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벨기에 브뤼셀에는 인간 동물원이 있었다. 당시 유럽인은 아프리카나 아시아에서 생활하는 원주민을 납치해 자국으로 데려와 동물원에 감금했다. 백인은 백인만이 존엄하다고 믿으며 흑인 소녀에게 빵을 주며 받아먹는 모습을 구경하곤 했다. 미개한 문명의 단면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2019년의 한국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또한 체험 동물원에서 대기표를 뽑아 들고 다른 생명의 삶을 짓밟고 있으니까.
영등포 타임스퀘어에 1000평 규모의 실내 체험 동물원 ‘주렁주렁’이 개장했다. 주렁주렁은 30종, 150마리의 동물을 전시하고 있다. 현장 조사를 하기 위해 해당 동물원을 방문했을 때는 동물보다 훨씬 많은 수의 관람객으로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입장권을 사기 위해 뽑은 대기표에 적힌 대기 인원만 100명이 넘을 정도였다.
교감이라는 기만
주렁주렁은 철저하게 유아의 눈높이에 맞춰 설계되어 있었다. 입장 전 테마파크의 세계관을 설명하는 자리에서는 화려한 조명을 곁들여 스토리를 이야기하며 “당신의 임무는 주렁주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고 일러줬고, 함께 “주렁주렁!”이라는 구호를 외쳐야 동물이 있는 공간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내부에는 ‘눈과 마음으로 예뻐해주세요’와 ‘교감 전후 반드시 손을 씻어주세요’라는 모순된 내용의 팻말이 곳곳에 걸려 있었다. 동물의 전시 공간을 설명하는 간판에는 해당 동물의 생태적 특징 등을 설명하는 대신 주렁주렁 세계관에 맞는 서사가 쓰여 있었다.
"주렁주렁 숲에는 수달의 손을 잡으면 22일 안에 좋은 인연이 생긴다는 전설이 있다.
(중략) 유명한 만큼 수달들과 악수할 수 있는 기회는 흔치 않다.
인연을 만들고 싶다면 수달 악수터에서 수달과 악수하는 시간을 기다려보자."
수달은 영리한 동물인 만큼 아크릴 구조물 안에서 사람에게 손을 내밀면 먹이를 받을 수 있다는 것을 빠르게 학습한 듯했다. 수달은 사람이 뭐 그리 좋다고 스스로 손을 내밀겠나 싶지만, 사람들은 구걸하는 수달을 귀여워했고 연신 사진을 찍기 바빴다. 수달이 전시 공간에서 고무호스를 뜯어 먹거나 플라스틱을 갉아 먹는 것조차 그저 귀여워할 뿐이었다.
동물을 위한 테마파크는 없다
실내 체험 동물원인 만큼 동물들이 보여주는 모습은 빤했다. 새들은 날개깃이 잘려wing-cut 제대로 날지 못해 사람이 접근해도 멀리 이동하지 못했다. 사람의 손을 쪼는 것으로 자신을 방어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가장 거대한 왕부리새, 드넓은 하늘을 비행하고 높은 나무에서 은신하는 토코투칸은 조명 아래서도 한 치의 미동도 없었다.
작고 앙증맞은 사육조飼育鳥들은 먹이를 먹기 위해 사람들의 손바닥 위로 위험한 비행을 감행해야 했다. 새들에게 모이 주기 체험을 하는 곳에는 ‘바닥에 새가 있으니 조심하시오’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과연 사람들로 혼잡한 틈새에 새들이 바닥에서 모이를 쪼아 먹고 있었다. 사람이 조심하지 않으면 새들은 밟힐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조심한다고 해도 새들의 운명은 크게 달라지지 않는다. 신체 접촉 체험 대상으로 쓰이는 새들은 스트레스로 빨리 죽기 때문이다.
동물원 전체는 언뜻 보기에만 그럴듯할 뿐, 사육 시설 전체가 야생동물에게는 턱없이 부족했다. 라쿤은 물에서 헤엄쳐 관람객이 있는 쪽으로 끊임없이 탈출을 감행하다 사육사에게 맨손으로 붙잡히고 있었다. 사막여우가 숨을 공간이라고는 훤히 들여다보이는 항아리밖에 없었다. 왈라비는 새끼를 두고 좌우로 오가는 정형 행동을 보였다. 코아티도 유리벽에 매달려 음식을 구걸하고 있었다. 주렁주렁은 동물을 물리적으로 강제하지 않는다며 ‘No Forcing’ 윤리 정책을 표방하지만, 그뿐이었다. 이미 거주 공간 자체가 동물들의 생존을 심각하게 위협하고 있었다.
체험 동물원에 오기 이전의 야생동물들의 삶도 생각해본다. 주렁주렁은 야생에서 동물을 포획하지 않는다는 ‘No Wild’ 정책을 자랑하건만, 본인들 손에 피만 안 묻혔을 뿐이다. 보통 체험 동물원은 야생동물을 전문으로 번식하는 업체를 통해 수입한다. 이런 업체들은 야생동물의 터전에서 동물들을 납치해 교배시켜 어린 개체를 얻어내 판매한다. 우리가 미처 보지 못하는 이면에서는 납치와 감금, 강간과 새끼 뺏기가 일상적으로 일어나고 있다. 모순과 기만 속에 동물은 존엄한 삶을 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물은 인간의 오락 도구가 아니다
새삼스럽게도 주렁주렁만의 문제가 아니다. 우리나라에는 107곳의 동물원과 수족관을 운영하고 있다. 대부분 열악한 상태로 질적 편차가 크다. 심각한 건 기존 동물원과 수족관의 문제를 해결하기도 전에 주렁주렁과 같은 체험 중심의 소규모 유사 동물원이 어떠한 법적 규제도 없이 난립하고 있다는 상황이다. ‘동물원수족관법’은 그냥 허울 좋은 깡통 수준이다.
동물을 사랑하는가? 그렇다면 우리는 동물원에 가지 말아야 한다. 동물원이 동물 본연의 생태와 유사한 환경을 조성할 수 있도록 압박을 가해야 한다. 상업을 목적으로 한 관람객 중심의 동물원은 더 이상 만들지 말아야 한다. 동물원의 역할을 단순 보전과 연구를 넘어, 위기 야생동물의 보호구역sanctuary으로 확장해야 한다. 동물원은 동물을 위한 것이어야 하니까.
인간이 비인간 동물을 전시하고 구경하는 문화에 대한 반성은 이미 시작됐다. 언젠가는 지금의 동물원을 수치스럽게 여길 날이 올 것이라고 믿는다. 그날을 위해 체험 동물원을 불매한다. 부끄러움을 아는 타인의 연대와 동참을 간절히 바라면서!
Writer‧Photographer 김나연(동물권행동 카라)
Editor 문지현