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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2 에세이

방탄소년단은 트로피가 아닌 무대로 증명한다

2021.01.13 | 인생은 아이돌이다

*팬심 대주의
열심히 하는 것밖에 돌파구가 없는 사람들은 열심히 해야 한다. 열심히 해도 안 되면 치킨이라도 시켜 먹고 다시 더 열심히 해야 한다. 그래도 안 되면 뭐 어쩔 수 없지만 이 세상에는 로또만큼의 희망은 늘 존재한다.

열심히 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는 나 같은 사람은 방탄소년단(BTS)의 무대를 보며 감동할 수밖에 없다. ‘별거 없는 중소 아이돌’, ‘회사가 작아서 제대로 못 뜰 거’라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가수는 오직 무대로 보여준다는 걸 증명이라도 하듯 모든 걸 노력으로 돌파해온 그들의 서사가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 , ‘진심은 외면받지 않는다’, ‘상식은 승리한다’ 같은 내가 회사 생활을 하면서 믿지 못하게 된 오래된 진리를 현실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차마 장르와 제목을 밝힐 수 없는 웹 소설을 종일 읽고 이틀에 한 번꼴로 라볶이를 먹으며 진정한 행복을 느끼는 내가 빌보드 싱글 차트 1위를 여러 번 하고, 소속사 빅히트의 2020년 상반기 매출만 3000억 원에 육박하는 방탄소년단의 성취를 마치 내 일처럼 기뻐하는 이유다.

가수는 무대로 증명한다
외람된 얘기지만, 사실 방탄소년단은 데뷔한 해부터 인기가 꽤 많았다. 주목받지 못했을 뿐. 아미(ARMY)라면 방탄소년단 멤버들의 생년월일 외우듯 꿰고 있는 내용일 테니 몇 문단 정도 패스하셔도 무방할 것 같다. 어쨌든 방탄소년단은 매년 인기가 거듭제곱되는 전대미문의 커리어를 쌓았다. 2013년에 데뷔해 연말 시상식 신인상을 휩쓸었고, 2014년에는 단일 음반 기준 국내에서 10만 장 이상 판매한 아티스트 열 팀에 이름을 올렸다. 2015년에는 그해 음반을 낸 모든 K-POP 아티스트 중 두 번째로 높은 음반 판매고를 기록했다. 2016년부터는 단일 음반 판매량, 뮤직비디오 조회 수 등의 영역에서 방탄소년단의 맞수를 찾기 어려웠다. 그해 몇몇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받았다. 신인상에서 대상 수상까지 딱 3년이 걸린 것이다.

그러나 바야흐로 2018년 국내 누적 음반 판매량이 1천만 장을 돌파하고, 미국 빌보드·아메리칸 뮤직·그래미 어워드 레드카펫을 밟았으며, 청와대의 제안으로 뉴욕 유엔 본부에서 연설하고, 소속사 빅히트의 영업이익이 3대 대형 기획사보다 압도적으로 높았던 해에도 방탄소년단은 대다수 국내 대중에게 초면이었다. 그동안 미디어 산업의 선택과 집중에서 제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데뷔 1년 만에 음반 판매량 10위권에 오른 해에도 음악 방송에서 큐시트를 우선순위로 편성하고 남은 자투리 시간에 서야 했고, 잘 보여야 할 사람 없는 ‘듣보’ 기획사의 혈혈단신 아이돌이라 예능 프로에서 노골적으로 무례한 대접을 받아 팬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으며, 현존하는 K-POP 기록을 모두 갈아 치우고도 공중파 연말 시상식에서 관례적으로 그해 가장 많은 인기를 얻은 가수가 서는 엔딩 무대가 아니라 어정쩡한 순서에 배치되는 일이 이어졌다. 그래서 대중은 좀 더 일찍 방탄소년단을 눈여겨볼 기회를 갖기 어려웠다. 그런데 뭐 어쩔 수 없었다. 세상은 원래 그런 곳이니까.

