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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31 인터뷰

INTERVIEW - 불편의 품앗이

2025.03.10

〈불온한 공익〉 류하경 변호사

노동조합이 안전하게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며 시위를 한다. 장애인이동권을 위해 출퇴근 시간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가 투쟁을 한다. 어떤 이는 이러한 시위를 공익 활동으로 볼 것이고 누군가는 사적인 주장을 위해 공공 질서를 불편하게 한다 여길 것이다. 거리의 노점상이나 철거민의 투쟁 역시 누구에게는 공적 활동으로, 또 다른 이에게는 사적 이익을 위한 떼쓰기로 읽힐 것이다. 사회적 약자의 입장에서 경비 노동자 갑질 사건, 스쿨미투 정보공개 청구 등의 법률 대리를 맡아왔던 류하경 변호사의 〈불온한 공익〉(류하경 지음, 한겨레출판사, 2024)은 이처럼 입장에 따라 다르게 읽힐 수 있는 사회적 이슈에 대해 다각도로 살펴보며 공익의 의미에 대해 묻는 책이다.

서울 관악구의 ‘밝은책방’ 안에는 김소리·류하경 변호사의 사무실이 함께 있다. 책방 주인 중 한 사람인 류하경 변호사는 〈불온한 공익〉에서 ‘공익으로 불리는 사익 추구 행위’를 말하며 사회적 존재들이 어떤 법적 다툼을 벌여왔는지를 기록한다. 서점 안에 업무 공간이 있지만 류 변호사가 이곳에서만 일하는 건 아니다. 그는 “변호사 자격증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대학생 시절 청소 노동자들에게 노동조합 설립을 설득하며 했다는 “각자는 일대일이라 영원히 진다.”는 말이 겹쳐졌다. 그 말이 약한 사람이 일대일로, 외롭게 싸우게 두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들렸다.

이야기를 나누며 그가 약한 존재에 대한 관심사를 확장하기 위해서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고도 생각했다. 혼자만 볼 수 있게 꾸준히 써온 일기와 글들이 모여 〈불온한 공익〉이 되었다. 숨겨진 글에는 어떤 새로운 수단과 방법이 있을지 궁금해진다.


류하경 변호사

변호사들에게도 지난해 12월 3일부터의 시간이 빠르게 흘렀을 텐데. 요즘의 업무와 일상은 어떤가.

집회에 열심히 다녔고, 진보 3당(노동당, 녹색당, 정의당)을 대리해 내란범들에 대한 고소고발장을 작성하고 접수했다. 동시에 담당한 사건도 병행하고. 그렇게 훌쩍 지나가버렸다. 처음에는 가짜뉴스인 줄 알았다. 요새 이상한 언론도 많지 않나. 국회 앞을 경찰들이 막고, 무장한 군인들이 창문을 깨고 들어가는 걸 보고 바로 여의도로 갔다. 비현실적이었고, 꿈꾸는 것 같았다.

〈불온한 공익〉이 첫 책이다. ‘밝은책방’을 운영하기도 하는데, 내가 쓴 책을 책방에 진열하는 마음은 어떤가.

부끄럽다. 다들 아는 내용을 그럴싸해 보이게 책으로 엮어냈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한겨레출판에서 제안이 왔을 때 세 번 거절했다. 높은 가치를 가진 글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계속 설득하셔서 “안 팔리는 건 내가 책임 못 진다.”고 말씀드렸다.(웃음) 누구나 자기 삶에서 일어났던 일들을 책으로 하나 가지고 있다는 것은 좋은 의미라는 생각도 들었다.

변호사로서 현재 주목하고 있는 법적, 사회적 이슈는?

아무래도 내란죄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일이 2024년 대한민국에서 일어났다는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싶었다. 어느 정도 수위로, 어느 범위까지 처벌 대상을 넓혀야 하는지와 함께 87년 체제라고 부르는 현재 헌법 체제에서도 내란이 발생했다는 사실에 대한 고민도 있었다. 헌법은 하나의 방향을 가리키는 화살표이기 때문에, 절차적 민주주의를 한 단계 넘어 질적인, 일상적인 민주주의를 향해 가야 하는 것 아닌가 생각했다. 변호사 동료들과도 집회에서 개헌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오랜 시간 노동 전문 변호사로 일해왔다. 변호사 생활을 시작했을 당시와 현재 가장 크게 느끼는 노동 현장의 변화는?

