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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0 인터뷰

연희동의 숨은 노랑 찾기 1

2020.12.15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잘 위로하는 방법을 고민한 2020년이었어요. 누군가에게 꼭 필요한 위로를 하고 싶기 때문이죠. 위로의 말을 건네는 것조차 상대에게 부담이 될까 봐요. 반면 어떤 친구가 우울을 내비치면 무작정 그의 집으로 찾아가고 싶어요. 그러곤 떠오르는 음식을 배달시켜 배불리 먹고 집을 잔뜩 어지럽히고 싶어요. 가능하면 내 애인과 강아지도 데리고 가서 소개하고 싶어요. 본능적으로 먹고, 웃고, 좋아하는 것들을 쉴 새 없이 이야기하고 싶어요. 정신을 쏙 빼놓고 함께 떠들고 난 자리의 청소나 설거지 따위도 즐거운 숙제로 느껴지게 하고 싶어요. 그런 날엔 바짓부리에 달려 따라온 노오란 낙엽 하나를 보면서도 문득 외롭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늦가을 비에 젖은 낙엽 하나 데리고 돌아온 날, 나를 기다려준 집, 가족, 반려 동식물에게 오늘도 잘 돌아왔다고 한마디 건네보는 건 어떨까요. 그럼, 노오란 개나리가 다시 필 때까지 긴 겨울에도 모두 잘 지내기로 해요.

노랗게 물든 은행잎을 보다가 노란색을 좋아하는 네가 생각났어.
어릴 때부터 노란색을 좋아했어. 하지만 그땐 지금처럼 표현하진 못했어. 노란색은 남자애가 좋아하면 안 되는 색 같았거든. 유년 시절에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고 표현하지 못해서 결핍이 있나 봐. 지금은 노란색을 좋아한다고 해서 누가 뭐라고 안 하니까 마음껏 표현하고 있어.

너는 완벽에 집착하는 사람 같아. 인스타그램에 노란색만 올리는 계정을 만든 것만 봐도. 가끔은 네 그런 성격이 너를 더 고립시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어.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내 마음이 편해서 그래. 자기애가 넘친다고 종종 농담처럼 말하지만 나는 스스로에게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전화번호부도 자주 정리한단 말이야. 휴대전화에 저장된 전화번호가 50개가 채 되지 않아.

네가 칭찬할 때 종종 ‘올해의 OOO다’라고 말하잖아. 작은 것에도 의미를 두는 걸 좋아하는 것 같아. 그중에서 네게 가장 의미 있는 건 뭐야.
요즘은 친구. ‘이대로 살아도 괜찮을까?’ 백수로 생활하다 보면 하루에도 몇 번씩 기분이 바닥을 쳐. 지난주에 하루에 면접을 두 번 본 적이 있었는데 그날따라 기분이 헛헛한 거야. 집에서 혼자 밥 먹을 생각을 하니 왠지 서글퍼서 동네 친구에게 무작정 연락했어. 언제든 편하게 연락할 수 있는 친구들이 있다는 건 살 만한 삶이라고 생각해.

네가 아끼는 사람 중에 빼놓을 수 없는 이가 가수 요조 같아.
대답하기 좀 난감한 질문이네. 자칫 본인 얘기를 하고 다닌다고 오해하실 수도 있잖아.

알았어. 그럼, 제일 좋아하는 가수는 누구야.
요조지 당연히.(웃음) 그녀가 운영했던 계동 ‘책방 무사’의 영향이 컸어. 사실 그전에는 재주 많은, 홍대 인디 음악 하면 떠오르는 아티스트 정도로 알고 있었어. 그러다 예전에 만나던 사람이 살아서 북촌에 자주 가던 때가 있었거든. 그날따라 아주 우연하게 발길이 그곳에 닿았어. 그날의 모든 게 완벽했어. 책, 분위기, 꾸민 듯 안 꾸민 듯한 서점까지. 그때 요조가 차를 한 잔 내어줬는데 참 따뜻했지. 그 이후로도 요 사장님이 있으면 꼭 차를 얻어 마셨어. 그때부터 독립 서점에 애정이 생겨서 이후에 ‘땡스북스’라는 서점에서 일하게 됐어. ‘나도 언젠가 이런 서점에서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그녀는 내게 늘 동경의 대상이야.

팬심의 대상이자 닮고 싶은 사람. 이 이야기를 수백 번 하고 다녀도 그녀라면 좋아하지 않을까.
요조는 나를 ‘봉수 씨’라고 부르고 나는 ‘선배님’이라고 불러. 누나라고 하기엔 낯간지럽고, 언니가 입에 딱 붙긴 하지만 차마 못 부르겠어. 그래도 선배라는 호칭을 귀여워한다는 걸 어쩌다 알게 되어서 안심하고 있어. 그리고 요조의 청춘 에세이 <외로운 사람, 힘든 사람, 슬픈 사람>에 나를 오랜 팬이자 ‘친구’라고 써줬어.

‘관종’이라고 부르는 것도 본 것 같아.
생일 축하 메시지를 보내고 싶은데 멋쩍은 거야. 장난스럽게 당일에 보내면 왠지 여러 메시지 틈에 묻힐까 봐 하루 전날 미리 보낸다고 했더니 ‘관종’이라고 하시더라고. 그때까진 부정적인 말이라고 생각했는데, 내가 동경하는 사람이 그렇게 불러주니까 하나의 캐릭터가 된 것 같고 재밌는 거 있지.


정규환
사진 이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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