납득하기 어려운 현실을 방탄소년단은 오로지 무대와 실력으로 돌파해나갔다. 선택의 여지 없이 ‘가수는 무대로 증명한다’, ‘평가는 관객이 내린다’라는 고전적인 믿음에 모든 걸 걸어야 했다. 다행히 그 믿음은 ‘가요대제전’이나 ‘가요대축제’나 모두 ‘Korean Music Festival’로 퉁쳐지는 유튜브와 결합하며 현실로 이뤄졌다. 새로운 관객은 시상식 엔딩 무대에 누가 섰는지 궁금해하지 않았다. 모든 무대의 앞과 뒤엔 공평하게 광고가 있을 뿐이었다.

방탄은 어떻게 빌보드 싱글 차트 1위가 되었나
방탄소년단은 뻗은 팔의 각도, 점프한 높이까지 일치하고 쉴 새 없이 대형이 변하는데도 멤버들 사이의 간격이 일정한 ‘칼군무’와 라이브 실력으로 명성을 얻기 시작했다. 방탄소년단의 칼군무는 힘과 속도가 남다르다. 어릴 때부터 체계적으로 트레이닝을 거친 아이돌 연습생을 모아 팀을 꾸린 게 아니라, 예술고등학교 무용과 수석 출신부터 연습생이 되고 나서 댄스를 시작한 랩 멤버까지, 실력과 체형이 제각각 다른 멤버들이 합을 맞췄기 때문이다. 물론, 연습량이 많다고 훌륭한 무대를 만들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방탄소년단은 서툴더라도 자전적인 가사를 담은 노래로 활동했기 때문에 안무에 능숙하지 않은 멤버라도 진솔한 감정을 퍼포먼스에 담아 부족한 부분을 특징으로 바꿀 수 있었다. 1%의 각기 다른 영감을 가진 일곱 명이 99% 노력을 함께 하며 시너지를 냈고, 그것은 팀의 결속력으로 이어졌다.

여기에 더해, 대다수 K-POP 아이돌은 뮤직비디오에서 최상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고 그 경지를 반복하는 무대를 지향하지만, 방탄소년단은 랩이 노래의 주요한 축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모든 공연에서 라이브를 하며 특유의 생동감 있는 무대를 만들었다. ‘재즈는 두 번 연주될 수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하늘 아래 같은 라이브는 존재하지 않는다. 방탄소년단은 같은 곡이라도 장소와 상황, 관객과의 호흡에 따라 에너지가 다른 무대를 탄생시켰다. 그리고 세상이 불공평한 것은 알지만 그것이 자기 일이 될 줄은 몰랐을 청년들의, 무대에 대한 요동치는 열망과 결의는 고스란히 팬들의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아끼고 응원하는 마음이 커질수록 상식의 세계를 흔드는 방탄소년단이 처한 불합리한 상황에 대한 의구심도 커졌다.

주류 음악 산업의 대우와 상관없이 레전드 무대가 탄생할 때마다 입덕 대란이 일어났다. 특히 K-POP 댄스 커버 영상이 대표적인 입덕 입구인 해외 팬들이 방탄소년단의 퍼포먼스에 전례 없는 환호를 보내기 시작했다. 데뷔 1년 만인 2014년 한류콘텐츠진흥원이 진행한 ‘K-POP 미국 시장 소비자 조사’에서 방탄소년단은 가장 좋아하는 가수 1위를 차지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의 역사는 하루아침에 이뤄진 것이 아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성장한 밀레니얼 이후 세대가 대다수인 아미는 너무나 유능했다. 좋은 것을 알아보는 눈과 이를 설명하고 확산할 능력과 수완, 교양과 정보력, 무엇보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열정을 가지고 있었다. 여기에 더해 이 세대 특유의 도덕성과 합리성으로 고도의 커뮤니케이션을 이끌었다. 이 매트릭스에서 ‘주류 음악 산업’ 같은 건 콘서트 티케팅 전에 속도를 빠르게 하기 위해 정리해야 하는 캐시데이터 같은 것이었다. 그래서 방탄소년단은 팬들에게 자신들을 알아봐줘서 고맙다고 말한다. 방탄소년단과 아미의 특별한 유대감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2019년 6월에 열린 방탄소년단 팬 미팅이 생각난다. 스탠딩 180번대에 당첨되어 무대 앞 2.5열 정도에 서 있던 나는 공연과 동시에 시작된 격렬한 자리 경쟁에 낄까 말까 망설이다 ‘이 나이에 몸싸움을 할 순 없지.’ 하는 자아에 패배했다. 그 바람에 횡단보도에서 초록불이 깜빡여도 뛰지 않는 군자의 도리 같은 걸 혼자 지키는 아버지처럼 굴다가 흘러 흘러 맨 뒤로 가게 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들을 먼저 알아봐준 팬들을 ‘알아보기 위해’ 모든 순간을 기억하겠다는 듯 깊은 눈으로 객석을 바라보던 방탄소년단의 표정을 선명하게 기억한다. ‘나랑 눈 마주쳤어.’ 타이밍이 천 번쯤 있었는데, 그중 한 번 정도는 망상이 아닐 수도 있다. 지금은 그 순간이 전생처럼 멀게 느껴진다. 울고 싶다.

