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과 글은 사라지는 순간을 포착해내기 때문에 매력적이지만, 영원히 남는다는 그 특징 때문에 자꾸 신경이 쓰이기도 합니다. 남는 건 사진이라 믿었던 연인이 남은 게 사진뿐인 상태가 되었을 때처럼 말이에요. 사라지고 마는 기억을 포착해내는 매력이 더 크기 때문에 범수는 사진으로, 저는 글로 추억을 남기면서 살아가요.
끊임없이 변하는 세상 속에서 불변하는 사진과 글의 공통점에 대해 대화를 나누는데, 범수가 변하는 고향의 모습에 대해 이야기를 하더군요. 그때 저는 범수의 집을 기록하기로 했습니다. 글을 읽는 동안에나마, 범수가 집에 대한 기억을 영원히 변하지 않는 모습으로 간직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말이에요. 오늘은 범수의 집이 있는 경남 진해로 갑니다.
‘다꾸’처럼
-자기소개 부탁해!
=안녕하세요. 전역을 바라보는 군인, 스물세 살, 김범수입니다.
-군 생활은 어때?
=일주일은 빠른데 하루는 느리고, 하루는 빠른데 한 시간은 느려(웃음). 요새 사람들이 “코로나 아니었으면”이라는 말을 많이 하잖아. 나도 ‘코로나 아니었으면 전역하고 해외여행을 갔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면서 지내.
-여행을 좋아하나 봐.
=여행은 내게 자연스러운 삶의 방식이었어. 초등학생 때는 7번 국도가 우리 집 앞에 있다고 생각했을 정도로 가족과 국내 여행을 많이 다녔었고, 고등학생 때부터 시작한 미국 유학을 시작으로 이 집을 자주 떠났고, 가끔 돌아와서 지내는 삶을 반복했었거든.
-가족여행 중에 사진을 찍는 어머니로부터 영향을 받아, 무려 3년이 넘게 DSLR을 사달라고 졸랐다며?
=엄마는 자그마한 수동 카메라를 들고 다니시면서, 남는 건 사진이라고 하셨어. 사진관에서 사진이 인화되는 과정을 보면서 사진에 대한 호기심이 커졌었는데, 엄마는 초등학생인 내게 카메라가 비싸다는 이유로 잘 못 만지게 하셨고, 중학생 때는 카메라를 사는 것 자체를 반대하셨어. 단적인 예로 휴대폰은 카메라 말고도 다양한 기능들이 있는데 백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살 수 있잖아. 그런데 카메라는 사진만 찍히는 건데 백만 원대라, 엄마는 초기 투자에 대한 고민이 있으셨나 봐. 결국 기나긴 투쟁 끝에 고등학생이 되어서야 돈을 보태주셔서 나만의 카메라를 살 수 있었고, 1년 정도 알래스카의 동네 사진관에서 일도 하면서 사진에 푹 빠져 지냈었지.
-어렵게 얻어낸 디지털카메라보다 수동 카메라를 더 좋아하고 있다고.
=지금의 나는 예술 반 기계 반의 이유로 사진을 좋아해. 결과물로서의 사진도 좋지만 사진을 찍는 과정을 즐기거든. 특히 핫셀이라는 수동 카메라는 정기적으로 검사받고 애지중지하는 내 자식이야(웃음). 관리하기가 되게 귀찮은데 그 과정이 재밌어.
피터 팬처럼
-객지 생활을 하며 느낀 점이 있다고.
=그동안 전라도, 서울, 알래스카, 미국, 인도, 네팔 등 곳곳을 다니면서 다양한 집에서 살았지만, 내 집은 여기가 유일하다는 생각을 했어. 고향집이 있다는 건 안정감을 주더라고. 객지 생활을 오래해서 어디 있든 편하지만 가끔 향수는 찾아오거든. 유학 가서도 할머니가 끓여주신 김치찌개가 그렇게 먹고 싶더라. 그런데 엄마가 해준 반찬과 할머니가 해준 김치찌개의 그리운 감정이 느껴지려면 경남 창원시 진해구에 있는 고향집의 부엌이어야만 해. 다른 곳에서 두 분이 요리를 하셨을 때 맛은 같지만, 여기와 같은 감성이 안 느껴지더라고. 음식에 대한 경험은 맛과 주변 시공간이 어우러져서 느껴지는 복합적인 거잖아. 그래서 우리 동네, 우리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것들은 특별하다는 걸 느꼈어. 우리 동네에만 있는 음식점이 있고, 오래된 우리집에서만 나는 이불과 옷장 냄새 같은 것들 말이야.
-도시에서 지내는 범수가 계절마다 사진을 찍으며 느끼는 감성 또한 자연과 가까이 있는 이 집의 영향을 받은 게 아닐까?