일단 비정규직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 플랫폼 노동자, 특수고용 노동자처럼 불안정한 노동과 다양한 형태의 비정규직이 계속 생겨난다. 중간에 끼는 업체들도 용역, 위탁, 위촉, 프리랜서 등 특이한 형태가 많다. 모양은 다양해지고 명칭은 좀 세련되어졌는데, 결국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중간 착취다. 실제 노동하는 사람들에게 일을 소개해준다는, 또는 일을 구할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해준다는 명목으로 너무 많이 가져간다. 조금만 가져가면 모르겠는데 10% 정도는 굉장히 높다. 0.1~0.2% 정도가 적당하다고 본다.

특히 방문하는 분들은 노동조합이 없는 경우가 많다. 작은 규모의 보부상 같은 노동자가 점점 많아지는 추세다. 2010년대 초반에 상담했을 때는 노동조합이 있는, 혹은 직접 고용이 되어 있는 노동자들이 좀 있었는데 이제는 비노조, 불안정 노동을 하는 이들이 어려움을 많이 호소한다.

책에서도 밝혔듯 변호사가 된 후에도 로스쿨의 제도적 문제에 대해 꾸준히 문제 제기를 한다. 그 문제의식이 이어진 동력은 뭘까. 합격하고 생업을 이어가면 관심이 줄어들 수 있지 않나.

문제의식을 가지는 게 당연하고 망각하는 게 특이하다고 생각한다. (가장 먼저 해결되어야 하는 로스쿨 제도상 문제점은?) 단 하나이기도 하고 전부이기도 하다. 변호사 시험을 상대평가가 아니라 자격시험으로 진행하면 된다. 어느 해에는 합격률이 100%가 될 수 있고 어느 해에는 0%가 될 수도 있다. 상대평가의 경우 같은 점수를 받더라도 커트라인이 계속 올라가니까 누적 인원이 쌓일수록 응시 인원이 늘어난다. 뽑는 인원은 계속 1,500명이니까 경쟁률이 더욱 심해진다.

책에도 언급됐지만, 연세대학교 청소 노동자들의 쟁의행위를 고소한 학생들의 사례를 보면서 공정과 법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됐다.

공정의 의미는 상황에 따라 차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어떤 사안에선 내가 전혀 불편하지 않아야 공정일 수도 있다. 그런데 요즘은 공정이라는 보편적인 개념을 ‘모든 사안에서 내가 조금도 불편하지 않아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이들이 많은 것 같다. 청소 노동자들이 파업하고 집회하면 캠퍼스가 조금 혼란스러워질 거다. 안 할 때보다 어수선하고. 그럼 참아야 하는 거다. 그런 걸 전부 ‘공정하지 않다’고 표현하니까 용어가 오염되는 느낌이다. 같은 공동체 구성원으로서 더 큰 의미의 공정을 생각해야 하지 않나.

법원이 판결문에서 쟁의행위에 대해 ‘수인한도 범위 내에서는 인내가 필요한 점’이라고 명시한 게 인상적이었다.

수인한도라는 법리는 아주 오래전부터 있었다. 여러 사람이 같이 살다 보면 불편할 수밖에 없지 않나. 국가라는 게 그렇다. 공통된 재화를 같이 나눠서 쓰게 된다. 특히 집회 시위의 경우에 어느 데시벨까지는 괜찮다는 게 법률에도 나와 있고, 우리 법원에서도 집회, 시위라는 게 원래 그렇다고, 차 막히게 하는 거라고 한다. 유형력을 행사해서 공동체와 불특정 다수를 불편하게 함으로써 내 요구를 관철하는 게 시위의 본질이라고 설명하는 거다. 근데 우리는 보수적인 법원만큼의 판단 기준도 못 따라가고 있다. 차 조금도 막히면 안 되고, 시끄러우니까 안 되고. 법원에서도 인정 안 해주는 아주 이기적인 논리에 불과하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도 직장 다니는 노동자일 개연성이 상당히 높다. 아니더라도 살다가 억울한 일을 당하면 집회, 시위를 할 수 있다. 내가 지금까지 참아주었던 그 사람들이 또 나를 참아주는 사람이 된다. ‘불편함의 품앗이’라고 생각해야 한다.

