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BS '골 때리는 그녀들'
주변엔 ‘꼴찌’ 팀을 응원하는 친구가 꼭 한 명쯤 있다. 언제 이기려나, 기다리다 보니 몇 년이 흘렀다면서 씁쓸해하고, 이기는 팀을 부러워하지만 응원 팀을 바꾸진 않는다. 강팀이 모범적으로 이기는 순간도 물론 아름답지만, 최약체의 승리는 늘 짜릿하다. 이번 시즌에서 여섯 팀으로 나뉘어 경쟁하지만, 경기를 보면 골 때리는 ‘그녀들’은 어째선지 하나의 팀으로 보인다.
그간 예능은 여성의 승부욕을 게으르게 부각했다. 요약하면 ‘기싸움 벌이느라 바쁜 독한 년들’ 정도일까. 물론 <골 때리는 그녀들>에도 남성에겐 붙이지 않는 ‘악바리’나 가족 관계를 강조하는 ‘며느리’ 같은 단어가 등장하지만, 막강한 에너지로 경기를 펼치는 선수들 앞에서 그런 자막은 초라해진다.
선수들은 그라운드에서 점점 더 솔직해진다. 그 면모는 한국 예능이 만들어온 ‘무서운 여자들의 기싸움’ 따위의 환상과는 딴판이다. 이긴 팀에 축하를 전하고 진 팀을 격려한다. 페어플레이를, 스포츠맨십을 실천한다. 더불어 자만과 허세, 자신감도 한껏 드러내고 절호의 기회를 날리면 크게 실망하기도 한다. 마음껏 울부짖고, 목청 터지도록 “집중!”을 외친다. 한국 축구 거장인 팀 감독들이 룰을 설명할 때, 이해하지 못한다는 걸 부끄러워하지도 않는다. 실수를 면밀히 분석하면서도 서로를 비난하지 않는 선수들의 태도가 경기를 더욱 극적으로 만든다.
축구 선수 정대세와 결혼한 후 승무원 일을 그만두었다는 명서현은, 남편이 선수로 뛰고 있는 일본에 “안 가고 싶다.”며, 축구를 하는 지금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개그우먼 신봉선은 “내 정체성을 잘 모르겠다. 축구 외엔 모든 생활이 엉망”이라고 털어놓는다. 행복해 보이는 표정으로. ‘골때녀’들은 ‘과몰입’하지 않았다. 몇 달간 발톱이 빠져라 연습한 때부터, 스포츠라는 드라마 안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여자들에겐 경기장을 맘껏 뛸 기회가 별로 없었다는 사실만으로, 나는 이 선수들을 이제 막 축구를 시작하는 최약체라고 생각했다. 경솔한 착각이었다. 이들은 체력도, 집중력도 좋다. ‘그냥’ 잘한다. 승부차기에서 간발의 차이로 패배한 선수들의 눈물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감동을 안겼다. “축구가 이렇게 재미있는 줄 몰랐다.”는, 여자들의 반짝이는 말이, 여자는 원래 운동과 거리가 멀다고, 얌전히 앉아 예쁘게 꾸미고 있는 게 최고라고 말해온 사회에서 탄생했다는 점은 분명 벅차다.
축구 중계에선 공이 거쳐 가는 발의 주인공, 선수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호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경기는 진행되지 않는다. 골을 넣고 준수한 선방을 하는 것 외에도, 공을 따라가는 모든 순간은 선수들이 간절히 원했던 ‘이름’으로 불리는 순간이다. 이번 시즌 첫 경기를 명승부로 멋지게 시작한 ‘FC 월드 클라쓰’ 사오리 선수의 말대로, 축구에서도 삶에서도 그들의 결심은 이루어질 것이다. “나, 이길 거야.”
SBS 수요일 밤 9시 방송
글. 황소연
사진. SBS 방송화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