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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7 커버스토리

그림 그리고 춤추고 웃고 찡그리고 ― 영화 <니얼굴>에 대하여

2022.06.28

영화 <니얼굴> 스틸

은혜는 그림을 그린다. 다운증후군을 가진 은혜에게 그림은 사람에게 다가가는 방법이다. 은혜는 한 달에 한 번 양평군 문호리 강변에서 열리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의 캐리커처를 그려준다. 그림 값은 받을 때도 있고 안 받을 때도 있다. 그건 순전히 은혜의 마음에 달렸다. 영화 <니얼굴>은 은혜의 다양한 면에 주목한다. 주중에는 장애인복지관에서 일하고 매달 셋째 주말엔 문호리 리버마켓에서 사람들의 얼굴을 그리는 은혜, 예쁘게 그려달라는 요청에 “원래 예쁜데요, 뭘~” 하고 능수능란하게 대화를 이어가는 은혜, 집에서는 엄마에게 짜증과 서운함을 감추지 않는 은혜. 은혜가 마켓에서 사람들과 함께 춤을 추고 ‘서촌 화가’ 김미경 작가와 고성 바다를 보러 가는 이야기는 어떤 서사를 담기보다 조용한 관찰의 방식을 따른다.

놀랍게도 이 조용한 카메라를 든 사람은 은혜의 아빠다. 때문에 엄마 장차현실과 딸 은혜의 갈등 상황은 가족이 담을 수 있는 리얼리티를 띤다. 일찍이 장차현실은 독신모로 장애인 아이를 키우면서 세상의 편견과 싸우는 이야기를 그린 만화 <엄마 외로운 거 그만하고 밥먹자>(2003), 서동일 감독과 결혼 후 확대가족으로 사는 삶에 대한 만화 <작은여자 큰여자 사이에 낀 두남자>(2008)로 자신의 삶을 널리 알려오면서 장애인 가족에 대한 인식 변화와 제도 개선에 힘써왔다. 하지만 <니얼굴>의 주인공은 은혜다.

영화 <니얼굴> 스틸

영화는 은혜를 관찰하면서 은혜를 어떤 프레임 안에 가두지 않는다. 사실 장애인이 등장하는 영화는 대체로 휴먼드라마의 형식을 따라간다. 장애 ‘극복’에 방점을 찍는 이야기로, 장애를 극복해야 하는 대상으로 여기는 시각을 심어주곤 한다. <니얼굴>은 그러한 점을 경계한다. 은혜는 엄마의 도시락이 마음에 들지 않아 짜증을 내고 리버마켓의 다른 셀러에게 “올해는 결혼해야지”라고 농도 치고 같은 화실을 다니는 어린이의 그림 실력을 상찬하다가 “나중에 넌… 총각이 될 거야.”라고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도 한다. 그 아리송한 점이 이 영화의 매력이고 은혜라는 사람에 대해 알려주는 방식이다. 이는 드라마 <우리들의 블루스>에서 은혜가 영옥(한지민)의 쌍둥이 언니 영희를 연기할 때와 일맥상통한다. 영희가 ‘착한 사람’이 아니라 욕도 하고 술도 좋아하는 사람인 것은 실제의 은혜가 감정 표현에 적극적이고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자기결정권이 있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은혜는 그림을 통해 장애를 극복하려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 그에게 그림은 어렵지만 재밌고 잘하고 돈도 벌 수 있고 사람들과의 눈을 마주치는 게 어렵지 않게 해주는 보통의 수단이다. 은혜가 뜨개질을 하거나 춤을 추는 장면을 많이 보여주는 것도 이것들이 그림과 같은 맥락으로 은혜에게 작용하기 때문이 아닐까. 영화가 끝난 뒤에도 은혜가 세상의 많은 것들을 보고 즐기고 그것을 그림으로 춤으로 말로 표현하게 되기를. 남들이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아도 은혜는 잘 살 것이다. 그 누구보다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니까.


글. 양수복
사진제공. ㈜영화사 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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