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62 인터뷰

더할 나위 없어요

2021.11.28 |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

스물네 살 대학생 승혁이는 그의 블로그를 통해서 우연히 알게 됐어요. 누군가의 일기를 합법적으로 볼 수 있는 블로그의 이웃 중 한 명이었죠. 그는 딱 봐도 여느 INFP 유형 사람들처럼 감수성이 흘러넘쳐 보였어요. 강하지만 어딘가 부드러운 얼굴을 가진 그는 시골 오솔길에서 빛나는 햇살을 맞으며 자전거를 타는 자신의 모습이나, 알록달록 유화물감으로 그린 그림들, 직접 반죽해 만든 쿠키들을 블로그에 차곡차곡 올렸어요. 저는 자연스럽게 다양한 취미를 즐기며 자유로운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에 매료됐어요. 그리고 이 인터뷰를 제안하게 됐죠. 살다 보면 누군가를 이끄는 매력과 다가가는 매력이 서로 마주치는 순간이 있고, 그것을 우리는 인연이라고 부르는 것 같아요. 그 주제에 대해서 잠잠히 생각하다 ‘인간에 대한 순수한 호기심’이라고 뭉뚱그렸어요. 다시 표현하자면, 잃어버린 아름다움을 찾는 과정이랄까요. 우리가 성인이 되어도 내면에 간직한 어린 시절의 순수 같은 것들. 그런 누군가를 곁에 두고, 보고, 듣고 싶은 때가 있잖아요. 글을 쓰는 저는 모르는 사람을 만나면 종종 자유로워지는 듯하거든요. 부끄러운 속마음을 내비칠지라도 그냥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하염없이 듣고 싶은 날이 있어요. 그렇게 다른 공간에서 다른 시간을 살고 있는 승혁이의 이야기가 궁금해 기차를 타고 부산에 갔습니다. ‘평범한 사람이 나는 좋아요. (…) 평범한 사람의 일기장 속에는 자신에 대한 질문으로 가득 차 있어요.’ 가는 내내 가수 이랑의 노래 ‘평범한 사람’의 노랫말을 되뇌고 있었죠.

어떻게 부산에 오게 됐어?
부산과 대구에 있는 대학에 붙었는데, 대구는 원래 살던 곳과 가까워서 되도록 멀리 가고 싶었어. 그래서 부산에 오게 됐지. 낭만이 있어서 온 건 아니야. 힘들었던 그때 그 시절과 거리를 두고 새롭게 살고 싶은 마음으로 온 거 같아.

이 집에 와서 가장 좋았던 기억은 뭐야?
우리 집에서 친구들의 생일 파티를 자주 해. 그런 날엔 밤늦게까지 놀다가 친구들이 한 번씩 자고 간단 말이야. 그런 날이면 친구들이 아침에 일어나지도 못할 정도로 숙면을 취해. 심지어 불면증이 있는 애들도 우리 집에 오면 신기할 정도로 잠이 잘 온다고 해. 우리 집에 잠옷을 놔두고 주기적으로 와서 자고 가는 친구들도 있어.

너는 전원생활을 한 경험이 있고, 개성도 강하잖아. 너만의 공간을 어떻게 꾸미고 싶었어?
이 집에 처음 이사 올 때는 꼭 필요한 것만 두고, 요즘 스타일에 맞게 깔끔하고 미니멀한 공간으로 꾸며야겠다고 생각했어. 그런데 살다 보니까 집이라는 게 사는 사람의 성격과 취향을 따라가는 것 같아. 의도한 건 아닌데, 자꾸 뭘 채우고 좋아하는 걸 놔두다 보니까 이 집에 산 지 1년이 지난 지금 이 집이 ‘나와 꼭 닮은 공간’이 된 것 같아.

이 집의 어떤 점이 너랑 닮았다고 느껴? 우선 첫인상은 식물이 많아서 생기가 있다고 할까? 침대나 책상 위치도 자주 바꾸고 변화를 준다고 했잖아. 그것도 너의 성격과 닮은 거야?
우선 시커멓고 칙칙한 것보다도 밝고 생기 있는 게 좋아. 친구들 말로는 내가 30초마다 기분이 바뀐대. 오죽하면 다 결정하면 말하라고 할 정도로 변덕이 심하대. 감정도 순간순간 바뀌어서 한순간 엄청 우울했다가 갑자기 밝아지기도 하고. 인테리어에도 내 감정 변화와 마음 상태를 반영하는 것 같아. 가끔 이런 내가 예민하게 느껴질 때도 있는데, 그래서 좋은 점도 많아. 재미있게 살 수 있잖아.

