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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1 스페셜

탈가정 청소년, 곰곰의 이야기

2020.08.04 | 우리 주변의 홈리스들

작년 여성가족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1년 내에 가출을 경험한 청소년의 비율은 2.6%이다. 전체 청소년 인구가 876만 명으로 추산되므로 그 수는 23만여 명 정도다. 하지만 실제 탈가정 청소년 수는 그보다 많은 27만여 명으로 집계되고 있다. 집에서 나오는 이유로는 ‘부모님 등 가족과의 갈등’이 70%를 차지하고, 청소년 시절 탈가정한 곰곰(현 25세) 역시 그랬다. 곰곰은 거리와 쉼터를 전전하며 보낸 3년간의 이야기, 그리고 자립한 현재의 삶에 대해 들려줬다.

청소년 때 집을 나왔다고요?
열여섯 살에 처음 집을 나왔다가 이틀 만에 잡혀갔어요. 그러다 열일곱 살에 다시 나왔어요. 학교 간다고 하고 옥상에 둔 짐가방을 가지고 지하철역으로 가 사복으로 갈아입었어요.

어떤 이유로 집을 나왔나요? 원 가족과 살 때 집에서 가장 참기 어려웠던 점은요?
새어머니와 갈등이 심했어요. 보통은 다른 쪽 부모님이 중재를 하시잖아요. 그런데 제 아빠는 중재를 못 하셨어요. 그때 만나고 있던 여섯 살 위의 동성 연인이 있었는데 그 언니와 손잡고 집을 나왔어요. 마음이 편안해야 자기 집이라 생각하잖아요. 그런데 새어머니와 이복형제들의 행동들로 알 수 없는 우울감이 쌓여갔어요. 가족은 항상 제가 하는 모든 일이 안 될 거라 말했고,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면 네가 그걸 할 수 있겠냐는 투였어요. 아빠가 중재는 못 해도 저를 지키려는 마음은 있었는데, 저랑 새어머니랑 싸우면 부부 싸움이 벌어지는 거예요. 그러면 새엄마가 가정의 모든 불화가 저 때문이라는 듯 이야기했어요. 그 기간이 너무 길었고 한번 가출에 실패하니까 불화가 더 심해졌어요.

집에서 나오기로 결심하면서 바깥 생활은 어떨 거라 생각했나요?
딱히 상상한 건 없었어요. 처음엔 쫓기는 사람의 두려움과 다급함으로 집을 나왔어요. 집과 가장 먼 곳으로 가려 했고요. 본가가 경기도 성남인데, 열여섯 살 땐 울산으로 갔고 열일곱 살 땐 구미로 갔어요. 연고가 전혀 없는 곳이에요. 그냥 일행을 따라간 거였어요.

거리의 삶이 녹록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지냈어요?
열일곱에 언니의 목적지였던 구미에 도착하자마자 언니가 “이제 너는 스무 살이다.”라고 당부했어요. 도착하자마자 중년 남성들을 만났어요. 그들이 계속해서 제 나이를 의심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 사람들도 제가 청소년이란 걸 알았을 거 같아요. 그 사람들은 만남의 대가를 모텔을 잡아주는 식으로 지불했어요.

