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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1 빅이슈

내 집에서 다리 쭉 뻗고 잡니다

2020.07.29 | 안광수 빅판의 임대주택 거주기

홈리스 생활을 청산하고 임대주택에 입주한 지도 어느덧 4년. 이제 노숙 생활은 다시는 생각지도 않을 거라는 안광수 빅이슈 판매원(편집자 주_신사역 8번 출구가 그의 판매지였고, 지금은 건강 문제로 잠시 판매를 쉬고 있다)을 그의 집에서 만났다. 정리의 달인 곤도 마리에가 한 수 배우고 가야 할 만큼 깔끔하게 정리된 그의 집에서, 이제 거리가 아닌 집에서 사는 삶에 대해 들었다.

《빅이슈》는 어떻게 판매하게 되었나요.
2004부터 7~8년을 거리 생활을 했어요. 점심은 주로 서울역 무료급식으로 해결했죠. 하루는 점심 무료급식을 받으려고 기다리고 있는데, 빅이슈 직원들이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 모집하는 안내 전단지를 돌리더라고요. ‘저 사람들 우리 같은 사람들 이용하는 거 아냐? 저게 돈벌이가 될까?’ 반신반의하며
전단지를 받아, 일단 잘 갖고 있었죠. 그전에도 자활을 시도하지 않은 건 아니었어요. 을지로 근처에 있는 롯데와 신세계백화점에서 청소일도 했었고요. 제 방을 둘러보시면 아시겠지만, 제가 성격이 좀 깔끔해요. 그래서 청소일이 잘 맞더라고요. 그런데 한 군데 오래 못 다니고… 그러다 보니 돈도 안 모이고, 자꾸 거리 생활로 돌아오게 되더라고요. 어느 순간 ‘더 이상은 이렇게 살면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고, 빅이슈의 문을 두드렸어요.

그때가 언제예요?
정확하게 기억해요. 2014년 3월 14일에 빅이슈 사무실에 전화를 걸어 일을 할 수 있느냐고 물었죠. 바로 다음 날부터 판매 일을 배워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날 시작해서 오늘까지 왔네요.(웃음)

빅판을 하면서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요?
더 이상 방탕하게 살지 않겠다는 강한 의지가 생겼어요. 판매를 시작할 때 공식 판매 시간은 오후 2시부터 8시까지였는데, 저는 더 일찍 시작해 밤 9시까지 하곤 했어요. 워낙 노숙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가 강했어요. 토요일까지 매일매일 열심히 했죠. 수입보다도 내가 내 삶에 주인의식을 갖고 주체성을 갖는 계기가 되었어요. 지금은 신사역에서 판매하지만, 당시에는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에서 했었어요. 홈리스가 많은 지하도 앞에서 판매를 했기 때문에 ‘이제 내가 저들의 모범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있었어요. 열심히 사는 안정적인 모습을 보이려 노력했고요.

임대주택 입주가 쉽지는 않았을 텐데, 어떻게 입주하게 되었나요?
빅이슈에서는 잡지를 성실히 판매하고, 일정 금액 이상을 저축하면 임대주택 입주 기회를 줘요. 《빅이슈》 판매를 처음 시작했을 때는 판매가 잘 돼서 임대주택 입주 보증금을 빨리 모을 줄 알았어요. 그런데 생각보다 저축액이 늘지가 않는 거예요. 저축이 지지부진해 상심하고 있었을 때였는데, 빅이슈에서 민들레문학상*이라는 공모전을 기획했는데, 입상하면 임대주택 입주 기회와 보증금까지 지원해준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바로 도전해보기로 결정했죠. 고려대에 계시던 선생님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추천을 받아 빅이슈에 오셔서 ‘글쓰기’ 강좌를 해줬어요. 2014년 7월 초부터 12월 초까지 토요일마다 오전 한 시간씩 열심히 글쓰기 교육을 받았죠. 첫 수업 한 번만 빠지고 다 출석했어요. 선생님께서 자신의 생애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 불행했던 순간, 앞으로의 계획 이 세 가지를 주제로 글을 써보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때 빅이슈 판매원 10여 명이 열심히 수업 들었죠. 공모전 시 부문에서 제가 우수상을 탔어요. 상금으로 임대주택 입주 보증금을 지원 받아 저의 보금자리를 마련할 수 있었죠. 전 지금도 부지런히 시를 쓰고 있어요. 시를 쓰다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며 치유돼요. 제가 살아온 삶을 돌아보고 기쁨의 순간을 느껴보기도 하고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기도 하죠.

