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55 컬쳐

7월의 TV

2021.08.04 | 매회 레전드 찍는 축구팀!

SBS '골 때리는 그녀들'

주변엔 ‘꼴찌’ 팀을 응원하는 친구가 꼭 한 명쯤 있다. 언제 이기려나, 기다리다 보니 몇 년이 흘렀다면서 씁쓸해하고, 이기는 팀을 부러워하지만 응원 팀을 바꾸진 않는다. 강팀이 모범적으로 이기는 순간도 물론 아름답지만, 최약체의 승리는 늘 짜릿하다. 이번 시즌에서 여섯 팀으로 나뉘어 경쟁하지만, 경기를 보면 골 때리는 ‘그녀들’은 어째선지 하나의 팀으로 보인다.

그간 예능은 여성의 승부욕을 게으르게 부각했다. 요약하면 ‘기싸움 벌이느라 바쁜 독한 년들’ 정도일까. 물론 <골 때리는 그녀들>에도 남성에겐 붙이지 않는 ‘악바리’나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며느리’ 같은 단어가 등장하지만, 막강한 에너지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 앞에서 그런 자막은 초라해진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점점 더 솔직해진다. 그 면모는 한국 예능이 만들어온 ‘무서운 여자들의 기싸움’ 따위의 환상과는 딴판이다. 이긴 팀에 축하를 전하고 진 팀을 격려한다. 페어플레이를, 스포츠맨십을 실천한다. 더불어 자만과 허세, 자신감도 한껏 드러내고 절호의 기회를 날리면 크게 실망하기도 한다. 마음껏 울부짖고, 목청 터지도록 “집중!”을 외친다. 한국 축구 거장인 팀 감독들이 룰을 설명할 때,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실수를 면밀히 분석하면서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 선수들의 태도가 경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축구 선수 정대세와 결혼한 후 승무원 일을 그만두었다는 명서현은, 남편이 선수로 뛰고 있는 일본에 “안 가고 싶다.”며, 축구를 하는 지금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개그우먼 신봉선은 “내 정체성을 잘 모르겠다. 축구 외엔 모든 생활이 엉망”이라고 털어놓는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골때녀’들은 ‘과몰입’하지 않았다. 몇 달간 발톱이 빠져라 연습한 때부터, 스포츠라는 드라마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여자들에겐 경기장을 맘껏 뛸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 선수들을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하는 최약체라고 생각했다. 경솔한 착각이었다. 이들은 체력도, 집중력도 좋다. ‘그냥’ 잘한다. 승부차기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선수들의 눈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겼다.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여자들의 반짝이는 말이, 여자는 원래 운동과 거리가 멀다고, 얌전히 앉아 예쁘게 꾸미고 있는 게 최고라고 말해온 사회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분명 벅차다.

축구 중계에선 공이 거쳐 가는 발의 주인공,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골을 넣고 준수한 선방을 하는 것 외에도, 공을 따라가는 모든 순간은 선수들이 간절히 원했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이다. 이번 시즌 첫 경기를 명승부로 멋지게 시작한 ‘FC 월드 클라쓰’ 사오리 선수의 말대로, 축구에서도 삶에서도 그들의 결심은 이루어질 것이다. “나, 이길 거야.”

SBS 수요일 밤 9시 방송


글. 황소연

사진. SBS 방송화면


1 2 3 4 

다른 매거진

No.330

2024.12.02 발매


올해의 나만의 000

No.330

2030.03.02 발매


올해의 나만의 000

No.329

2024.11.04 발매


요리라는 영역, 맛이라는 전개

《빅이슈》 329호 요리라는 영역, 맛이라는 전게

No.328B

2027.05.02 발매


사주 보는 사람들, 셀프 캐릭터 해석의 시대

《빅이슈》 328호 사주 보는 사람들, 셀프 캐릭터 해석의 시대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