방탄소년단은 무대로 증명한다
아이돌에게 무대란 교복과 가죽 사이의 진자 운동 같은 거라고 생각한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방탄소년단의 무대는 교복보다 신선하고 가죽보다 강렬했다. 데뷔 7년 차가 되었지만 방탄소년단은 무대에서 여유를 부리지 않는다. 여전히 치열하게 무대의 힘으로 자신을 증명하고 있다. 칼군무로 명성을 얻은 이들은 이제, 그동안 다진 노하우와 방탄소년단 정도의 영향력과 매출을 가진 그룹만 할 수 있는 대담한 도전과 아낌없는 투자로 K-POP 공연 문화의 한계를 베는 날 같은 무대를 펼치고 있다.

멜론 뮤직 어워드(MMA) 2020 ‘Black Swan’ 공연에서 ‘백조의 호수’를 재해석한 예술적인 무대로 수많은 무용 전문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고전의 아름다움을 새로운 증강현실(AR) 기술을 이용해 관람이 아닌 체험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2020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드(MAMA)의 ‘ON’ 공연은 마칭 밴드와 댄서 등 수백 명의 인원이 한 달 동안 연습해 절도 있는 대규모 퍼포먼스를 완성했다. 빌보드 싱글 차트 1위에 올랐던 ‘Life Goes On’ 2020 아메리칸 뮤직 어워드(AMA) 공연을 위해서는 잠실종합운동장을 통째로 대여했다. 수만 개의 좌석에 3만 3천 원 정도에 팔리는 팬클럽 응원봉 ‘아미밤(ARMY Bomb)’을 설치했고, 여의도에서 열리는 서울세계불꽃축제 못지않게 폭죽을 터뜨렸다. 불꽃놀이를 볼 때마다 어쩐지 10년 전에 졸업한 대학의 등록금을 생각하게 되지만, 코로나19 시대에 상실한 것과 코로나19 이후를 생각할 때 콘서트를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팬들에게 방탄소년단만이 줄 수 있는 최고의 선물이자 위로였다.

방탄소년단이 2021 그래미 어워드 ‘베스트 팝 듀오/그룹 퍼포먼스’ 부문 후보에 올랐다. “한국이라는 작은 나라에서 온 보이 밴드”인 외국인·비백인·아시안이라는 정체성을 가진 방탄소년단은 이번에도 오로지 무대의 힘으로 모든 것을 돌파해야 한다. 그래서 오늘도 라볶이를 먹고 장르와 제목을 밝힐 수 있는 웹 소설을 하루 종일 읽는 나 같은 사람은 방탄소년단을 절절히 응원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결과가 어떻든 확실한 건 방탄소년단은 언제나 트로피가 아니라 무대로 증명한다는 것이다.

다음 호에서는 새로운 시대의 팬덤으로 평가받는 ARMY의 특징에 대해 이야기해보도록 하겠다. 그때까지 기다려~ 기다려~! 주시길 바란다.


최이삭
인생을 아이돌로 배운 사람
인스타그램 @isakcho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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