근데 얼핏 보기에도 자유분방하고 재능이 많은 것 같아. 지금 이 테이블과 스탠드의 그림도 본인이 직접 그린 거잖아. 자기 자랑을 한번 해볼래?
잘하는 건 아니어도 취미가 많아. 그림은 기쁘거나 우울할 때 그려. 그때의 기분을 잊고 그림으로 간직하고 싶을 때. 식물은 조금 시들었다가도 물을 주면 금방 변화가 나타나는 점이 참 좋아. 집에 있을 때 쿠키나 빵을 굽기도 해. 가까운 사람들에게 선물하면 다들 맛있게 먹어주더라고. 그래서 자꾸 이번에 뭘 넣어볼까 궁리하고 실험하다 보니까 레시피를 안 보고도 만들 수 있게 됐어. 베이킹은 계량이 굉장히 중요한데 나는 정해진 대로 안 하고 내 멋대로 만들어. 기분에 따라서 흑설탕을 넣고 싶으면 넣고, 백설탕을 넣고 싶으면 넣고, 그날그날 마음 내키는 대로 하는데 결과물이 꽤 그럴싸해.

이 집에서 가장 애착을 느끼는 물건이 무엇인지 궁금해.
이 집에 처음 왔을 때, 혼자 가만히 있으면 생각에 깊이 빠지니까 뭐라도 하려고 물감을 사서 마음 가는 대로 캔버스에 그렸어. 처음엔 붓도 없이 손가락으로 그렸는데, 다 그리고 나니까 그날 하루 동안 휩싸여 있던 고민이 마법처럼 싹 없어지는 거야. 다 그려진 그림을 보니까 ‘어, 나 좀 잘 그렸는데’, ‘손에 물감이 많이 묻었으니까 씻어야겠다’ 하는 생각밖에 안 났어. 그림을 그리기 전에 든 우울한 생각을 그림에 가둬버린 거야. 그래서 이 그림을 볼 때마다 그때 그 감정을 멀리서 두고 바라볼 수 있게 됐어.

혼자만의 시간에는 주로 어떻게 보내?
내가 감정 기복이 심한 편인데, 혼자서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공허하기 이를 데 없어. 미래를 생각하면서 아무것도 안 한다는 것 자체가 너무 힘들고 외로운 마음이 들어서 혼자 있을 때 하는 일들이 자연스럽게 취미가 됐어. 침대에 가만히 누워 있는 시간은 잘 때 말고는 없는 것 같아. 가끔은 남들처럼 침대에 널브러져 쉬고 싶은데 아직은 그게 잘 안 돼.

부산은 너에게 의미 깊은 곳인데, 왜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요즘은 부산을 떠나고 싶어. 이 도시가 내겐 너무 답답해. 산책하다가 길에 마구 버려진 쓰레기나 도로 위의 시끄러운 오토바이들을 마주할 때도 그렇고. 건물 사이에 나를 가둔 기분이 들어서 종종 떠나고 싶다는 생각을 해. 물론 서울은 호기심이 생겨 가고 싶지만. 서울은 부산보다 더 큰 도시잖아. 그곳에서 살고 있는 사람들이 궁금해.

인스타그램이나 블로그, 유튜브에 ‘No better Feel-ing’이라는 닉네임을 쓰는 이유가 궁금해.
가수 씨엘의 노래 제목인데, 스물한 살 때 그 노래를 듣고 제목이랑 가사 내용이 마음에 와닿았어. 직역하면 ‘더할 나위 없다’는 뜻이야. 내가 이해한 바로는 항상 지금 느끼는 감정을 맘껏 누리자는 거야. 많은 사람이 나중에야 지난 시절을 그리워하잖아. 갓 스무 살 된 사람들은 고등학생 때가 좋았다고 하고, 30대가 되면 20대가 좋았다고 하고 말야. 사람들은 지금이 가장 좋은 때라는 걸 잊고 새로운 시작 앞에서 망설이는 것 같아. 누구나 지금이 가장 좋은 나이고, 다 좋을 때라고 생각해. 난 다 지나고 나서 후회하고 싶지 않아. 그래서 지금의 나를 온전히 좋아하려 노력하고 있어. 무언가를 시작하기에 너무 늦은 나이도 없고, 너무 이른 나이도 없다고 생각해.

앞으로 어떤 사람이 되고 싶어?
늘 지금처럼 더할 나위 없이 살고 싶어. 나이를 먹어도 매 순간 설렘을 느끼고, 새로운 것을 좋아하면서. ‘나는 나이가 있어서 못 해’ 같은 후회하는 마음 없이. 늘 현재 기분과 상황에 충실하고 과분하게 바라지 않으며, 내가 갖지 못한 걸 가진 사람들을 부러워하지 않고 내가 가진 걸 소중히 가꾸며 살고 싶어. 또 외로이 홀로 상심에 빠지기보다는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거움을 나누며 살았으면 좋겠어.

기사 <더할 나위 없어요>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 262호에서 만나보실 있습니다.


정규환
사진 태평


1 2 3 4 5 

다른 매거진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