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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7 에세이

영화 기자의 칸영화제 출장이란, 잠은 죽어서 자지 뭐 (2)

2022.06.28

<헤어질 결심>은 어떤 영화?

하지만 영화제는 역시, X고생해서 표를 구한 영화가 마스터피스였을 때 오는 감동에 중독되어 매년 투덜대면서 결국 찾게 되는 곳이 아니던가. 올해는 제임스 그레이 감독의 <아마겟돈 타임>, (잘생기고 젊은 1991년생)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를 월드 프리미어로 감상하는 호사를 누렸다. 가장 입이 근질근질하게 만드는 영화는 역시 박찬욱 감독의 <헤어질 결심>이다. 남편이 산에서 떨어져 죽어도 슬퍼하지 않는 부인, 심지어 웃기까지 한다. 사망자의 중국인 아내 서래(탕웨이)가 이른바 ‘탐욕스러운 과부’일지 모른다고 의심하던 형사 해준(박해일)은 그를 몰래 관찰하다 오히려 사랑에 빠진다. 박찬욱이 어떤 감독인가. 멀쩡한 사물도 그의 카메라에 들어가면 이상해 보인다. 여기서는 초밥 도시락을 먹을 때 클로즈업하는 간장이나 박해일이 눈에 넣는 인공눈물마저 기괴해 보였다. 그리고 쇼트마다 ‘박찬욱 냄새’가 나는 연출은 서래와 해준의 이상한 사랑 방식을 실어 나르는 데 논리적으로 완벽히 교합한다. 탕웨이의 어설픈 한국어가 몰입을 방해할지 모른다는 걱정도 넣어두시라. <헤어질 결심>은 어딘가 이상한 한국어를 매개로 두 사람의 감정을 잇고, 통역을 거칠 때 생기는 소통 지연을 로맨스 영화의 신묘한 리듬으로 만드는 놀라운 영화다.

사실 <헤어질 결심>은 최근 국제 정세를 감안할 때 영화제가 정치성 강한 영화에 상을 안기며 정치적 스탠스를 보여주지 않겠느냐는 당초 예상에 부합하지 않는 영화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헤어질 결심>은 영미권 공식 데일리 <스크린>에서 3.2점을 받으며 경쟁부문 상영작 중 최고 평점을 받았다. 무엇보다 <헤어질 결심>은 장르영화로서 끝내주게 재밌다. 박찬욱 감독은 서스펜스만 독창적으로 잘 만드는 게 아니라 로맨스도 잘한다. (진짜다!) 사랑은 절대 아름다운 감정이 아니다. 집착하고 가끔 성격이상자가 되기도 하고(그래서 생긴 흑역사, 다들 있을 거라 믿는다.) 가학과 피학을 즐기게도 만들고 부정적인 감정까지 연료 삼아 유지되는 게 사랑이다. 나는 결코 일반적이라고 할 수 없는 서래와 해준의 사랑을 지켜보면서 설명할 수 없는 통쾌함마저 느꼈다.

<헤어질 결심>은 개막부터 폐막까지 칸에 머물면서 그 인기를 가장 실감한 영화이기도 하다. 전 세계 영화 기자들이 각자 원고를 마감하는 와이파이 카페에서 만난 이탈리아 기자, 다른 감독의 라운드 인터뷰를 기다리다 말을 섞게 된 중국인 기자는 <헤어질 결심>이 황금종려상을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드보이> 때부터 박찬욱 감독의 영화를 접했지만 이번 작품은 전작처럼 강도 높은 섹스와 폭력 묘사가 없어서 신선했다는 말도 덧붙였다. <기생충> 이후 한국 기자를 대하는 외신 및 해외 영화 관계자들의 태도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이번 출장은 (코로나19 때문에 불가피했던) 화상이나 서면 인터뷰를 진행하며 느꼈던 바를 피부로 직접 체험하며 재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배우 송강호, 칸 남우주연상의 의미

<헤어질 결심>과 <브로커>는 경쟁부문 21편 상영작 중에서도 페스티벌의 화제성을 이끌었고, 개막 전 인터뷰 신청이 너무 많이 들어와서 스케줄이 빡빡하다는 관계자의 증언이 있었으며, 특히 영화가 공개된 후 유력 매체와 평론가들은 <헤어질 결심>이 최고상을 받아야만 한다고 강력하게 주장했다. 한국 개봉 이후 <브로커>에서 압도적인 비중을 연기하지 않은 송강호가 칸영화제 남우주연상을 받은 것에 의아함을 표하는 관객들이 있는 걸로 아는데, 사실 칸 출장을 온 일부 한국 기자들은 영화를 보기 전부터 그의 수상을 점쳤다. (나 역시 같은 생각이었으며, <브로커> 팀이 폐막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알려졌을 땐 “그렇다면 송강호 남우주연상 확정일 것”이라며 기사도 미리 써뒀다.) 송강호의 출연작이 칸에서 상영된 것만 일곱 편, 지난해에는 경쟁부문 심사위원으로 칸을 찾았다. 한국 배우 중 칸영화제를 가장 많이 찾았고 경쟁부문에서 상영될 땐 출연작이 100% 수상했던 그가 한국 영화계에서 지닌 의미와 칸영화제에서 쌓은 입지가 종합적으로 고려될 것이라는 게 기자들의 추측이었다. (월드 프리미어 상영 이후 <브로커>가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지금까지 만들어온 영화만큼 좋지는 않기 때문에 작품이나 감독보다는 배우가 수상할 가능성이 높다는 가설이 더욱 힘을 얻었다.) 심사 과정을 공개하지 않는 영화제 특성상 실제 어떤 연유에서 이번 수상이 결정됐는가는 영원히 알 수 없겠지만, 칸영화제가 송강호를 반드시 챙기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올 만큼 한국 영화는 국제영화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국뽕’을 거하게 들이켜자고 꺼내는 이야기가 아니다. 한국 영화를 향한 관심이 뜨거워질수록, 해외에서 한국 영화 전문가로 통할 수 있는 내가 저널리스트로서 앞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질 것이다. 배우와 감독들은 국경의 경계 없이 다양한 제안을 받을 수 있을 것이고, 굳이 할리우드에 가지 않아도 <오징어 게임>처럼 한국에서 만든 작품이 글로벌 플랫폼을 통해 전 세계에서 인기를 끌 수도 있다. 그동안 미디어에서 과소대표되어 왔던 동양인이 전면에 나서는 작품이 늘어날수록 우리는 소속 집단의 존재감을 인정받을 수 있다. 올해 출장을 다녀오면서 졸업과 건강, (티켓팅 하느라) 인성을 잃었지만 이는 한국 영화계의 기념비적인 순간을 취재할 수 있던 호사와 기꺼이, 백번도 맞바꿀 수 있다. 무엇보다 세계 각국의 기자들과 부대끼면서 동양인 여성 기자라는 정체성에 당당할 수 있는 경험을 할 수 있어 귀한 시간이었다. 이런 출장은 인생에서 자주 오지 않는다.


글 | 사진. 임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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