왜 쉼터에는 안 갔어요?
그땐 쉼터에 대해 부정적으로 생각했어요. 학교생활이 엉망진창이니까 담임 선생님이 학교 안에 있는 위클래스 상담소 이용을 권유했는데 거기서 제 얘기를 들으시더니 딱히 설명 없이 쉼터에 가야 한다고 부모님한테 통보를 한 거예요. 아빠가 충격을 받으셨죠. 나름 잘 돌본다고 생각했는데 외부 사람에 의해 아니라고 판단당하니까 패닉이 오셨나 봐요. 갑자기 친어머니를 소개해줬고 그래서 새엄마와 사이가 더 안 좋아졌어요. 그래서 쉼터에 대해 아빠가 날 잘못 돌봐 가야 하는 곳으로, 나쁘게 생각했어요. 결국 언니가 소개한 중년 남성들과 한 달 가까이 만났어요. 그들을 만나면 모텔에서 자고 못 만나면 길거리에서 해 뜰 때까지 앉아 있는 거죠. 빈털터리로 나와서 돈도 없고 갈 데도 없었으니까요. 막판에 그 사람들과 2박 3일 내내 만났는데, 의식이 있건 없건 계속 성관계를 하고 있던 거예요. 살고 싶어서 쉼터에 갔어요. 그런데 언니가 서울로 도망갔어요. 혼자가 됐죠. 쉼터에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었어요. 검정고시를 보려고 해도 고등학교 자퇴 처리 중이라 못 보는 거예요. 자퇴하고 몇 개월 있다가 해야 하더라고요. 일을 할 수도 없었어요. 본적이랑 너무 머니까 고용주가 가출 청소년으로 의심했거든요. 시설에서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다 제빵을 하고 싶다고 말해서 김해에 있는 직업사관학교에 잠시 다녔는데, 언니한테 연락이 와서 서울로 갔어요.

서울로 오라고 한 이유는 뭐였어요?
돈 벌 사람이 필요했겠죠? 가서 언니와 만났는데 모종의 이유로 저한테 화가 나서 엄청 때렸어요. 도망갈 생각도 못 했고 다시 알선을 당했죠. 버디버디로 사람을 구해 와서 같이 만나러 가는 식이었어요. 그러다가 언니와 언니의 새 여자 친구와 저, 셋이 일행이 됐어요. 아, 중간에 경기도에 있는 A 쉼터에 갔었어요. 가서 성 지향성도 오픈하고 지내다가 언니를 데려오고 싶다고 했더니 못 받아준다더라고요. 우여곡절 끝에 제가 나왔고 거리에서 지내다 동반입소가 가능한 다른 쉼터를 찾게 됐죠.

동반입소를 거부당한 건 동성 커플이라서였나요?
쉼터에서 명확한 이유를 얘기하진 않았지만 그렇지 않았나 싶어요. 결국 경기도에 있는 B 쉼터로 갔다가 언니가 적응을 못 해서 나왔어요. 간간이 남자들을 만났고요. 성매매라고 언급하지도 않고 대가가 오가지도 않았지만 저를 구매남의 방에 집어넣고 언니는 거실에서 잤어요. 쉼터에서 지내면서 이런 상황이 반복됐어요. 마지막에 있던 경기도 C 쉼터에서는 정말 사고뭉치였어요. 원래 쉼터는 외박이 안 되고 외출해도 귀가 시간이 정해져 있는데 외박을 자주 했어요. 1년을 그렇게 보냈어요.

여성 청소년 성소수자로서 쉼터에서 겪은 어려움도 있었나요?
아우팅을 당하든 커밍아웃을 하든 알려지고 나면 다른 사람과 같이 있는 모습을 의심할까 봐 신경 쓰게 돼요. 저는 쉼터 소장님께 들켰을 때, 뭐라고 하지 않고 퇴소시키지도 않겠지만 다른 친구들에게 영향을 끼치지 말라는 뉘앙스의 이야기를 들었어요. 그래도 동성들끼리 같이 있다 보면 티가 나기도 하니까 같은 성소수자처럼 보이는 친구들을 살짝 찔러보고 맞으면 유대감을 나누기도 했어요. 커플이 생기면 솔로가 이득을 보기도 했어요. 커플처럼 보이지 않으려고 셋이 놀거든요. 커플 아이템도 하나씩 사줘서 같이 쓰고요.(웃음)

쉼터에 여럿이 모여 살다 보면 어려운 점도 많을 것 같아요.
한 쉼터에 많으면 열다섯 명을 수용해요. 말이 열다섯 명이지, 전원주택에 같이 산다고 하면 진짜 어렵죠. 엄청 다양한 친구들을 일일이 케어하기가 정말 힘들어요. 행정이랑 생활지도가 나뉘는데 생활지도 하시는 분들은 잠도 같이 자고 숙식을 하는데 두 명이 있어도 교대를 하니까 1:15예요. 심야에 아프거나 하면 답이 없죠.

