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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4 컬쳐

내적 친밀감, 그 잔잔한 마음에 대하여

2021.12.06 | 디저트가 필요한 순간

10대 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냈다. 그러나 그 시절 나의 목표는 그곳을 떠나는 것이었다. ‘말은 나면 제주로 보내고, 사람은 나면 서울로 보내라’는 오랜 격언을 굳게 믿으시던 부모님의 영향도 있었지만, 나 스스로도 어디든 지금 있는 이곳 바깥으로 가고 싶은 마음이 컸다.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말마따나 어떻게든 상경하게 되어 이제는 대전에 있던 시간보다 더 오랜 시간을 서울에서 보내고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마음 한구석에 고향으로 자리 잡은 곳은 여전히 대전이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대전에서 보낸 때문인지 대전에 대해 생각하면 언제나 마음이 애틋하다.

[© 김여행_퍼플피그]

그러다 보니 어쩌다 대전에 살던 사람을 만나면 괜스레 반갑다. 분명 나와 다른 동네, 다른 시기에 살았을 것을 알면서도 그 작은 연관성만으로 마음속 친밀감이 한층 더 깊어진다. 이런 ‘내적 친밀감’은 비록 상대와 직접적으로 아는 사이는 아닐지라도 상대에 대해 은은한 관심과 따뜻한 시선을 갖게 만들어준다.
이런 까닭일까. 대전에 있던 어느 파티세리[최현1] 가 서울로 이전해 오픈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에도 마치 예전부터 알고 지내던 친구가 상경한다는 소식을 접한 듯한 기분이 들었다. 아직 가보지 못한 곳이었음에도 그랬다. 수준 높고 인상적인 디저트를 선보인다는 소식을 종종 듣고 대전에 갈 일이 있으면 꼭 가봐야겠다고 생각하고 있던 터였다. 그런데 내가 대전에 가는 것보다 그곳이 서울로 이전하는 것이 먼저가 될 줄이야! 예상 밖의 일이지만 주로 서울에서 지내는 내게는 희소식이었다. 만약 이곳이 계속 대전에 있었다면 분명 언젠가는 가봤을 테고, 그러다 마음에 쏙 들어 이곳에 가기 위해 대전에 더 자주 가게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니까. 나로서는 미래의 교통비를 제법 절약(?)하게 된 셈이다.

서울에서 오픈할 날을 기다리던 올해 3월, 드디어 지하철 7호선 강남구청역 근처에 그곳이 새로이 오픈했다. 대전에 있을 때와 같은 ‘트릴로지’라는 이름으로. 가게의 공간은 심플한 게 최고라고 웅변하는 듯 간결하고 블랙과 그레이 톤으로 차분하게 무게감을 잡은 분위기다. 프티 가토는 무스 케이크와 타르트, 베린 위주고, 구움과자와 사블레도 실속 있게 대여섯 가지를 판다. 새로운 프티 가토가 나올 때면 어김없이 들르는데, 하나같이 밸런스가 무척 잘 잡혀 있으면서도 트릴로지만의 개성이 담겨 있다. 그래서 계절마다 그때그때 마음에 남는 디저트가 꼭 하나씩은 있다. 봄에는 우아한 제비꽃을 담은 베린 ‘바이올렛’이 너무나 아름다웠고, 여름에는 말차의 싱그러움과 유자의 상큼함을 조화롭게 표현한 타르트 ‘베르’가 마음에 꼭 들었다.

[© 김여행_베르]

가을에는 무화과의 장점을 최대한 이끌어낸 무스 케이크 ‘퍼플 피그’가 무척이나 인상적이었으며, 겨울에 선보인 귀여운 커피잔 모양에 은은하게 감도는 팔각 향이 매력적인 캐러멜 무스 케이크 ‘둘세’ 또한 좋았다.
대전에서 온 곳이라는 사실만으로도 반갑고 좋은데, 심지어 디저트도 듣던 대로 하나같이 맛있고 매력적이니 이 이상 더 바랄 게 있을까 싶다. 그런데 트릴로지는 3부작이라는 뜻을 가진 이름에 걸맞게 디저트뿐 아니라 여러 콘셉트의 가게를 계획하고 있어 조만간 식당도 오픈을 준비 붕이고, 트릴로지 또한 리브랜딩을 통해 추구하는 방향과 콘셉트를 더욱 명확히 구축할 예정이라고 한다. 12월이 지나고 내년이 올 때쯤이면 조금 더 새로워진 트릴로지를 만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니 무척 기대된다. 이제는 단순히 대전이라는 연관성을 넘어, 시간과 함께 켜켜이 쌓인 내적 친밀감에서 비롯된 잔잔한 마음으로 그 행보를 응원한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4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트릴로지 trilogy
서울시 강남구 선릉로134길 5, 1층
12:00~19:00(상품 소진 시 마감)
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patisserie_trilogy


글 | 사진. 김여행
먼 타지로 떠나는 여행이든, 동네 카페 투어든, 항상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하는 가장 보통의 직장인. twitter @_trave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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