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석 중에서도 특별한 오팔은 종종 예술 장르에 비견되곤 한다. 하나의 원석에서 나오는 색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빛의 방향과 움직임에 따라 다채로운 색을 발산하고, 그 안에 박힌 천연 내포물이 세상에 단 하나밖에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김지원에 대해 찾아보다 그의 탄생석이 오팔이라는 것을 알고 참으로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화려한 삶을 사는 도도한 재벌 상속녀를 연기해도, 사랑 앞에 당당하고 일할 때는 직업의식 투철한 군의관으로 분해도 김지원의 단단함은 그가 연기하는 모든 캐릭터를 사랑하게 만든다.
<나의 해방일지>의 ‘염미정’을 보며 느끼는 감정도 다르지 않다. 오백 살쯤 먹은 듯 지치고 피곤한 얼굴로 등장해 “나를 추앙해요.”라는 명대사를 단숨에 유행시키는, 평범해서 더욱 특별한 캐릭터를 완성한 것은 김지원에게서 우러나는 무언가의 조화다. 보면 볼수록 보고 싶은 미정이를 만들어낸 김지원 안에는 무엇이 있을까. 묘하디묘한 김지원의 새로운 얼굴을 들여다봤다.
어느 인터뷰에서 <나의 해방일지>의 미정을 설명하며 “비밀의 정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자기만의 꽃을 피운대요.”라고 하셨더군요. 참 멋진 비유예요. 자신만의 세계를 가꾸기 위해, 직면한 어려움에서 해방되기 위해 어떤 방법을 택하는 편인가요?
미정이를 만나면서 스스로에게 ‘내가 진짜 원하는 게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는 게 중요하다는 걸 배웠어요. 스스로에게 물어보고 대답하는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어려움에 직면할 때 저 자신과 대화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노력해요.
구씨(손석구)와 미정의 연애에 설렘을 느끼는 시청자들이 많아요. 미정은 소심해 보이지만 구씨에게 먼저 다가가고 그를 ‘구원’해주기도 하죠. 연애를 시작하는 미정을 연기하며 무슨 생각을 했어요?
미정이가 구씨에게 가진 마음에 공감하면서도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좋기만 한 사람’을 만드 건 생각처럼 쉽지 않잖아요. 좋아하기 때문에 때론 서운하고, 좋아하기 때문에 미운 순간이 있기 마련이니까요. 둘의 사랑은 서로를 쭉 응원하고 잘되기만을 바라는 마음이 큰 사랑이라 시간이 갈수록 미정이의 그 마음이 참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모든 관계가 노동이다.”라는 대사가 시청자들 사이에서 많이 회자됐어요. 작가님이나 감독님은 미정을 어떤 사람이라고 설명하던가요? 그리고 지원 씨는 미정을 어떤 사람이라고 생각했나요?
작가님이 “미정이가 2만 년을 산 사람 같았으면 좋겠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고, 감독님은 ‘본능이 살아 있는 인물’이라고 설명해주셨어요. 저는 미정이를 알아가면서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볼 수 있고, 어떠한 말을 보태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마음속에 자기가 진짜 원하는 걸 알고 있고요. 이와 더불어 다른 사람의 말을 빌려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만의 문장을 가지고 있기에 ‘추앙’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는 게 아닐까 싶어요.
맞아요. “나를 추앙해요.”라는 대사가 처음엔 아주 생소하게 다가왔지만, 드라마의 영향으로 지금은 익숙해지고 있죠. ‘추앙’이라는 단어를 대본에서 처음 읽었을 때는 어땠어요?
처음에는 어려운 단어로 다가왔어요. 작품의 정체성이 담긴 대사인 것 같아서 현장에서 감독님과 이야기를 많이 나눴어요. 방송 이후에는 보시는 분들이 왜 사랑이 아니고, 추앙이어야 하는지에 다들 공감해주시는 것 같아서 아주 기뻐요.
회사에선 지극히 평범한 오피스 룩, 집에서는 편안한 티셔츠에 바지 등 아주 현실적인 옷차림으로 촬영하셨어요. 서민 캐릭터인데 옷은 고가의 명품을 입는 다른 드라마와 달라서 보기 편안하다는 시청자 반응이 많은데, 미정이의 의상에 대해선 어떤 논의가 오갔고, 준비 과정은 어땠어요?
감독님이 그런 디테일을 많이 신경 써주셨어요. 최대한 현실적으로 보이려고 많이 노력했죠. 새 옷에서 볼 수 있는 어깨선의 주름 한 줄도 용납하지 않는 현장이었어요.(웃음) 집에 있는 장면에서는 메이크업도 거의 하지 않고 머리도 배우들이 직접 묶었거든요. 그래서 더 자연스러워 보이지 않나 싶어요.
배우 김지원 님의 더 많은 화보와 인터뷰 전문은 《빅이슈》 276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진행. 양수복
사진. 김희준
헤어. 이선영
메이크업. 성미현
스타일리스트. 김이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