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멀리서 보면 얼핏 천구를 두르는 띠 모양인 것만 같은 은하수가 사실은 무수한 별들의 집합이라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을 때의 감동을 잊을 수 없다. 빛나는 별들이 저마다의 무리를 지어 하나의 또 다른 덩어리를 형성한다는 것이 어린 마음에 깊이 새겨진 까닭에 그 후로 밤하늘의 별들을 볼 때면 별이 보이는 대신, 별과 별 사이의 여백이 눈에 들어왔고, 별의 빛에 감탄하기에 앞서 별과 별들의 거리를 가늠해보게 되곤 했다. 별들의 집합, 은하수. 별과 별들의 모둠, 은하수.
말들의 세계
그런데 말들의 세계에도 은하수처럼 말과 말들의 집합을 가리키는 말이 있다. 형태소, 단어, 구, 문장, 텍스트에서 나아가는 말들의 집합. 바로 ‘담화’라고 한다. 담화는 문장 이상의 단위인 텍스트와 동의한 개념으로 쓰이기도 하고, 또는 문어 텍스트와 대비되는 구어 텍스트(이야기)를 의미하는 용어로 쓰이기도 한다. 화자와 청자가 메시지를 담은 언어를 주고받는 대화의 장면 그 자체를 담화라고 하기도 하며, 사회문화적 맥락을 반영하는 언어 사용의 총체를 담화로 보기도 한다.
한국어 교육에서 ‘담화’가 중요한 까닭은 결국은 한국어 학습자의 궁극적인 목적이 의사소통의 성취에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한국어능력시험에서 만점을 받기 위해 한국어를 학습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은 한국어라는 언어의 사용을 위해, 그 언어를 사용하여 그 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소통하기 위하여 언어를 학습한다. 그런데 우리가 사용하는 어휘와 문법이 결국은 말로써 구현되는 담화 속에서 사용상의 기능을 획득하기 때문에, 단순히 어휘와 문법이 가지는 형태 자체의 의미를 아는 것만으로는 충분히 의사소통을 해내기 어려우며, 담화 차원에서 해당 어휘와 문법이 어떠한 기능으로 사용되는지에 대한 지식을 학습할 때에야 비로소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수행해낼 수 있다.
명령형 종결어미 ‘-으십시오’가 격식체로서 명령의 의미를 지닌다는 것을 학습하였다고 하더라도, 사적인 관계에서는 연장자에게라도 ‘-으십시오’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할 수 있다거나 ‘-으세요’를 사용한 명령을 지위가 더 높은 사람에게는 잘 사용하지 않는다는 담화적 정보를 학습하지 않는다면, 대화의 장면에서 어색한 발화를 하게 될 가능성이 매우 높을 것이다. ‘-냐?’라는 의문형 종결어미가 오히려 매우 가까운 친구 사이에 친밀함을 강조하기 위한 의도로 사용될 수 있다는 것을 학습하지 않는다면, 한국어 학습자들은 ‘어제 집에는 잘 들어갔냐?’라는 친근한 안부 인사가 불손한 것이라 오해할지 모른다.
말들의 은하수, 담화 안으로 걸어가는 일
말들의 세계이자 말들의 집합인 담화. 결국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것은 한국어의 형태 하나하나를 가르친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한국어 담화를 접하게 하고, 그 담화 안에서 형태들이 지니는 뜻과 의미를 가르침으로써 학습자들이 언어 사용자로서 해당 언어의 담화에 적응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일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발음, 어휘, 문법에 대한 접근을 달리할 필요가 있다. 기존의 발음, 기존의 어휘, 기존의 문법을 문장 차원이 아니라 담화 차원에서 다시금 바라보고, 담화 차원에서 그것들이 지니는 특성을 규명하여 교육 내용으로 마련하는 것. 그것을 우리는 ‘담화 차원의 한국어 교육’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며, 그로 말미암아 학습자들이 습득한 지식을 ‘사용으로서의 한국어’라고 명명할 수 있을 것이다. 말들의 은하수, 담화 안으로 걸어가는 길. 그 길에 여러분을 초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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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강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