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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8 컬쳐

웰컴 투 스시월드

2022.02.15

지구에서 가장 예약이 힘들다는 스시 집이 있다. 인기 많은 수업의 수강신청보다 힘든 예약 난이도를 자랑하고, 무려 실검에도 오르는 그런 곳이 있다고 했다. 도시 괴담이 아니고 여의도에서 시작해 오마카세 전성시대를 연 어느 식당의 이야기다.
괴담이 무성한 그곳은 가성비라는 키워드로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었다. 손에 잡히는 작은 스시를 계기로 사람과 사람을 잇는 온정이 있고 가게 안은 대화의 온기가 가득했다. 사람들은 놀이공원에 온 것처럼 들뜬 표정이었고 흥겨운 90년대 음악은 식사 시간을 충만하게 채웠다.

테마파크의 개장음이 들리면서 예약에 성공한 이들이 차례로 입장했다. 아직 앳된 얼굴의 연인도, 중년을 넘긴 부부도 상기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성인이 되면서 무언가에 설렌다는 건 참 어려운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어느 식당의 음식이 먹기도 전에 누군가에게 설렘을 준다는 건 대단한 일이고, 이미 이곳의 팬덤은 이 작은 오피스 상권을 넘어 전국으로 번지고 있다.
여의도의 축복이라 불리는 아루히는 명실상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예약이 힘든 스시 집이다. 미슐랭 스타를 받은 곳보다 예약이 힘든 곳이자, 미식가부터 입문자의 입을 두루 만족시키는 몇 안 되는 곳이다. 아루히는 당분간 본점은 문을 닫고 2호점 격인 아루히 니와만 영업을 계속 한다고 했다. 영업시간 제한으로 한 타임만 운영을 해서 희소성이 더 높아졌다. 오픈한 지 10분이 되지 않아 예약을 한 사람들이 모두 자리에 앉았고, 일말의 주저 없이 메인 셰프가 식사의 시작을 힘차게 알렸다.
스시는 고가의 음식이다. 2010년 초반에만 해도 정통 스시 오마카세는 고가의 식사에 비용을 지불하는 일부 미식가들에게만 허락됐고, 당시에만 해도 하이엔드, 미들급으로 나누기에 수도 충분하지 않았다. 강남의 몇몇 상징적인 식당 외에 호텔을 가는 게 가장 안전한 선택이었다.
아루히를 기점으로 오마카세는 이제 대중적인 흥행의 필수 아이템이 됐다. 기존의 스시 집에서 고요한 분위기에서 날카롭게 재단된 칼맛을 음미했다면 아루히는 그와는 완전히 다른 노선을 택했다. 편안하고 안락한 분위기에서 90년대 노래를 들으며 자신만의 향수에 젖어 저렴한 가격으로 코스를 즐긴다. 크게 웃어도 좋고 술도 기분껏 마신다. 가면을 벗고 먹고 마시는 과정에서 사람들은 행복에 취한다. 아루히의 사장님은 돈을 벌기 위한 수단이 아닌 스시를 먹는 모든 이들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바람만 가지고 이런 독특하면서 어려운 영업을 이어간다.

격조가 아닌 입 속 행복을 택한 스시 집
누구나 첫 고급 레스토랑의 경험은 각별하다. 나의 첫 스시 경험은 청담동의 어느 식당이었다. 20대 후반에 첫 방문을 한 그곳은 유난히 무거운 분위기로 나를 압도했다. 강남 3대 스시 집 출신의 어느 셰프님이 문을 연 곳이었는데 접객이 불편한 부분은 없었지만, 가격이 불편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지금도 경제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당시에는 한 끼에 10만 원이 넘는 돈을 지불하기에는 경험도 능력도 부족했다. 같이 자리한 친구는 나름 일본에 교환학생도 다녀온 친구였지만, 재료에 대한 설명만 알아듣는 수준이어서 아쉽게도 편안한 식사를 할 수 없었다. 결국 꾸역꾸역 먹은 스시는 급체를 했고, 당분간은 몸에 맞지 않는 옷을 입지 않기로 하고 열심히 국밥을 먹으러 다녔다.
새로운 것을 받아들이기 가장 쉬운 방법은 자신만의 방식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본토의 저렴한 ‘다찌노미야’(서서 마시는 술집)부터 시작해 몸이 익숙하게끔 충분히 일본 음식의 내공을 쌓았고, 차츰 여러 스시 집을 섭렵했다. 물론 많은 비용과 시간이 들었지만 그 과정에서 얻은 것이 더 컸다.
아루히에서는 저렴한 식사 비용 대신 사케로 열심히 달려주는 것이 예의다. 첫 웰컴 디시로 문어가 나오고 물 흐르듯 사시미와 생선이 나왔다. 흰 살 생선부터 시작해 붉은 살 참치로 이어지는 스시로드에서 술은 열심히 윤활유 역할을 한다.
청어가 단숨에 입을 사로잡기도 하고 익힌 전복이 입을 이완시키기도 하면서 여정은 클라이맥스를 향해 달린다. 베스트는 단연 뛰어난 감칠맛을 가진 적신(참치 등살)이였다. 스시의 신이라 불리는 일본의 ‘지로’는 적신을 참치 최고의 부위로 꼽았다. 간장을 바른 붉은 살코기는 그날따라 유난히 혀에 감기면서 얼얼해진 미각에 명징한 인장을 찍었다. 이후에 먹은 것들은 기억이 희미하다. 90년대의 감성이 흐르는 음악을 배경으로 먹고 마시는 사이 어느새 마감 시간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테마파크의 폐장 음악이 들리면서 식사가 마무리되자 모두가 아쉬워하면서 동시에 주먹만 한 후토마끼를 입안 가득 넣고 행복해하고 있었다. 먹는 이의 이런 원초적인 기쁨을 본다는 건 이 가게가 성업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이곳에서 스시 집은 더이상 격조 높은 공간이 아니었다. 누구나 즐길 수 있는 스시월드였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8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 사진. 미식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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