만약 곰곰님이 집에서 나오고 주거지를 우선 제공받았다면 쉼터 시설을 전전하는 시간이 단축됐을 것 같아요.
자립하고 나서 저도 사정이 녹록지 않았지만 주거가 불안정한 청소년, 청년들과 함께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주거가 불안정해진 친구가 생기면 임시보호처럼 데리고 오곤 했어요. 전문 기관처럼 해주지는 못했지만 다들 나중엔 안정적으로 되어서 떠났고 그런 걸 보면서 존엄성에 대해 생각했어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본인이 어떤 일에 대해 선택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집을 제공받는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억지로 해야 하는 것,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라고 봐요. 물론 집만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시작점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집이 있었으면 모텔을 전전하며 아저씨들을 만나는 일을 안 했을 것 같아요. 정말 선택의 여지가 없었어요. 주거가 보장됐다면 선택의 시간을 벌 수 있지 않았을까요.

쉼터에서 나온 후 사단법인 들꽃청소년세상에서 운영하는 청소년 자립팸 ‘이상한 나라’에서 살다가 자립했다고요? 다른 쉼터와 차이점이 있었나요.
2년 정도 지냈는데요. 쉼터가 기성복이라면 이상한 나라는 맞춤옷이었어요. 쉼터는 규칙이 있는 삶인데 이상한 나라는 자기에게 맞는 방법을 선택할 수 있었어요. 최소한의 보호를 위한 규칙을 제외하곤 같이 사는 사람들끼리의 소소한 약속 정도예요. 주거 공간이죠. 이상한 나라는 사설기관이라 실적을 증명할 필요가 없으니까 조금 더 자유로운 편이에요. 설립 목적도 탈가정 청소년의 자립이라서 일반 쉼터랑은 성질 자체가 너무 달라요.

지금 자립한 후 살고 있는 집은 어떤 곳인가요?
이상한 나라에서 나와 자립한 지 4년이 되어가요. 지금 사는 집이 세 번째 집인데요. 첫 집은 낡고 허름한 원룸이었어요. 여름휴가 중에 이사를 가느라 급한 대로 집을 찾았고 제 짝꿍이랑 주거가 불안정한 친구랑 셋이서 좁디좁은 원룸에서 살았어요. 그러다 돈을 모아서 에어컨이 있는 투룸으로 옮겼어요. 그 집에 가면서 ‘나 성공했네.’ 하고 뿌듯한 마음을 감출 수 없었어요. 객식구가 늘어서 짝꿍이랑 저랑 한 방을 쓰고, 집 없는 친구 둘이 한 방을 썼어요. 지금은 단독주택 2층의 넓은 투룸으로 이사를 가서 또 복닥복닥 살고 있어요.

지금 사는 집은 ‘내 집’ 같나요?
빌려 사는 집이지만 제가 돌아가야 할 곳이라고 생각해요.(웃음)

다음 집은 어땠으면 좋겠어요? 원하는 주거의 모습이 있나요?
요새 동물의 숲이라는 게임이 인기 있잖아요. 수도권의 인구 밀집도가 높으니까 원하는 사람이 있다면 청소년, 청년들을 한산한 비수도권 지역에 데려다놓고 자치적인 삶을 살게 하면 어떨까 상상해요. 땅을 무상으로 임대해주거나 집짓기 기술 등을 교육해서 본인이 노력하면 상상이 현실로 바뀔 수 있는 마을을 만들 수 있으면 좋겠어요.(웃음)

“집을 제공받는다는 건 하고 싶은 것과 억지로 해야 하는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스스로 선택할 기회라고 봐요.
인간의 존엄성이라는 게 본인이 어떤 일에 대해 선택할 수 있냐, 없냐의
차이라고 생각해요. 물론 집만 있다고 모든 게 해결되진 않겠지만,
어쨌든 시작점을 만들어줄 수 있지 않을까요.


양수복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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