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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8

홈리스가 확진자가 되었을 때

2022.02.14

[©gettyimageskorea]

내가 몸담은 시설에서도 코로나19 감염의 두려움이 현실이 되는 일이 생겨버렸다. 벌써 한 달도 더 지난 일이 되었지만, 지금까지도 그때 일이 날짜와 시간별로 생생하다.
시작은 지난해 12월 10일 오후 2시쯤이었다. 거의 두 해를 무사히 지나올 수 있었던 지난날의 요행이 와르르 무너지는 날이었다. 주민센터에 간다며 나갔던 은희(가명) 님이 전화를 해왔다. 우리 시설의 잠자리를 이용하다가 인근 고시원을 얻어 독립한 지 3일쯤 되는 때였는데, 그날까지도 짬이 나지 않아 전입신고를 못했다며 주민센터에 간 터였다. 떨리는 목소리로 “방금 보건소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제 PCR 검사 결과가 양성이래요.” 하는 거였다. 백신 접종은 했지만 코로나19 선제검사를 받은 지 한 달이 지난 게 마음에 걸려 전날 선별진료소에서 검사를 받았단다. 가슴이 철렁했다. 열이 나거나 어디 아픈 데가 있냐 물었다. 그렇진 않다고 해서 너무 걱정 말라 위로하고, 보건소에서 어떻게 하면 되는지 연락해줄 때까지 일단 기다려보라 했다.
서둘러 비상연락망의 몇 개 기관에 전화를 했지만 계속 통화 중이었다. 그사이 은희 님의 동선을 복기하며, 누가 그녀와 가까이 지냈는지, 그때 마스크는 잘 쓰고 있었는지 우리끼리 역학조사를 해보느라 얼마간의 시간이 흘렀다. 문득 은희 님 쪽엔 무슨 연락이 갔나 싶어 전화를 걸었다. 지금 어찌하고 있냐니까 주민센터 옆 공원이라며 훌쩍이기 시작한다. 그날은 마침 한동안 따스했던 날이 물러가고 동장군이 위용을 보이던 차가운 날이었다. 날도 쌀쌀한데 공원에서 왜 그러고 있냐 묻자, 고시원엔 사람들이 많이 사니 가지를 못하겠단다. 그렇다고 길거리에서 언제 걸려올지 모르는 보건소 전화를 기다릴 수는 없지 않느냐 하고는, 마스크 잘 쓰고 얼른 고시원으로 가서 방에서 쉬고 있으라 했다. 하지만 한 시간 후 다시 전화했을 때도 그녀는 여전히 공원에 앉아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울고 있었다. 자신이 확진되어 혹시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킨 것은 아닌지 걱정되고 미안해서 그런다면서. 그간 마스크도 잘 쓰고 방역수칙을 열심히 지켰는데 감염된 것은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달래서 고시원으로 가도록 했다.
고시원에 가면 먼저 관리자에게 확진 사실을 알려야 할 거 같다기에, 우리도 고시원 관리자에게 연락해
사정을 설명하겠노라 했다. 고시원의 다른 분들이 감염되지 않도록 그쪽도 소독과 마스크 착용, 환기 등을 신경 써주십사 하는 취지로. 한데 이후 은희 님이 전화를 해와서는 고시원 관리자가 다른 입실인들에게
어떻게 얘기했는지 몇 사람이 문 앞에서 ‘고시원에서 나가라.’며 소리를 치고 있다며 어쩌면 좋냐고 호소하는 거였다. 확진 소식을 알려올 때보나 더 불안한 음성이었다. 세상에!, 그때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가 고시원 작은 방이었는데 그곳에서 나가라니. 고시원 관리자와 다시 통화를 하여 그런 대응은 부당하다고,
은희 님도 최대한 다른 분들과의 접촉을 피하며 마스크와 비닐장갑을 착용하고 지내기로 했으니 잘 좀 설명해 달라고, 지레 겁먹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도움이 안 된다고 설득하였다.

