옷을 갈아입을 때도 좋고 다른 사람 신경을 덜 쓸 수 있다고 한다.

최근에 일시보호시설의 잠자리 이용을 끝낸 한 선생님은 아주 밝은 표정으로 홈리스 생활 시설로 떠났다. 오래전에 결혼을 하며 한국에 온 다문화 여성이다. 이름도 한국인 이름으로 바꾸고 한국 국적도 취득했지만 남편과는 헤어졌다. 가정폭력 때문이었다고 했다. 이혼 이후 자리를 잡지 못하고 아는 목사님의 도움을 받아 더부살이를 하다 여의치 않으면 시설에서 살기도 했다고 한다. 그녀는 여전히 한국말이 서투르다. 시설 규정을 설명하거나 할 때는 긴장을 해서인지 갑자기 더 알아듣지 못할 때도 있었다. 그렇게 말이 서툰 형편인데도 시설에서 틈이 나면 성경책을 읽었다. 그녀의 소망은 남들 신경 쓰지 않고 조용히 성경책을 펼쳐두고 읽는 자유를 누리는 것이었다.

홈리스 생활 시설은 가족 단위 홈리스를 보호하는 곳이 아닌 다음에야 개별 방을 주는 곳이 없다. 그래서 개별 공간을 원했던 그녀가 갈 시설이 마땅히 없었다. 그런데 운이 좋은 것인지 가족 홈리스를 위한 시설에 빈방이 생겨 입소할 수 있게 되었다. 개별 방을 준다는 조건에 하루라도 빨리 가고 싶다고 했던 그녀는 그곳의 생활환경이 꽤 만족스러운 모양이다. 그 시설 실무자가 소식을 전해왔다. 한 선생님의 표정도 밝아지고 의욕도 넘친다고. 가서 얼마 되지 않아 시설에서 소개한 일을 하겠다고 나섰다며.

문을 닫으면 나만의 우주가 될 수 있는 공간은 누구에게나, 아무리 가난한 홈리스일지라도 필요한 법이다.


글. 김진미

여성 홈리스 일시보호시설 ‘디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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