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8백만 마리, 하루에 2만 마리’.
이는 환경부에서 발표한 투명한 유리에 부딪쳐 죽어가는 새의 수입니다.
언론을 통해 이 수치를 접한 시민은 대부분 믿지 못하겠다는 의견이 많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시민이 유리창 충돌로 죽은 새들의 모습을 발견한 적이 거의 없기 때문입니다. 건물 유리창에 부딪친 새들은 치워지고, 도로 방음벽에 부딪쳐 죽은 새들은 풀숲에서 썩거나 다른 야생동물의 먹이가 되어 쉽게 볼 수 없습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도로변과 아파트 주위에는 투명한 방음벽과 투명한 유리 건물이 점점 늘어나고 있습니다. 건물 밖 경관을 마음껏 볼 수 있고 도로의 소음을 막아주기 위한 투명한 유리벽이 정작 새에게는 죽음의 벽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같은 장소에서 매번 같은 충돌로 인한 죽음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이건 새의 신체 구도 때문입니다. 새의 눈은 인간과 달리 옆이나 뒤에서 쫓아오는 천적을 빨리 보기 위해 옆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바로 앞의 물체는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그리고 날기 위해 뼈도 비어 있고, 두개골도 스펀지 구조로 되어 있습니다. 이런 새들이 평균 시속 50km로 날아다니다 유리창에 부딪치면 심한 부상을 입거나 죽음에 이르게 됩니다.
새의 유리창 충돌, 막을 수 있는 방법
사실 새가 유리창에 충돌하는 걸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이미 다 마련되어 있습니다. 새가 인식할 수 있는 자외선 반사 유리를 사용하면 근본적으로 문제 해결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나라에는 관련 법률과 정책이 없고, 가격이 비싸다는 이유로 이를 시행하지 않고 있습니다. 반면 미국과 캐나다의 경우는 이미 관련 법률이 제정되어 의무 사항이거나 권고 사항입니다. 더구나 이미 설치된 투명한 유리벽이나 방음벽의 조류 충돌을 막는 방법도 의외로 간단합니다. 유리에 자외선을 반사하는 불투명 테이프를 붙이거나, 5×10cm 간격의 격자무늬로 점 스티커를 붙이기만 해도 예방 효과가 있습니다. 작은 건물 유리창에는 아크릴물감을 이용해 격자무늬로 점을 찍거나 일정한 간격으로 줄을 늘어뜨리는 것만으로도 새의 유리창 충돌을 막을 수 있습니다.
새의 죽음 널리 알리기
그래서 저희는 지난 6월에 시민과 함께 충돌 방지 스티커를 붙이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장소는 충남 서산시 649호 지방도 고잠교차로 인근의 도로 방음벽이었습니다. 100m 남짓한 2단 유리 방음벽에서만 올해 들어 무려 17종 35마리 새의 시체가 발견되었습니다. 아마 발견 하지 못한 시체까지 고려하면 매년 최소 100마리의 새가 반복적으로 죽는 곳이지요. 실제로 스티커를 붙인 다음 달인 7월에 현장 모니터링 결과, 충돌로 죽은 새가 한 마리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3시간 동안의 스티커 작업으로 새들의 죽음을 막을 수 있게 된 것이죠.
그러나 지금도 하루에 2만 마리의 새가 아무도 모르게 유리창 충돌로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유리벽이 늘어나면 그 죽음의 수도 더욱 늘어날 것입니다. 현재 네이쳐링 앱을 통해 시민이 자발적으로 새들의 유리창 충돌 현황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약 1840개 정도의 기록이 모였고, 멧비둘기, 물까치, 참새, 박새, 붉은머리오목눈이 순으로 많은 피해가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더 많은 시민이 참여해 발견하지 못한 새들의 죽음을 찾아서 알리는 활동이 필요합니다. 어떤 새들이 어디에서 얼마만큼 죽어가는지에 대한 정보와 데이터가 쌓여야만 그 죽음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거미와 새의 공존
거미는 작은 곤충을 잡아먹기 위해 거미줄을 칩니다. 먹이가 되는 곤충에게는 거미줄이 잘 보이지 않아야 거미줄에 걸리지만, 반대로 새 같은 큰 동물에게는 거미줄이 잘 보여야 거미줄이 파괴되지 않습니다. 오랜 진화를 거듭한 끝에 거미줄이 자외선을 반사하는 광학적 특성을 지니게 되었고, 자외선을 볼 수 있는 새는 이 거미줄을 피해가게 됩니다. 이러한 자연을 연구해 독일의 한 유리업체에서는 새가 인식할 수 있는 조류 보호 유리를 만들었지만 이 또한 비용 문제로 널리 사용하고 있지는 않습니다.
대한민국 헌법 제14조에는 국민의 ‘거주 이전의 자유’를 기본 권리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인간뿐 아니라 모든 살아 있는 생명은 이동할 권리가 있습니다. 새들은 자유롭게 하늘을 날아다닐 권리가 있는 것입니다. 유리벽 설치로 그들의 길을 막을 수밖에 없다면 최소한 충돌로 인한 죽음만은 막아야 합니다. 우리에겐 단순히 허공일 뿐인 하늘은 새에겐 가족을 만나고 먹이를 잡기 위해 날아다니는 삶의 길이기 때문입니다. 새와 공존하는 방법을 찾는 길이 스스로를 지키는 길임을 거미에게서 다시금 배워야 할 때입니다.
Writer 최위환
Editor 손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