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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5 에세이

슬픔에 무감각해지는 슬픔

2021.07.28

한국으로 돌아가기 전에 코로나19 백신을 맞을 수 있을지 몰랐는데, 지금으로부터 무려 한 달 전 1차 접종을 하는 데 성공했다. 아무리 프랑스가 (상대적으로) 사회복지가 잘돼 있고 외국인에게 열린 나라라고 해도, 무심코 하는 인종차별과 프랑스식 관료 체제에 대한 불신 때문에 이곳에서 병원에 가는 것을 극도로 꺼렸다. 또 젊은 사람은 잔여 백신이 있을 때에 한해 신청이 가능하기 때문에 콘서트 티케팅을 하듯 빈틈을 노려야 한다.

하여 나에게 기회가 올 리 없다고 믿고 한국에 가서 맞아야지 하고 있었는데, 웬걸 종강 몇 주 전부터 학교 친구들이 너도나도 맞고 있는 것이 아닌가! 백신 맞는 일이 생각보다 어렵지 않아 보이고, 남들 다 하는 거 안 하고 있는 건 못 참는 성격이라 백신 접종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다.

파리 시내에서는 가능한 예약 시간을 찾기 어려워 나도 내 친구들도 파리 근교까지 나가서 맞아야 했다. 주사 맞고 기절한 이력이 상당한 친구가 있어 동행해줬는데, 파리 동쪽에 위치한 군부대에서 진행했다. 프랑스의 백신 접종은 PCR 테스트와 마찬가지로 모두 무료다. 나는 건강보험카드(Carte Vitale)도 없고 외국인 학생 건강보험(Ameli)도 없다. 임시사회보장번호만 있을 뿐인데, 이 번호와 확실한 프랑스 주소만 있으면 백신 접종이 가능한 듯하다. 군부대에서 백신을 맞은 친구는 독일인이었는데 독일 신분증을 제출한 것이 전부였다.

이럴 때마다 유럽은 진정 한 덩어리라는 것이 느껴진다. 환전도 (거의) 안 해도 되기 때문에 은행 계좌를 새로 만들 필요도 없다. 건강보험도 새로 안 들어도 되고, 비행기에서 내릴 때 이민국을 통과할 필요도 없다.

프랑스가 5월 중순을 기점으로 서서히 열리기 시작했다. 카페와 식당의 테라스를 뺏긴 파리 시민들에게는 프랑스혁명 기념일보다 더욱 감격스러운 이 역사적인 날을, 종강을 일주일 남겨둔 나와 반 친구들은 제대로 즐기지 못했다. 대신 학교 근처 먹자골목인 무프타르 거리(Rue Mouffetard)를 쭉 지나치는데, 세상에, 이런 풍경은 서울에서도 본 적 없는 것 같았다. 지난 4개월간 쥐 죽은 듯 고요하던 골목이 갑자기 사람들로 바글거리는 광경을 보니 급작스러운 변화에 감각이 충격 받는 것이 느껴졌다. 술에 취한 학생들 틈 사이를 비집고 걸어가며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모니카, 이게 파리야!”

이 점은 이번에 친구들과 함께 바르셀로나로 여행을 가서 더 뚜렷하게 느꼈다. 현재 프랑스는 야간 통금이 오후 11시인 반면,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오전 1시다. 바르셀로나의 바 골목길은 무프타르 거리와 비교도 안 되게 바글거렸다. 사람들이 왁자지껄 마시고 즐기는 모습을 보니 흐뭇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음식을 공유하는 타파스 문화와 낮잠(시에스타) 시간이 따로 있어 저녁을 늦게 먹는 문화가 있는 이 나라 사람들에게 봉쇄령과 야간 통금이 얼마나 타격이 컸을지 상상하게 됐다. 우리나라와 마찬가지로 코로나19 유행에 따른 규제가 가져온 불경기를 견디다 못해 문을 닫은 식당과 상점 문에 걸린 ‘임대 중’ 표시가 꽤 많이 눈에 띄었다.

4년 전 유럽에 여행 왔을 때는 이곳 학교의 학생 신분이 아니었기 때문에 박물관에 입장할 때마다 돈을 내야 했다. 그래서 돈을 아끼느라 종종 끼니를 거르고, 술을 마시는 사치는 절대 부리지 못했다. 이제는 학생 신분으로 굳힌 돈으로 바와 식당에 가는 여유가 생겼다. 테라스에 앉아 있다 보면 적어도 한 시간에 한 번꼴로 홈리스나 구걸하는 사람들을 마주치게 된다. 이들이 구걸하는 것은 동전, 담배, 라이터 등등이다. 유럽이 다시 열리길 기다린 것은 휴가 계획을 짤 여유가 있는 이들만이 아니다.

물론 코로나19 이전에도 대도시에는 홈리스가 많았다. 하지만 파리는 소매치기를 비롯해 홈리스가 특히 많고, 바르셀로나는 관광객을 대상으로 돗자리부터 마약을 파는 상인들이 많으며, 처음 간 포르투는 빈부격차 문제가 심해 보였다. 경관이 아름답고 물가가 싸다는 말만 들은 포르투에는 리모델링을 한 건물 맞은편에 유리창이 몽땅 깨진 건물이, 그 옆에 네온사인 간판을 내건 브런치 가게가 나란히 서 있었다.

바르셀로네타 해변에 한 시간가량 앉아 있는 동안 대여섯 명의 상인들이 나와 내 친구들을 지나쳐 갔다. 친구 한 명은 조금 뒤 무척 슬프다고 말했으며, 계획보다 하루 일찍 부모님이 있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나는 비극에 무뎌진 것일까?


글, 사진/ 문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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