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간 열심히 했다. 사내 체육대회 1등, 홍보 시안도 1등. 뭐든 잘해서 얻은 별명이 ‘여자 동기들의 전설이자 희망’이건만, 어느 날 ‘정은’(유다인)은 하청업체 현장직으로 밀려난다. 회사는 1년만 버티면 원청으로 복귀시켜준다고 했지만 송전탑 수리 업무에 적응하라는 건 알아서 눈치껏 제 발로 나가라는 뜻이다. 정은은 어떻게든 버텨보겠다며 악을 쓰며 송전탑에 대해 공부하고 끼워주지 않는 남자들 무리를 비집고 들어간다. ‘막내’(오정세)는 저 여자가 왜 저러나 싶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매몰차게 지나치진 못한다. ‘쓰리 잡’을 뛰어서 자식을 부양해야 하는 자신과 정은의 처지가 별반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래서 손을 내민다. 거친 현장 업무로 터서 갈라진 손을. 노동자의 연대란 이런 식으로 서로가 서로를 돕고 지키려는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것을 영화는 조용히 속삭인다. 오정세는 이 영화를 빌려 ‘열심히 사는 사람에게 걸맞은 보상이 이뤄지는 세상’을 기대하고, 유다인 역시 ‘내가 힘이 될 수 있다면 뭐라도 하고 싶다.’고 다짐하며 연기에 임했다. 아무리 작고 힘없는 노동자라도 아무도 멋대로 나를 해고하지 않게 하겠다는 의지를 담은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의 유다인과 오정세, 두 사람의 작은 연대가 시작됐다.

영화 <나는 나를 해고하지 않는다>는 여성과 하청 노동자의 삶을 이야기하는데, 어떻게 참여하게 됐나요.
유다인 제가 처음 시나리오를 봤을 때가 KTX 승무원의 전원 복직 판결이 났다는 뉴스가 전해진 시점이었어요. 승무원들이 10년 넘는 시간 동안 어떻게 싸워왔는지 알게 됐고, 그걸 봐서 그런지 이 영화도 단순히 이야기로 보이지 않더라고요. 배우로서 연기적인 표현을 위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이건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영화의 만듦새가 어떻든 제게 부끄럽지 않게 남을 것 같았고, 제가 이 영화에 잘 쓰일 것 같다는 확신이 있었어요. 제가 그간 해온 작품들과 결이 비슷했고 잘할 수 있는 지점이 되게 많았어요.
오정세 다인 씨가 이 작품에 대한 의지가 커서 저도 동참하고 싶었어요. 워낙 좋은 작품을 잘 보니까요. 시나리오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는데 저한테는 어땠냐면, 제 주변에 ‘막내’ 같은 친구들이 많거든요. 되게 성실하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요. 그런데 들이는 노력에 비해 대우라든지 뭐가 좀 부족해서 항상 아쉬워요. 제가 이 작품을 하면 그들에게 작은 응원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고, 우리 주변의 그런 좋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더 가져야 되지 않을까 하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작품이어서 하게 됐어요.
두 분이 드라마 <아홉수 소년>에서 커플 연기를 한 적이 있고 소속사도 같아서 서로 낯설지는 않았을 것 같아요.
유다인 저는 되게 안심했어요. 오빠가 막내 역을 맡았다고 해서 무척 고마웠죠. 실제로 촬영하면서도 화면에 빈 공간이 느껴질 만한 상황에서 오빠가 도움이 많이 됐어요.
오정세 친한 사람들끼리 해서 시너지가 생기는 경우가 있고 역할에 몰입하기 어려운 경우도 있을 것 같아요. 이번 영화는 이전에 우리가 같이 한 <아홉수 소년>이라는 작품과 색깔과 톤이 완전히 다른데도 이질감이나 불편함이 없었고, 친근감이 오히려 방해된다든지 하는 점 없이 그냥 정은과 막내로 영화 톤에 맞게 잘 연기한 것 같아요.
유다인 <아홉수 소년>을 찍을 때는 웃느라 정신없었거든요. 그때보다 좀 더 몰입했던 것 같아요.
정은은 하청업체로 쫓겨 온 게 이해되지 않아 억울하고, 그래서 처음부터 눈빛이 아주 심각하잖아요. 캐릭터를 어떻게 파악했나요.
유다인 관련 자료를 많이 찾아봤어요. 또 감독님이랑 얘기를 많이 하고 정세 오빠랑도 얘기하면서 캐릭터를 잡았어요. 딱히 뭔가를 준비하지는 않았어요. 다만 상황에 집중하려고 노력했어요. 전사가 많이 나오지는 않지만 정은이가 원래 다니던 회사에서 우수 사원이었잖아요. 굉장히 열심히 했을 것 같은데 이것저것 다 안 되고 인정받지 못한 채 쫓겨났잖아요. 나라면 어땠을까? 이런 생각을 많이 했어요.
막내는 쓰리 잡을 뛰는 인물이에요. 낮엔 송전탑을 수리하고 저녁엔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밤엔 대리운전도 해요. 막내에게 어떤 감정으로 접근했나요.
오정세 여러 가지 중 가장 핵심은 아까 얘기한 정서였어요. 어떤 사람이든, 어떤 위치, 어떤 장소에 있든 그 안에서 막내는 자기가 맡은 일에 성실하게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아닐까? 이 시간, 이 장소에서 막내는 뭘 할까 생각하면서 연기했어요. 그 정서만 표현하고 다른 건 최대한, 굳이 표현하려 하지 않았어요.
표현을 안 하려고 했다는 점이 인상적인데요. 이유가 뭔가요.
오정세 배우에게는 (표현이) 숙제예요. 보통 슬픈 장면에서 어떻게 표현해야 관객이 슬프게 받아들일지 고민하잖아요. 그거 말고, 이렇게 표현할까 저렇게 표현할까 그렇게 말고, 그냥 제가 슬픈 게 정답이기도 해요. 가만히 있더라도, 혹은 웃더라도 제가 슬픈 게 정답인 것 같아요. 막내의 감정을 굳이 제가 표현하려고 애쓰지 않는 데 중점을 뒀어요. 상업 영화나 코미디 영화라면 이런 방식은 충돌할 수 있지만, 이 영화의 막내라는 인물은 배우의 슬픔만으로 영화와 충분히 시너지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싶었어요.
각자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면요?
유다인 장례식장 장면이요. 컷이 나뉘어 있었는데, 나누면 다 못 찍을 분량이라 한번에 가게 된 거예요. 제가 밀쳐지고 넘어지고 그러면서 힘들었는데, 나중에 보니까 괜찮게 나온 것 같더라고요.
오정세 저도 그 장면이 기억에 남아요. 어려운 환경에서 중간에 한 명만 삐끗하면 다시 찍어야 하잖아요. 감정을 길게 가져가야 하는 긴 신인데, 그 짧은 시간 안에 스태프들과 배우들이 손발 맞춰 헤쳐나간 장면이라서 우리 영화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바와 맞닿아 있을 것도 같아요.
※ 인터뷰 전문과 배우 오정세, 유다인님의 더 많은 화보는 매거진 '빅이슈' 243호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글 양수복
사진 김영배
스타일리스트 홍은화
헤어 박내주(빗앤붓)
메이크업 수지(빗앤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