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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2

홈리스 여성들의 시설살이

2022.04.07

[© unsplash]

잠자는시간, 식사시간을정하고, 시설에서해도되는행동과 하지말아야할행동을정하는등시설이용규정이나규칙들은 현재홈리스가시설에서느끼는애로를해결하는가이드라인으로한계가있다. 아니, 그보다먼저, 그규정이나규칙들자체가 개별홈리스의삶을모두고려하고존중하는데한계가있으므로 시설기피의이유가되기도한다.

지난겨울인 2021년 11월에서 12월 사이, 한국리서치라는 조사기관에서 146명의 거리에서 노숙 중인 사람들에게 설문 조사를 진행했다고 한다. 질문 중 하나는 시설에 입소하거나 임시 주거를 제공받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였다. 이에 대해 응답자의 24%가 ‘단체 생활과 규칙 때문’이라고 답했단다. 어쩌면 새로운 결과가 아닐 수도 있겠다. 날이 그리 춥고 위험한데 왜 거리 숙박을 벗어날 수 있는 거처에 가지 않는가라는 의문이 자연스레 떠오르고, 이는 겨울철 거리 홈리스의 상황을 보고하는 뉴스나 기사에서 다루는 단골 질문과 답변이기도 하다. 도대체 그 단체 생활은 어떨지, 시설의 규칙들은 어떤 것들일지 잠깐 궁금하거나 고개를 갸웃거렸을 수 있으나, 그러고는 또 지나치기 십상이었을 것이다. ‘단체 생활’, ‘규칙’ 같은 말들은 그 자체로 이슈가 될 만한 것도 아니고 문제가 될 것도 아니니.

공동생활, 단체 생활
누군가 내게 “시설에서 생활하는 게 그렇게 힘든가요? 거리에서 자는 거보다 더?”라고 묻는다면, 글쎄, 사람마다, 시설이 어떤가에 따라 다 다를 거라고 답할 것 같다. 시설이 그토록 힘들다면 수치상으로 거리에서 숙박하는 거보다 훨씬 많은 이들이 시설에 있는 건 왜일까? 그분들이 모두 시설이 정말 좋고 마음에 들어 있는 건 아니라 할지라도, 거리와 비교하여 어떤 점이라도 좋거나 편리하니 시설을 택했을 거라는 게 합리적 추론이다. 하지만 거리에서 지내는 게 차라리 낫다고 생각하는 분들의 심정을 대강이라도 짐작하려 한다면, 역지사지해보는 방법이 있을 수 있다. 만약 군대와 같은 단체 생활을 몇 년씩 더 해야 한다면? 어떤 연수를 받으며 연수원에서 생활하는 기간이 1년, 2년, 혹은 그보다 더 길어진다면?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과도 함께 사는 건 쉽지 않고, 피를 나눈 가족과도 같이 지내며 다툴 일이 많이 생기는데 하물며 모르는 사람들과 함께 지낸다면?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 대부분의 복지시설은 식당, 화장실 등을 공유 공간으로 사용할 뿐 아니라 잠자고 생활하는 방도 함께 쓴다. 시설에서의 생활을 특징짓는 그러한 단체 생활 혹은 공동생활은 다른 말로 사생활이 보호되기 힘든 생활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다. 내일의 삶을 살아내기 위한 재충전에 꼭 필요한 사적 공간은 시설에서 최소한으로만 허락된다. 방문을 닫아버리면 방 밖과는 구분되는 사적 공간이 형성되는 듯하다. 하지만 한 방에서 여러 명이 함께 지내고 그 방 구성원들이 남남이고 서로가 원해서 선택한 게 아니라면, 구성원들의 사생활을 보장할 수 있는 공간은 불완전한 곳이 될 수밖에 없다. 한 방 구성원이 내는 숨소리, 코골이 소리, 문을 여닫는 소리, 휴대폰 통화 소리 등이 다 생활 소음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더구나 누군가가 나와 생활 습관이 많이 달라서 물건을 두는 방법, 방을 정리하는 방법, 청소에 임하는 자세, 씻고 외양을 관리하는 습관, 잠자고 일어나는 때가 다 맞지 않을 때 이걸 맞춰가려면 엄청난 에너지가 필요하다. 물론, 지금 열거한 거 외에도 무수히 많은 단체 생활 스트레스가 있을 수 있는 곳이 시설이다.