활동 반경이 다양하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에서 동료들과 뜻을 모으고, 투쟁, 집회 현장에서 연대하고, 법정과 책방도 오간다. 다양한 공간과 사람들을 경험한 것이 남긴 건 뭘까?

초등학교 1학년 때 쉬는 시간에 축구를 하고 나면, 집에 와버렸다. 수업 시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어느 날은 쉬는 시간에 친구들이랑 이야기하다가 나만 제자리에 안 돌아가고 그랬다. 한번은 ‘학교에 하경이가 안 온다.’는 얘기를 들은 엄마가 등굣길의 나를 쫓아간 적이 있다. 어떻게 하나 보니까, 가게 창문마다 붙어서 구경을 하더란다. 그런 기질이 아직 남아 있는 것 아닌가 싶다.

활동 범위나 사는 방식에 대한 제약, 스테레오 타입을 안 가지는 편이다. 일할 때도 ‘변호사가 왜 집회 시위 쟁점에 대해 법원에서만 다퉈야 하지?’ 싶다. 현장에 가서 경찰을 제지해야 집회가 정상적으로 진행되는데 말이다. 집회 시위는 시점이 굉장히 중요하다. 때를 놓치면 법원에서 아무리 다투어봐야 돈 몇 푼으로 손해배상 받는 거 말고는 본래 목적을 이룰 수가 없다. 그래서 현장에 가서 경찰과 싸우기도 한다. 다른 변호사들이 볼 때는 격이 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지만. 그래서 피고인이 된 적도 있고, 형사재판을 3심까지 받았다.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할 수 있는 일이 있으면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편이다.

부당한 일을 당했을 때 ‘법은 과연 내 편일까?’ 의문을 가진 사람들도 많다. 어떤 마음가짐으로 법과 변호사 사무실의 문을 두드리면 좋을까.

교통사고가 나면 일단 119에 전화해서 병원으로 가지 않나. 몸이나 건강과 신체에 생긴 변화에는 누구나 대처하는 방식이 똑같다. 근데 인간과 사회에 의해서 일어나는 질병에 대해선 혼자 잘잘못을 따지는 경우가 잦다. 법률적으로 발생하는 사고는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인간과 사회구조 때문에 피해를 보거나 내가 가해를 하는 일일 거다. 그럴 때도 응급 치료가 필요하다. 내가 피해자인데 변호사 선임을 돈 들여서 하는 것에 대한 의문이 있을 수 있지만, 미룰수록 내면의 아픔은 점점 커진다. 서둘러 사건을 해결하지 않으면 증거가 소실되는 경우도 많다. 물론 변호사 비용이 부담되기도 하고, 병원은 의료보험이 돼서 단순 비교는 어렵다. 변호사 보험 같은 제도가 생기거나 변호사들 수가도 좀 더 낮아졌으면 좋겠다. 변호사들이 의뢰인들에게 보이는 권위주의적인 태도도 개선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가 어떤 방향으로 변화했으면 하는지.

여유 있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토론할 때도 나와 상대방 생각이 달라도 이견을 두려워하지 않고 대화하면 어떨까. 상대방이 내 의견을 반박한다고 해서 내 인격을 부정하는 건 아니니까. 그런 게 다 마음의 여유에서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너무 경쟁 일변도라 이견을 제시하면 ‘쟤가 나를 무시하나.’ 생각하게 되는 것 같다. 정치도 그런 영향을 주고. 사회 지도 계층이라고들 하는데, 나는 사회 지도 계층이란 존재하지 않고 사회 지배 계층이라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먹고사는 건 많이 나아졌어도 이성적으로나 철학적으로는 점점 야만화되는 악순환의 고리에 대내외적으로 빠진 것 아닌가 싶다.

새해 소망은?

딱히 없다. 다 시간의 연장선이라고 생각한다. 몸이 건강했으면 좋겠고 자유로워지는 방향으로 계속 사는 것 같다. 어릴 때 친구들하고 놀 때 같은, 궁극의 자유로운 상태를 갖고 싶긴 하다. 자유를 찾아가는 과정인 건데, 애를 써도 곡선이 너무 완만한 것 같다.(웃음)


글. 황소연 | 사진. 주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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