공동생활을 하는 보호시설의 고난
많은 여성들이 이용하는 일시보호시설이니 누구 한 명의 감염은 그것으로 그치기 어렵다. 은희 님은 시설 잠자리를 이용하던 분이고, 고시원에 가고 나서도 월세를 마련해야 한다며 매일 시설로 출근해 자활근로를 하던 분이었다. 물론 마스크는 쓰고 있었다지만 한방에서 몇 시간을 함께 지내고 한 공간에서 밥을 먹은 분이 확진이 되었다니 그보다 걱정되는 일이 없었다. 시설이 당장 해야 할 조치는 무엇인지 확인하려 보건소에 전화하였으나, 보건소 전화는 폭주하는 업무 때문인지 불통. 저녁 시간이 다 되도록 통화가 힘들었다. 초초한 마음으로 기다림뿐인 시간이 흘러갔다. 그사이 실무자와 시설을 이용하던 홈리스 여성들은 PCR 검사를 진행했다. 실무자가 홈리스 여성 몇 명씩을 태워 몇 차례 선별진료소까지 실어 날랐다. 그 와중에 한 고령의 여성은 백신주사 맞으면 코 아픈 검사 안 해도 된다 해서 분명히 주사도 맞았는데 왜 또 해야 하냐며 검사를 못 받겠다고 버텼다. 설득해 차에 태웠지만 분이 풀리지 않았는지 운전하는 실무자의 얼굴을 밀쳐버렸다. 그렇게 어렵게 간 선별진료소에는 우리 말고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긴 줄을 서 있었다. 그 줄 끝에서 대기자들이 줄어 차례가 올 때까지 한 시간씩을 기다려 전체가 검사를 끝난 시간은 밤 9시 즈음이었다.
저녁 무렵엔 보건소와도 통화가 되어 역학조사가 이루어지고, 은희 님과 한방, 한 호를 썼던 몇 분은 밀접접촉자 혹은 수동감시대상자로 분류되었다. 그리 되면 사람들과의 접촉을 최소화하기 위해 자가격리를 해야 한다. 문제는 이분들이 자가격리를 할 자기 방이 없는 홈리스 여성들이라는 거다. 어쩔 수 없이 한
호에 모여서 다른 분들과 접촉하지 않고 식사하도록 하며 독립 방에서 지낼 수 있는 곳을 물색했다.
다행히도 노숙인시설협회에서 이런 사정에 처한 홈리스 임시보호를 위해 임대한 호텔에 빈 방이 있다는 연락을 받았다. PCR 검사 결과만 음성이면 2차 검사를 받아 최종적으로 감염 여부를 확인하기까지 이용할 수 있다는 전갈이었다.
다음 날까지 불안한 기다림의 시간이 흘렀다. 속속 검사를 받는 분들이 음성이라는 문자가 오기 시작했다. 오전에 검사 결과가 음성으로 확인된 밀접접촉 홈리스 여성 여섯 분은 임시보호호텔로 갔다. 오후가 되어서 은희 님이 생활치료시설로 이송되었다. 그리고 유독 검사 결과 연락이 없어 걱정하던 세 분은 추가 확진자라는 걸 확인했다. 오후 4시가 넘은 시간이었다. 시간을 보니 당일 치료 시설을 찾아서 이송될 수 있을 것 같지 않았다. 세 분의 여성은 또 시설의 한 호를 비우고 따로 지내며 치료 시설 이송을 기다려야 했다. 식사를 문 앞에 놔 드리고, 전화로만 소통했다. 사실 별 증상이 없는 분들은 집에서 상태를 살피며 지내는 것이 권장되고 있지만, 자기 집, 자기 방이 없는 홈리스들은 한 사람의 감염이 다른 사람들의 감염으로 이어질지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치료 시설에 가지 않을 수 없다. 하루를 꼬박 기다려 두 분이, 다다음 날 한 분이 각각 생활치료시설로 갔다. 그 며칠간의 걱정, 불안, 초초, 기다림이란….

위태로운 하루하루를 넘기며
치료 시설에 간 확진자 홈리스 여성들도, 밀접접촉자로 자가격리를 위해 호텔로 간 여성들도 기대보다 좋은 환경에 꽤 만족해했다. 이송될 때까지 시설의 한방에 모여서 자신과 타인을 함께 걱정하며, 지은 죄도 없이 미안해하던 거에 비하면 그곳은 쾌적하고 미안해할 필요도 없는 곳이었던 듯하다. 방에서 꼼짝 못 하는 생활에 잘 적응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이 기우일 정도였다. 어떤 홈리스 여성 한 분은 ‘대박이에요’라는 문자를, 또 다른 여성은 호텔같이 훤한 생활치료시설 사진을 보내왔으니 말이다. 공원에서, 고시원에서, 눈물바람이던 은희 님도 특별히 아픈 데 없다며 곧 나가게 될 거라고, 밝은 소리로 소식을 전해왔다. 코가 맹맹해지도록 울던 확진된 날의 두려움은 없는 듯해 참 다행이었다.
자가격리를 위해 호텔로 떠났던 여성들은 10일쯤 지나 두 번째 검사 결과가 음성인 것을 확인한 후 시설로 돌아왔다. 은희 님과 다른 세 분의 홈리스 여성 확진자분들도 2주쯤 있다가 치료 시설에서 나왔다. 여러 모로 천만다행이라는 건 이런 때를 두고 하는 말인가 보다 싶은 시간들이 그렇게 지났다. 많은 시민들이 코로나19로 삶의 위기를 겪고 있을 것이다. 독립 주거지가 없는 홈리스 여성들 역시 집마저 안전을 담보할 수 없는 위태로운 환경 속에서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8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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