생활 스트레스
시설의 여성들은 사적인 공간과 사생활을 사수하기 위해, 또한 피하기 힘든 공동생활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줄여보려고 매일매일 안간힘을 쓰며 산다. 내가 예전에 일했던 여성 홈리스들의 자활 시설에서는 한 방에서 세 명의 여성들이 함께 지냈다. 방 크기는 가로 80센티미터의 옷장 세 개가 들어가고 그 각각의 옷장 앞에 이부자리를 펴면 방이 꽉 차는 곳이었다. 취침 시간에 방을 들여다보면 꽤 여러 명의 여성들이 옷장 바로 앞쪽에 얼굴을 두고 누웠는데 옷장 문을 열어두고 있었다. 40여 센티미터 길이의 양쪽 옷장 문으로 옆자리와 내 자리를 구분하는 금 긋기라도 하듯이. 하지만 그 정도의 담벼락이 각각의 습성과 취향대로 살아가도 무리가 없는 방어막이 될 리 만무하다. 그러니 시설에서는 같이 지내기 힘들어 생기는 갈등과 다툼이 꽤 일상적으로 일어난다. 화장실에 가다가 내 다리를 밟고 지나갔다, 건조대에 널어놓은 속옷과 수건이 없어졌다, 너무 시끄럽게 굴었다, 괜히 나에게 시비를 걸었다 등등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다툼 거리들이 있다.
얼마 전에는 여성일시보호시설에서 같은 방 잠자리를 이용하던 어르신과 젊은 홈리스 여성이 크게 다투어 젊은이는 방을 바꾸었고, 어르신은 시설 이용 자체를 중단당했다. 두 여성이 다투는 과정에서 어르신은 상대 여성의 뺨을 때리고 얼굴을 할퀴었으며 이를 말리던 실무자에게 발길질을 하였다.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젊은 홈리스 여성이 시설 규정상 명백한 취침 시간에 휴대폰을 끄지 않고 보는 바람에 어르신은 휴대폰 불빛이 거슬려 잠을 자기 힘들었다. 안 그래도 청소도 깨끗이 하지 않고 방을 어지르는 젊은 이용인들이 못마땅하던 차에 끝없이 잔소리를 하게 되었으며, 잔소리 끝에 비방과 저주의 말이 섞이면서 서로 다투게 되었다고 한다. 또 며칠 전에는 같은 층을 사용하는 여성들 몇 명이 하룻저녁에도 몇 번씩 찾아와 아무개 이용인이 씻지 않아 나는 악취로 잠을 이룰 수 없으니 당장 방을 바꿔주든가 아니면 악취 당사자가 씻도록 조치해 달라고 요청하는 일이 있었다. 그 아무개 여성과는 당연히 여러 차례 위생 관리가 왜 필요하고 중요한지 설명하고 설득하고 권고한 바 있었으나 도무지 행동이 개선되지 않고 있었던 차였다. 결국 그날의 요청은 악취 당사자와 다시 상담을 하고, 같은 방 이용인 두 명이 다른 방에서 끼어 자도록 하여 일단락됐다. 시설에서는 자주 있는 일이다.

규정, 규칙이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들
작년에 내가 일하는 여성일시보호시설을 이용한 여성들은 96명이었다. 이용을 끝내고 나갔지만 다시 이용하러 오는 경우도 있으니 이용 건수는 그보다 좀 더 많다. 하루 평균 16.3명의 여성들이 긴급 잠자리를 이용했고, 무료급식 등 낮 시간 서비스를 이용한 인원은 하루 평균 24.5명이었다. 이 여성들이 원하는 게 뭐고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를 알기 위해 소통이 필요한데, 작년 1년간 상담이라는 형태로 의사 소통한 건수는 1,701건. 상담의 내용은 다양하다. 초기 상담, 재이용 상담, 의료 상담, 취업 상담, 주민등록회복 상담, 신용회복 상담, 임대주택 상담, 수급권 상담, 생활 상담 등등. 그중 어떤 상담이 가장 많았을까? 단연코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20.9%, 355건의 생활 상담이었다. 그중에는 공동생활의 애로와 갈등, 그리고 이를 개선해 달라는 내용들이 유독 많다.
잠자는 시간, 식사 시간을 정하고, 시설에서 해도 되는 행동과 하지 말아야 행동을 정하는 등 시설 이용 규정이나 규칙들은 현재 홈리스가 시설에서 느끼는 애로를 해결하는 가이드라인으로 한계가 있다. 아니, 그보다 먼저, 그 규정이나 규칙들 자체가 개별 홈리스의 삶을 모두 고려하고 존중하는 데 한계가 있으므로 시설 기피의 이유가 되기도 한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거리두기가 중요해지면서 몇몇 일시보호시설은 큰 홀을 개별 공간으로 나누는 칸막이 설치 공사를 진행하고 있다. 몇 년 전부터 각 시설들은 잠금이 되는 사물함을 제공하여 홈리스의 짐 보관의 곤란을 해소하려 한다. 앞으로도 좀 더 개별 홈리스의 생활을 보호하는 방향으로 시설의 환경을 개선하고 구성해나가야 시설을 피하는 홈리스를 포용할 수 있을 것 같다.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72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김진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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