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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3 에세이

나의 EXIT

2021.07.05 | 탈가정 여성 청소년, 집을 찾다

나의 첫 번째 비상구, 길거리
그저 자유로움만 상상하며 아무런 대책 없이 집 밖으로 향했습니다. 가진 돈이 없어서 낯선 사람들에게 저를 맡기는 경험을 겪어야만 했고, 그 과정과 결과는 폭력적이었습니다. 그렇게 돈을 얻어도 청소년인 저는 제 몸 하나 누울 공간이 없었습니다. 청소년이기 때문에 찜질방도 숙박업소도 피시방도 만화방에도 가서 잘 수 없었습니다. 집을 계약하는 것은 더 불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주거가 안정적이지 않으니 모든 것이 불안정하기만 했습니다. 주거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것이 필요했지만 결국 주거가 불안정하면 다른 것들을 얻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길거리에서 보내는 날들이 많아졌고, 식료품 시식 코너에서 끼니를 때우는 날도 늘어만 갔습니다. 제 모습을 지켜보는 누군가는 그런 삶보다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나은 선택이 아니냐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돌아갈 곳은 이미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나의 존재를 인정하는 곳이야말로 내가 돌아갈 곳이자 ‘나의 비상구’이기 때문입니다.

나의 두 번째 비상구, 시설
같이 지내던 일행을 통해서 가출 청소년 보호시설, 통칭 ‘쉼터’에 대해 알게 되었습니다. 쉼터에 입소하는 순간 부모님과 다시 연락할 것인지 말 것인지에 대해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저에게 되어 있는 가출 신고도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남아 있는 모든 용기를 모아 부모님께 다시 연락했습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과 고등학교를 자퇴하겠다는 뜻도 전했습니다. 17세라는 나이는 사회생활을 시작하기에 너무 이른 나이였을까요? 하고 싶은 공부도 없었고 일을 하고 싶었지만 시작조차 어려웠습니다. 3개월이 지나 쉼터에서도 나가야 할 때가 왔습니다. 새로운 쉼터에 가기 위해 인터넷에 ‘청소년 쉼터’를 검색했습니다. 여러 청소년 쉼터들이 검색됐고 가까운 곳의 전화번호를 적어 동전을 챙겨 공중전화로 향했습니다. 부모님의 연락을 피하려고 집을 나서자마자 핸드폰부터 없앴기 때문입니다. 많지 않은 동전 탓에 마음은 조급했지만, 쉼터는 이런 제 마음을 알 리가 없었습니다.

희망을 품고 전화했지만 한 이미 15명의 정원이 가득 차 받아줄 수 없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결국 다른 갈 수 있는 쉼터를 찾아 헤맸고 다행히도 갈
수 있는 쉼터가 있었습니다. 쉼터라는 공간은 내가 자고 싶을 때 잘 수 없고, 먹고 싶을 때 먹을 수 없었고, 하고 싶은 프로그램만 할 수 없었고, 같이 지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과도 지내야만 했지만, 거리에서 살지 않고 미래를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이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쉼터에서 지낼 수 있는 기간이 정해져 있는데 아무런 대안이 없어서 쉼터를 옮겨 다녔습니다. 여러 쉼터에서 다양한 경험을 했습니다. 검정고시 시험을 준비하기도 하고 댄스 학원도 다녔습니다. 봉사활동도 하고 짧게 일도 하고 연극도 해봤습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생겼습니다. 하지만 ‘나의 비상구’는 그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습니다.

청소년과 비상구

탈가정 청소년에게 비행 청소년, 가출 청소년이라는 꼬리표만 달아서는 그 무엇도 해결하거나 발전시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요? 거리에 있는 청소년에게 어떤 위험이 일어나는지, 위험을 겪은 후에 어떤 비상구로 향해야 하는지 충분히 전해지고 있을까요? 아직도 거리에는 비상구를 찾고 있는 청소년이 무척 많습니다. 청소년을 만나는, 만나야 하는 많은 사람이 좀 더 다양한 것을 상상했으면 좋겠습니다. 통제와 격리가 아닌 서로 함께 삶을 살아내는 것을 우선으로 하길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회의 분위기와 기관 혹은 단체의 운영에 직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는 사람들의 관점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숫자 1도 중요할 수 있지만, 청소년 A의 삶도 소중하다는 것을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변화의 시작이 어렵지만, 시도하는 많은 사람이 생기길 바랍니다. A를 위해 다양한 분야의 사람, 단체들이 함께하기를 주저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비상구는 어디에나 존재해야 합니다. 당신의 시작과 결심이 많은 사람의 변화를 이끌 수 있을 것입니다.

※이번 기사는 다음 기사 <나의 EXIT 2>에서 이어집니다.


곰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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