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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2 에세이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케이크는 먹고 싶어서

2021.01.20 | 디저트가 필요한 순간

이불 밖은 위험해.’ 그저 집 밖으로 나가기 귀찮고 번거로울 때 쓰이곤 하던 이 장난스러운 핑곗거리를 마냥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게 된 2020년이었다. 들뜬 마음으로 시작해야 할 2021년의 첫 달도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사실이 아쉽게 느껴지지만 지금처럼 이불 밖, 집 밖을 조심하며 안전하게 지내다 보면 다시 이 말을 핑곗거리로 쓸 수 있을 날이 더 빨리 찾아오리라 믿는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이크는 먹고 싶어지는 때가 있다. 예전처럼 어딘가에 앉아 다른 이가 정성스레 내려준 커피와 함께 천천히 여유롭게 먹을 수는 없을지라도 편안한 집 안에서 내 손으로 어설프게나마 내린 커피와 함께 케이크 한 조각을 먹고 싶어질 때. 그럴 때면 조심스레 케이크만을 위한 짧은 외출을 계획하곤 한다. 이불 밖은 위험하지만, 그래도 집에만 있느라 고생하는(?) 나에게 케이크 한 조각 정도는 먹여주고 싶어서.

‘플랑플랑’한 밀크레이프
어쩐지 입 안에서 굴러가는 발음부터 귀엽게 느껴지는 상호명은 불어로 ‘천천히, 느리게’라는 뜻을 갖고 있다. 급하게 달려가지 않고 천천히 흘러가면서 누구나 맛있게 즐길 수 있는 디저트를 선보이고자 하는 의미를 담고 있다. 플랑플랑의 첫 번째 공간은 카페를 겸해 커피나 음료 등을 먹고 갈 수 있는 공간이었는데 최근에 가게를 이전하고는 테이크아웃에 중점을 두는 형태로 바뀌었다. 하지만 들어가자마자 마음이 따뜻해지는 분위기는 여전히 그대로다. 오히려 공간이 아담해진 만큼 이전보다 아늑하고 아기자기한 느낌이 더해졌달까.

내가 플랑플랑을 마음 훈훈한 케이크 가게로 느끼는 까닭은 단순히 분위기 때문만이 아니라 디저트 때문이기도 하다. 계절마다 아예 디저트 라인업이 바뀌는 가게들도 있지만 플랑플랑의 경우는 계절에 상관없이 언제나 준비되는 케이크들이 많다. 그래서 어느 날 갑자기 불현듯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는 점, 먹고 싶은 케이크를 먹고 싶은 순간에 만날 수 있다는 데에서 느낄 수 있는 안정감, 든든함이 바로 그런 따뜻함의 이유가 되어준다.

그중에서도 가장 많이 떠올리게 되는 케이크는 바로 ‘밀크레이프’다. 내게 있어서는 다소 각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어서인데, 크레이프 케이크가 취향이 아니라는 말을 철회하게 만든 것이 바로 이 ‘밀크레이프’이기 때문이다.
크레이프 케이크는 얇게 구운 크레이프 사이에 다시 크림을 얇게 발라 층층이 쌓아 만드는데, 크레이프와 크림의 조합이라면 당연히 맛있을 것 같지만 개인적인 감상은 ‘이도 저도 아니다’였다. 아닌 게 아니라 크레이프가 겹겹이 쌓여 있다 보니 생각보다 케이크를 먹는다기보다는 그저 크레이프에 크림을 얇게 발라서 접어 먹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뿐 케이크 같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서였다. 하지만 그렇게 흔히 볼 수 있는 크레이프 케이크와 달리 밀크레이프는 생크림뿐 아니라 커스터드 크림과 딸기, 키위, 바나나, 오렌지 등의 과일이 함께 들어간다. 덕분에 생크림만 있는 크레이프 케이크에 비해 맛이 단조롭지 않고 여러 과일을 함께 먹는 재미가 있다. 그렇다 보니 조금씩 잘라 맛보는 것도 좋지만, 넉넉한 크기로 잘라 한입 가득 맛보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행복함과 충족감을 느낄 수가 있다.

한편, 정확히 어디서부터 유래된 것인지는 몰라도, 통상적으로 크레이프 케이크를 먹는 방법은 두 가지로 나뉜다. 한 가지는 일반적인 케이크처럼 세로로 잘라 층층이 쌓인 크레이프를 한번에 먹는 것이고 또 다른 방법은 크레이프를 낱장으로 한 겹 한 겹 떼어내 돌돌 말아 먹는 것이다. 플랑플랑의 밀크레이프는 여타 크레이프 케이크에 비해 크림의 비중이 높은 데다 과일이 들어 있어 항상 전자의 방법으로 먹다가 문득 후자의 방법이 떠올라 셰프님에게 어떤 방식을 추천하시는지 여쭤보니, ‘커스터드 크림이 함께 들어 있다 보니 낱장으로 떼어먹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후자의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면 생크림만 들어간 맨 위층의 크레이프는 돌돌 말아 먹은 뒤 나머지를 한번에 먹으면, 두 가지 방법으로 먹을 수 있다.’고. 정말이지 박수가 절로 나오는 명쾌한 답이 아닐 수 없어 그대로 실천해보니, 두 가지 방법을 모두 써먹는 데에서 오는 즐거움이 쏠쏠했다. 어떻게 먹어도 맛있는 건 마찬가지지만, 좀 더 다양한 방법으로 먹으면 그만큼 재미가 더해지는 모양이다.

안온함을 주는 케이크라니
이런 밀크레이프 외에도 시즌이 되면 다시 돌아오거나, 항상 자리를 지키고 있는 케이크들도 많다. 더운 계절을 제외하고 꽤 긴 시간 만날 수 있는 ‘몽블랑’이 그렇거니와 딸기가 나오는 때에는 밀크레이프의 친구인 ‘딸기 크레이프’도 준비된다. 말차 무스와 팥의 조화가 인상적인 달콤 쌉싸름한 ‘말차 아즈키’, 상큼한 카시스 무스와 다크초콜릿 무스의 ‘카시스 쇼콜라’, 소담한 꽃다발처럼 귀여운 생김새의 크림 케이크인 ‘알프스’와 ‘얼그레이 알프스’는 대체로 언제 가든 만나볼 수 있다.

항상 좋아해서 찾게 되는 케이크와 별개로, 종종 나오는 새로운 케이크를 맛보는 일도 즐거운 일이다. 최근 맛본 케이크는 ‘레어 쇼콜라’인데, 촉촉한 초콜릿 시트와 달콤한 초콜릿 크림, 겉을 살짝 도톰하게 덮고 있는 초콜릿 가나슈의 조합으로 추운 겨울과 잘 어울리는 깊고 진한 맛의 케이크다. 낯선 곳에서 그간 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해보고 싶은 때가 있는가 하면, 익히 알고 있는 편안한 장소에서 안락하게 머무르고 싶을 때도 있다. 플랑플랑의 케이크는 바로 그런 때와 같은 맛이다. ‘역시 정말 맛있어.’라고 생각하게 되는 익숙함과 편안함의 맛. 지금처럼 안온함이 필요한 시기에 잘 어울리는 그런 맛.


플랑플랑(plan plan)
강남구 봉은사로84길 30
화요일~토요일 12:00~19:00
일요일 휴무, 월요일 격주 휴무


글·사진 김여행
먼 타지로 떠나는 여행이든, 동네 카페 투어든,
항상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하는 가장 보통의 직장인. twitter @_trave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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