임대주택에 입주하던 날이 기억나나요? 그날 기분은 어땠어요?
2016년 7월 9일 입주했어요. 뭐 말도 못 하게 좋았어요. 가장 좋은 건 내 공간이 생긴 거였죠. 크진 않지만 방 두 개에 거실, 주방, 그리고 내 맘대로 씻을 수 있는 욕실까지. 내가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나만의 공간이 생겼다는, 그 기쁨이 가장 컸어요. 짐이랄 것도 없는 이사였는데 막상 이삿날 보니, 집에 냉장고, 세탁기 등이 들어와 있더라고요. 빅이슈에서 마련해준 것이었어요. 너무너무 좋았죠. 첫날 밤은 잠이 안 왔어요. 내 삶의 계획, 포부를 펼쳐 보일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는 데 너무 좋아 잠을 설칠 정도였어요.

집에 다른 빅판들이 놀러 오기도 하나요?
몇 번 왔었죠. 서명진, 이승복, 박영길 빅판 등 대여섯 명 정도 놀러 왔었어요. 오면 ‘어우, 집도 넓고 깨끗하게 잘 해놓고 산다.’고 그래요.(웃음) 놀러 오면 직접 밥을 해주고 싶었는데, 아직은 못 그랬네요.

요리 실력이 좋은 편인가요?
해놓으면 다들 맛있다고 그래요.(웃음) 여기 입주하고 슈퍼에 갔더니 간단하게 해 먹을 수 있는 국거리가 있었더라고요. 그렇게 간단한 요리를 몇 가지 해보다 보니 늘더라고요. 요즘 외식은 거의 안 해요. 집에서 다 해 먹죠. 내 집이 생기기 전에는 꿈도 못 꾼 일이죠.

안광수 빅판에게 집의 의미는요?
나름의 꿈과 희망을 키울 수 있는 터전이죠. 내가 펼쳐나갈 수 있는 희망, 꿈의 공간이죠.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독자는요?
을지로입구역 6번 출구에서 판매할 때였어요. 2015년 11월 정도였는데, 그때 신장 수술을 받고 빅판으로 복귀한 지 얼마 안 됐을 땐데, 판매가 영 안 되는 날이었어요. 저녁 6시가 다 되도록 한 권도 못 팔고 있었는데 한 독자분이 오셔서 다섯 권을 팔아주셨어요. “잘 안 팔리고 힘드시죠?”라고 하시면서. 판매 원칙상 그러면 안 되지만, 제가 과월호 한 권을 슬쩍 끼워서 여섯 권을 드렸죠.(웃음) 지금 생각해도 너무 감사한 분이에요.

앞으로의 목표는요?
이제 거리 생활은 다시는 생각지도 않아요. 앞으로의 목표는 거리나 고시원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는 전도사가 되고 싶어요. 또 선뜻 용기는 나지 않지만… 동생과 부모님이 잘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동생 연락처도 알아다 놨는데… 아직은 용기를 못 내고 있지만, 언젠가는 꼭 가족에게 연락을 해보고 싶어요. 부모님 돌아가시기 전에 찾아뵙고 싶어요. 이런 소망이 생긴 것만으로 감사하죠. 빅이슈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어줬어요.

창간 10주년이 된 빅이슈에 한마디 해주세요.
수고 정말 많았다는 말을 해주고 싶어요. 지금 코로나 사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거리 생활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계속 꿈과 희망이 돼줘야 해요. 빅이슈 전 직원들에게 칭찬과 감사를 전합니다. 홈리스 자활에 힘쓰는 단체가 많지만, 빅이슈 정말 많이 애썼고, 앞으로도 열심히 해주세요.

독자에게 가장 전하고 싶은 말은요?
그동안 잡지를 많이 사주시고, 인스타그램 등 인터넷을 통해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빅이슈에 꾸준한 격려와 관심 부탁드립니다.

지금 코로나 사태로 판매에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데요, 다른 빅판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판매지에서 항상 말과 행동 조심하고 모범적인 모습을 보여야 해요. 또, 판매하면서 주변 분들과 불화 없이 지내는 게 아주 중요해요. 전 판매지에서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게 된 것이 너무 좋았어요. 판매지 주변의 가판대 사장님들, 건물의 경비 아저씨들, 지하철 역사에서 김밥이나 델리만쥬를 판매하시는 분들, 카트 등 물품을 보관해주셨던 사장님들도 기억이 많이 나네요. 판매지에 가면 저를 반가워해주시는 분들이 많고, 그분들이 있어 행복하다고 생각해요. 자기가 먼저 주변 분들에게 친절하게 잘 해야, 그분들도 나를 잘 대해주세요. 그런 소통들이 다 소중한 거죠.


안덕희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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