=이 집에서는 계절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어. 지금 기다려지는 계절에 대한 감성은 옥상 다락에서 여름을 온몸으로 느끼는 거야. 옥상방의 창문을 다 열어놓고 속옷만 입은 채 바닥에 누우면 잠이 솔솔 와. 땀을 살짝 흘린 상태로 깬 후에는 냉장고에 있는 수박이나 복숭아를 들고 와서 먹는 감성이 또 있어야지(웃음). 생각해보니, 비 올 때 옥상방에 있는 걸 참 좋아해. 커피 한잔하면서 비 오는 창밖을 바라볼 때 우리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거든. 옥상방의 지붕이 얇아서 장마철에 옥상방에 있으면 리얼 오케스트라야. 가끔 비 맞으려고 창문도 열어(웃음).
-이 공간은 유일하지만, 영원할 순 없으니까.
=큰 틀은 그대로지만 분명 바뀌고 있어. 같이 살던 친구들이 이사를 가거나 자주 가는 음식점이 문을 닫는다거나 이웃집 할머니가 돌아가신다거나. 거의 피터 팬도 아니고, 명절 때마다 오고 싶을 거야. 어린 시절의 그 향수를 느끼기 위해서 말이야. 동네와 집이 천천히 바뀌고 있고 잃는 것도 많아서 슬퍼. 어쩔 수 없다는 걸 알지만 이곳이 안 바뀌었으면 좋겠어. 새로운 것들이야 다른 곳에서도 느낄 수 있잖아. 만약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우리 동네와 우리 집이 그대로라면, 서울에 지내다가 ‘국수 한 그릇 먹으러 가야지.’ 하고 언제든지 내려와서 먹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수가 정말 맛있는 집이 동네에 있었거든. 항상 시험이나 중요한 일이 끝나면 그 집에서 국수를 사 먹었었어. 노부부가 하시는 닭칼국수 집이었는데, 지금 두 분 다 요양원에 계셔서 문을 닫았더라고. 거기가 진해 주민들의 ‘소울 플레이스’였거든. 많이 아쉽지.
-오래 알고 지낸 동네와 사람들 생각이 앞으로 더 많이 나겠지.
=나를 보며 이쁘다 해준 할머니들이 얼마나 많이 돌아가셨는지 몰라. 무엇보다 우리 집에는 할머니가 계시잖아. 할머니가 많이 변하셨어. 예전엔 강단도 있고 에너지가 넘치는 분이셨는데, 피부가 처지거나 근육이 줄어들어 많이 얇아지셨어. 그런 거 보면 가슴이 아프지. 피터 팬 같다고 비유한 내 말에는 할머니도 안 늙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 담겨 있어. 맨날 집에 오면 멸칫국 끓여주실 거고, 장난치면 받아주셨던 게 하나씩 없어지고 있어서 너무 슬퍼.
배를 타듯
-언제 이 집이 가장 생각나?
=이곳은 도시와는 달리 뒤에 산이 있고, 앞에는 바다가 있어서 마음만 먹으면 자연으로 갈 수 있어. 사실 이 집에서 지내면서 느낄 수 있는 감성은 되게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도시는 삭막해서 이 감성을 찾을 수가 없더라고. 그래서 삭막한 기분이 정점에 다다랐을 때 한번 해소해줄 수 있는 곳이 필요할 때, 이 집이 많이 생각나. 도시에서 살다가 가끔 새소리 들으면서 한적하게 이 집에 있으면 좋아.
-또 이 집에서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있다면.
=제철 생선을 먹고 느끼는 것들이 있지. 삼겹살은 사계절마다 맛이 다른 게 아닌데, 생선은 계절마다 먹을 수 있는 게 있잖아. 봄에는 멸치가 생각나고, 여름에는 민어, 가을엔 우리 동네 명물인 전어가 생각나. 객지 생활을 하기 전에는 왜 다들 전어에 미치는 건지 몰랐어. 나는 맨날 먹던 거였으니까(웃음). 생각해보니 이 집은 봄, 여름, 가을은 진짜 재밌는데, 겨울은 재미없다는 생각이 드네. 이 동네 겨울은 눈이 오는 것도 아니거든. 생각나는 건 따듯한 방바닥인데, 여기가 단독주택이라 외풍이 심해. 그래서 등은 따듯한데 코가 시려. 엄마가 되게 싫어하는데 나는 위로 서늘한 기분은 좋더라고.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오래된 동네와 단골 음식점, 자연환경과 어우러져 있는 우리 집이 좋아. 동네와 집이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 이 집과 동네를 구성하는 사람들이나 환경이 많이 달라지고 있다는 걸 느껴. 피터 팬처럼 이 공간이 영원히 변하지 않고 남아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내 기억 속의 동네가 다른 모습으로 변화하는 걸 겪어보지 못한 사람으로서 무섭거든.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 공간이 없었던 적은 없으니까, 고향집의 풍경이 달라진 삶에 대해 상상하기가 정말 힘든데, 변화된다면 많이 그리울 거야.
글/ 손유희, 사진/ 김범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